
1973년 11월 28일
결핵에 신음하던 스님이 바랑을 챙겼다. 몸이 약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선방에서 버티던 스님이다. 어제저녁부터 각혈이 시작되었다. 부득이 떠나야만 한다. 결핵은 전염병이고 선방은 대중처소이기 때문이다.
각혈을 하면서도 표정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동진출가(童眞出家)한 40대의 스님이어서 의지할 곳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면서도 절망이나 고뇌를 보여주지 않는다. 조용한 체념뿐이다.
뒷방 조실스님의 제의로 모금이 행해졌다. 선객들에게 무슨 돈이 있겠는가. 결핵과 함께 떠나는 스님이 평소에 대중에게 보여준 인상이 극히 좋아서 대중스님들은 바랑 속을 뒤지고 호주머니를 털어 비상금을 몽땅 내놓았다. 모으니 9,850원이다. 사중(寺中)에서 오천원을 내놓았고 시계를 차고 있던 스님 두 분이 시계를 풀어놓았다. 나는 마침 내복이 여벌이 있어서 떠나는 스님의 바랑 속에 넣어 주었다. 결핵요양소로 가기에는 너무 적은 돈이며, 장기치료를 요하는 병인데 병원에 입원할 수도 없는 돈이다. 응급치료나 받을 수밖에 없는 돈이다. 모금해 준 성의에는 감사하고 공부하는 분위기에는 죄송스러워 용서를 바랄 뿐이라면서 바랑을 걸머졌다.
눈 속에 트인 외가닥 길을 따라 콜록거리면서 떠나갔다. 그 길은 마치 세월 같은 길이어서 다시 돌아옴이 없는 길 같기도 하고 명부(冥府)의 길로 통하는 길 같기도 하다. 인생하처래 인생하처거(人生何處來 人生何處去)가 무척이나 처연하고 애절하게 느껴짐은 나의 중생심 때문이겠다. 나도 저 길을 걷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답답하다. 아직 견성하지 못한 나로서는 당연한 감정이기도 하다. 현대의 우리 불교계 풍토에선 병든 스님이 갈 곳이 없다. 더구나 화두가 전부인 선객이 병들면 갈 곳이 없다. 날마다 수를 더해 가는 약국도, 시설을 늘려가는 병원도 그들이 표방하는 표제는 인술이지만 화두뿐인 선객을 맞아들일 만큼 어질지는 못하다. 자비문중(慈悲門中)이라고 스스로가 말하는 절간에서도 병든 선객을 위해 베풀 자비는 없다. 고작해야 독살이 절에서 뒷방이나 하나 주어지면 임종길이나 편히 갈까.
그래서 훌륭한 선객(禪客)일수록 훌륭한 보건자(保健子)이다. 견성은 절대로 단시일에 가능하지 않고 견성을 시기하는 것이 바로 병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섭생에 철저하다. 견성이 생의 초월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의 조화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선객은 부처님처럼 위대해 보이나 병든 선객은 대처승(帶妻僧) 보다 더 추해진다. 화두는 멀리 보내고 비루와 비열의 옷을 입고 약을 찾아 헤맨다. 그는 이미 선객이 아니고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폐물이 되고 만다.
'신외(身外)가 무물(無物)
차원 높은 정신성 속에서 살아가는 선객일수록 유물(唯物)적이고 속한(俗漢)적이라고 타기할 게 아니라 화두 다음으로 소중히 음미해야 할 잠언(箴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