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生命) 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灼熱) 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