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2월 10일
섣달이 깊어 가면서 폭설이 자주 왔다. 산하는 온통 백설일색이다. 용맹정진에서 탈락했던 스님들은 자꾸만 나태해져 갔다. 탈락했다는 심리작용의 탓인지 스스로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입승스님으로부터 몇 차례 경책도 받고 시간을 지켜달라는 주의도 받았지만 잘 지키질 못한다. 그때마다 몸이 아프다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어보이면 그것으로 끝난다. 경책은 세 번까지 주어지는데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그만이다. 세 번 이상의 경책은 군더더기요, 중노릇은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이 대신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용맹정진을 무사히 넘긴 스님들은 힘을 얻어 더욱 분발하여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뒷방에 죽치고 않았던 스님 세 분이 바랑을 지고 떠나갔다. 결제기간이니 갈 곳은 뻔하다. 지면(知面)이 있는 어느 독살이 절로 갈 수밖에.
선방은 영영 하직하는 스님들이다.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깊이 든 스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