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2월 15일
만듯국을 먹는 날이다. 원주스님의 총지휘로 만두 울력이 시작되었다. 숙주나물, 표고버섯, 김치, 김을 잘게 썰어서 이것을 잘 혼합하여 만두 속을 만들고, 몇몇 스님들이 밀가루를 반죽하여 엷게 밀어주면 밥그릇 뚜경으로 오려내어 대중스님들이 빙 둘러 앉아 속을 넣어 만두를 빛어낸다. 여러 스님들의 솜씨라 어떤 것은 예쁘고 어떤 것은 투박하고 또 어떤 것은 속을 너무 많이 넣어 곧 터질듯 하여 불안한 것도 있다. 장난기가 많은 스님들은 언제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기회만 오면 갖은 방법으로 장난기를 발휘한다. 만두를 여자의 그것을 흉내 내 오목하게 빛는가 하면 남자의 그것을 흉내 내 기다랗게 빛기도 한다. 극히 희화적이다.
성 본능이 억제된 상황에서의 잠재의식의 발로라고나 할까. 그래서 종교적인 미술일수록 남녀의 뚜렷한 선을 투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만두 속을 아무도 모르게 고촛가루를 넣어서 빛는가 하면 소금을 넣어서 빛기도 하고 무 쪽을 넣어서 빚기도 했다
드디어 만듯국 공양이 시작되었다. 별식이어서 발우 가득히 받아 간사한 식성을 달래가면서 식욕이 허락하는 대로 맛있게 먹는다. 드디어 장난기의 제물이 된 스님들의 입에서 비명과 탄성이 폭발한다.
"아이고 매워." 고촛가루를 씹은 스님이 탄성이다
"아이고 짜." 소금 만두를 십은 스님의 비명이다.
한쪽에서는 비명과 탄성인데 한쪽에서는 키득거리며 우스워 죽겠단다. 그러다가 웃는 쪽에도 예의 장난 만두가 씹혔는지 상이 금방 우거지상으로 변한다. 하필이면 선방의 호랑이 격인 입승스님의 그릇에 고촛가루 만두가 들어갔는지 후후거리면서 국물을 훌훌 마시고 입맛을 쩍쩍 다신다. 그러나 비명은 없다. 역시 선방의 백전노장답다. 스님들의 공양 태도는 극히 조용하다. 그래서 엄숙하기까지 하다. 입안에 식물이 들어가면 그 식물이 보이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물고 십는다. 훌훌거리거나 접접거리지 않고 우물우물 씹어서 삼킨다. 그렇다고 잘 씹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오래 씹되 조용히 씹고, 숟가락 젓가락 소리가 없어야 하고, 발우끼리 부덧치는 소리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극히 위생적이다. 발우는 자기 발우를 사용하고 또 자기 손으로 씻어 먹는다. 숟갈과 젓가락을 넣은 집이 천으로 되어 있고 발우 보자기와 발우 닦개가 있어서 식사도구에 먼지 같은 건 침입할 틈이 없다. 발우 닦개는 며칠 만에 빨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다. 발우는 가사와 함께 언제나 바랑 속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몇 대를 물린 경우도 있다. 대를 거듭한 발우일수록 권위가 있다.
장난기 많은 스님들 때문에 만둣국 공양시간이 어지럽고 소란했다. 공양이 끝나자 과묵하신 조실스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옛날 어느 절의 공양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간에 않아 공양하는 조실스님의 눈길이 공양하는 행자에게 주어졌대요. 그런데 그 행자의 국그롯에 생쥐가 들어 있었어요. 행자는 대중이 알까봐 얼른 국그릇을 입에 대고 생쥐를 삼켜버리더래요. 그러자 탁자위의 부처님이 손을 길게 뻗어 행자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더래요. 행자가 국그릇에서 삶아진 생쥐를 꺼낸다면 대중들의 비위가 어떻게 되겠어요. 먹지 못하는 생쥐도 감쪽같이 먹었는데 짜고 맵고 뜨거워도 먹는 것인데 비명과 탄성을 지르면서 공양시간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한 스님들의 시은(施恩)에 배반한 업보에 대해 우리 다 같이 참회하도록 합시다."
장난질을 했던 스님들의 고개가 숙여졌고 비명과 탄성을 질렀던 스님들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고 입승스님의 표정은 곤혹함이 가득했다.
별식(別食)이 죄식(食罪) 같은 기분이었으나 조실스님의 훈고는 심성도야에 홀륭한 청량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