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세다. 만져지지 않는 것이 만져지는 것보다 세다. '도'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가장 보이지 않는 것이고, 가장 만 져지지 않는 것이다. 가장 높아서 가장 세다. 그래서 이 세상 어떤 것도 '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득도의 길은,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 가까운 것과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 가운데서 선택해야 한다면, 보이지도 않고 만져 지지도 않는 영역에 가까운 것을 선택하면 된다. '도'에 가까운 쪽을 선택하면 된다는 뜻이다.
어떤 학생이 약간의 부정행위만 하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치자. 이 학생은 점수와 정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매우 곤혹스러운 기로에 있다. 점수는 정직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직은 점수보다 더 추상적이다. 이 상황에서 득도의 길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높은 성적의 유혹을 이겨내고 정직을 선택하면 된다. 어떤 정치인이 당선과 진실한 봉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당선은 진실한 봉사보 다 구체적이고, 진실한 봉사는 당선보다 추상적이다. 이때도 당선을 선택하면 도에서 멀어지고, 진실을 선택하면 도에 가까위진다. 모 순적인 상황에서 '도'에서 먼 쪽이 보내는 유혹을 이겨내고, 가까운 쪽을 선택할 때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를 발휘하여 '도' 에 가까운 쪽을 선택하는 승리를 한번 경험하면 우리는 점점 우주적 삶의 경지로 이동한다. 결국 우주적 삶은 모순적 상황에 처한 매우 미미하고 고독한 주체가 용기를 발휘하는 그 찰나적 순간에서만 피어난다.이 용기가 '여기' 멈취 있는 나를 '저기'로 건너가게 한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지식을 쌓고 쌓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그렇다면 나는?'이라는 각성을 해서 자기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비록 작은 일이라도 메디치 가문 같은 역할을 한번 시도해보는 것, 이것이 바로 용기다. 그럴 때 기존의 자기는 여지없이 깨지고 알지 못 했던 곳으로 건너간다. 여기 있는 자기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저곳 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작은 승리이며, 우주적 삶이 시작 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미미한 자신에게 '그렇다면 나는?'이라는 질문을 계속해대면서 일상에서 작은 승리를 경험하게 하는 일이 바로 우주적 삶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경험케 하는 작은 승리 안에서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고 허무와 득도가 한 몸이 된다. 작은 승리가 일어나는 잡다한 일상 안에서 우주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