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남파랑길

통영 용화사 템플스테이

나는... 누구인가? 2023. 10. 4. 03:05

2023.09.22.금  ~ 09.24.일

남파랑길 51코스를 갈까 하다 템플스테이로 정했다.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들을 하고 정리를 하고 있지만 마음속 그늘은 걷히지 않는다. 불안하고 초조한 이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혜가는 면벽수행 중인 달마를 찾아가 한쪽 팔을 자르고 피를 흘리면서 법을 구했다고 한다.
“제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님, 이 불안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달마 대사 왈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내가 편안케 해 주겠다.”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됐다. 이제 마음이 편안하냐?”
달마가 빙그레 웃었다. 그때서야 혜가는 달마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넙죽 절을 했다.

마음은 본래 없는 것인가? 그러나 중생은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힘든다. 오히려 없는 마음도 만들어내어서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생각이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낸다. 끝이 없다. 불안한 마음을 끊어 낼 수가 없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트래킹이다. 어느 심리학자의 강의에서 마음 근육을 키워야 편해질 수 있는데 마음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몸의 근육도 함께 키워야 가능하다는 말에 생명줄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다. 몸을 수고로이 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효과가 떨어져 갔다. 육체를 힘들게 하니 불안한 마음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올라가며 점차 틈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선방의 스님들은 극한의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마음의 간사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1일 차
어디로 갈까 하다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까운 사찰들의 일정을 검색하니 모두 마감이 되었고 통영 용화사는 가능했다. 더구나 다른 사찰들은 모두 1박 2일 일정이나 용화사는 2박 3일 일정이다. 금요일 3시 30분에 시작하는 일정인데 퇴근이 늦어 4시 30분에 도착했다. 템플스테이 팀장님의 친절한 소개로 절 구석구석을 돌아보다 보니 5시 20분 저녁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절밥이다. 공양 후 저녁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종각 앞에 서 있는데 스님께서 범종을 쳐보라고 하신다.

처음 두 번은 댕, 댕 가볍게 치고 그다음부터는 세게 쳐서 10분 동안 33번을 치면 된다고 하신다. 종을 치면서 종의 공명을 타고 마음속 불안이 멀리멀리 떨구어져 나가길 빌어본다. 불가능하겠지만...

예불을 마치고 용화사 뒷산 미륵산에 올라가 보려 했더니 템플 팀장님께서 밤이면 멧돼지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리신다. 대신에 경내를 여기저기 다시 한번 돌아보고 주변 산책길을 조금 걷다 배정된 숙소에 들어왔다. 이제 어둠은 짓게 내렸고 사방은 고요하다. 오직 기도하는 스님의 낮은 목탁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산사의 밤이 깊어간다.

2일 차
도량석 소리에 눈을 뜨니 3시 40분이다. 수면장애로 오랜 기간 애를 먹었는데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깊은 잠에 들었다. 얼마만의 숙면인지 모르겠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법당에 올라가니 종성이 시작되었다. 삼배를 올리고 잠시 앉아있다 절을 시작했다. 일 배, 이 배... 종송이 끝날 때까지 절을 하다 오분향례와 예불문을 염송 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光明雲臺 周遍法界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헌향진언 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옴 바아라 도비야 훔

부전스님의 청아한 목소리로 시작한 오분향례 후 장엄한 예불문이 시작되었다.

지심귀명례 至心歸命禮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갑자기 눈물이 난다. 울먹이는 소리로 예불문을 염송 한다.

원공법계 제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願共法界 諸衆生 自他一時 成佛道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예불문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예불문이 끝나고 발원문이 시작되면서 다시 절을 시작했다.
부처여. 이 미혹한 중생의 업장을 녹여주소서. 미련한 중생의 업보를 용서하소서. 어리 썩은 중생의 번뇌를 거두어 주소서...
얼마나 절을 했는지 모르겠다. 템플 팀장님께서 아침공양하라시며 중단시키신다. 공양간으로 가면서 처사님. 몇 배나 하신 거예요? 묻는데 지금 몇 시죠? 했더니, 여섯 시 반이라 하신다. 3시 50분쯤에 시작했는데 몇 배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더니 두 시간 반이면 대충 천칠백 배는 넘게 했을 것 같다고 하신다. 천칠백 배라는 소리를 들으니 얼쩡하던 다리가 갑자기 뭉쳐지며 아파온다.

맛있는 공양 후 샤워를 하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역시 몸을 고생시켜야 마음이 편한가 보다. 미련한 중생의 업보다.

소화도 시키고 뭉친 다리도 풀 겸 미륵산에 올랐다. 미륵산은 해발 461m로 비교적 낮은 산이긴 하나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팔랐다.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다져진 체력 덕분에 쉬지 않고 빠르게 올라올 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산정엔 길지 않은 줄기를 따라 곳곳에 조망할 곳이 만들어져 있다. 날씨가 조금 흐리긴 했지만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의 전경과 이순신장군의 얼이 깃든 한려수도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올라올 땐 용화사 왼쪽길로 왔는데 내려가는 길은 오른쪽길로 내려왔다. 가는 길에 도솔암과 관음암에 참배하기 위해서다.

도솔암은 고려 태조왕건 말년에 도솔(兜率)이 창건하였으며 조계종 1대 종정이신 효봉스님이 기거하시며 선종의 법맥을 계승하신 곳이다. 관음암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조관음보살님을 모시고 있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땀을 많이 흘려 냄새나는 몸을 씻고 법당에 올랐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신도님들이 많이 와서 법회준비를 하고 있다. 삼배를 올리고 절을 시작했다. 아침에 뭉쳤던 다리근육이 산행을 통해 완전히 풀어진 것 같다. 아침엔 흐르는 눈물 속에 힘들고 괴로운 마음으로 절을 했는데 이제는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절을 한다. 관음정근을 하며 식구들에게 잘 못한 것을 빌었고, 지장정근 하면서 돌아가신 부친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사시예불이 끝나고 점심공양 때까지 두 시간 정도 절을 했다. 아침에 한 것을 합치면 삼천배는 넘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힘들지가 않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니 유체가 이탈된 것인가.

점심공양 후 미륵산 너머에 있는 미래사에 다녀왔다. 미래사는 30년도 넘은 옛날에 한번 다녀간 적이 있다. 가물가물한 기억에 봉고차를 타고 갔고 주차장에서 절까지 걸어가던 길엔 편백숲이 있었고 절 마당엔 잔디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용화사에서 미래사로 가는 길은 2.2km 거리의 임도다. 빠르게 걸으면 30분 거리다. 길은  걷기 좋은 임도로 조성되어 있었다.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임도를 걷고 있지만 이 길도 참 좋다. 길가엔 개망초와 금계국,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듬성듬성 피어있다. 여름꽃과 가을꽃을 함께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는다. 멀리 왼편으로 견내량 바다와 거제도가 보인다. 아름다운 다도해의 섬들이 정겹게 이어진다. 작은 고갯길을 넘어서니 아래로 미래사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에 왔을 땐 용화사 반대편 산 아래에서 올라왔는데 오늘은 산허리를 둘러서 오다 보니 내려가는 길에 있다. 절에 가까워지면서 희미하게 옛 기억이 떠오른다. 역시 잔디가 깔려 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쪽을 보니 엄청나게 굵은 편백나무 숲이 감탄을 자아낸다. 경내엔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과 신도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대웅전에 참배하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잠시 쉬다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책을 읽는데 눈꺼풀이 천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몸고생을 많이 시켰다. 삼천배에 미륵산 등반에 미래사까지 다녀왔으니...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니 금방 꿀잠에 빠져들었다.

똑똑똑똑또르르르...  저녁공양 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두어 시간 정신없이 잔 것 같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공양간으로 내려가는데 다리가 뭉쳐져서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 이러다간 예불 올리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계속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하니 조금씩 좋아졌다. 종송이 시작될 때 법당으로 올라가 다시 절을 시작했다. 아직 발가락관절과 발목관절이 뻣뻣했으나 계속하니 괜찮아진다. 예불이 끝나고 1시간 정도 관음정근을 하면서 절을 하고 있자니 스님께서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이제 그만 숙소로 가서 쉬라신다. 법당에서 내려와 절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마음자리를 살펴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초조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
달마는 혜가에게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 했고 혜가는 그 마음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혜가는 안심을 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불안한 마음을 찾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없애지도 못하고 있다. 도인과 중생의 차이이리라.
그래도 절을 함으로써 부처님께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마음속 짖게 드리웠던 그늘이 많이 걷혔다. 며칠 안 가겠지만...
오늘 밤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3일 차
도량석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나오니 도량석 소리가 들린다. 도량석은 어간이라 부르는 법당 정문에서 시작하여 계송을 외며 도량을 순회한다. 어간을 출발하여 천왕문을 한차례 드나든 다음 명부전과 관음전을 비롯한 도량 안의 모든 전각을 돌아 처음 시작했던 밥당 앞 어간에서 마친다. 도량 안의 모든 이들이 도량석을 들으며 일어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세상에 잠들어 있는 천지만물을 깨우고 일체중생이 미혹에서 깨어나게 한다.
도량석을 들으며 잠시 명상을 하다 법당으로 올라가는데 어제보다 더 다리가 묵직하다. 삼배를 올리는데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 일어나기가 가능하다. 계속하다 보니 차츰 나아진다. 속으로 관음정근을 하면서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로 인해 고통받았던 만물에 대하여 용서를 빌고 그로 인한 업장소멸을 빌었다. 그러나 워낙 상습적인 재범이라 부처님께서 쉽게 받아들여주시진 않을 것 같다. 절을 하다 보면 신심이 두터워지고 마음이 밝아진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이 점차 사라지고 담담한 마음으로 지난 죄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고 차분하게 뉘우쳐지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침공양 후 관음암과 도솔암을 다시 찾았다.
어제는 몰랐는데 절 후원을 통해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있었다. 조금 걷자니 바닥엔 적당히 흙이 깔려있고 부드러운 낙엽도 깔려 있어 신과 양말을 벗었다. 밤새 내린 이슬을 머금은 흙길의 촉촉한 감촉이 발바닥 전체를 통해 전달되어 온몸이 상쾌해지고,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 시원한 바람은 잎을 스치며 한 편의 명상음악을 들려주는 듯하다. 천천히 느긋하게 걸었다.

오늘은 천도재가 있는 날이다. 49제 중 첫 재라 한다. 10시부터 시작하여 사시예불과 겸해서 12시에 끝났다. 재를 지내는 옆에서 2시간 동안 계속 절을 하고 있었더니 가만히 않아 있던 유가족들도 하나 둘 따라서 절을 한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모두들 포기를 한다. 재가 끝나고 공양간에 갔더니 남의 천도재에 절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며 떡이며 과일이며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나는 내 잘못을 빌었을 뿐인데...

점심공양을 마치고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법당에 올라가 삼배를 드리고 나왔다.
올 때는 그늘이 가득했는데 갈 때는 햇살이 가득하다.

나무 불
나무 법
나무 승

'여행,등산 > 남파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파랑길 53,54코스  (0) 2023.10.09
남파랑길 51,52코스  (0) 2023.10.05
남파랑길 50코스  (0) 2023.09.08
남파랑길 8,9코스  (0) 2023.08.27
남파랑길 6,7코스  (0) 2023.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