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거대한 퇴행

나는... 누구인가? 2024. 9. 14. 19:48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著, 해냄 刊

거대한 퇴행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는 2019년부터 최근까지 약 4년 동안 저자가 했던 교육 관련 강연을 모아놓은 일종의 강연록이다. 우연한 기회에 JTBC의 <차이 나는 클라스>에서 강연을 하게 된 이후 참으로 많은 강연 요청을 받았다. 전국에 있는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 각종 기관과 방송까지 가능하다면 최대한 이러한 요청에 응하려고 노력했고, 교육 문제의 심각성과 교육혁명의 절박성을 알리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 한국에선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근원 문제'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강연장에 갈 때마다 교육혁명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느꼈다.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 전문가 가릴 것 없이 교육과 관련이 있는 모든 이가 한국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놀란 점은 우리 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이다. 대안학교 학부모의 상당수가 교사라
는 얘기를 듣고 무척 당황했다. 학교 현장을 매일 경험하는 교사들이 정작 자기 자식은 공교육의 피안으로 보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많은 교사들이 현재의 상황에서는 공교육에서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고, 교육혁명의 필 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절박함에 있어서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받는 처절한 경쟁 교육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이를 넘어설 방도를 찾을 수 없기에 마지못해 부조리한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 "이제 정말 광장에서 촛불을 들 때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앞장서 주세요"'라고 말하는 학부모들을 수 없이 만났다.

누구보다 교육혁명을 절실히 바라는 이는 바로 한국 교육의 직접적인 희생자인 학생들이다. 매일 지옥을 경험하는 학생들은 살인적인 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며 즐겁게 공부하는 행복한 교실을 꿈꾼다.

한국 교육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비책을 내놓아야겠다는 야심을 저자는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누구라도 이루기 힘든 난제다. 다만 우리가 한국 교육의 민낯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교육혁명을 위해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함께 손잡고 나선다면, 한국 교육은 머지않아 반드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원래 계획보다 일찍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현실의 다급한 요구가 보다 체계적이고 충실한 책을 내놓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어그려뜨렸다. 윤석열 정부가 시대에 역행하는 퇴행적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책의 완결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현실의 시급성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교육관에 경악했다. 2023년 1월 5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그는 말합니다.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라고 생각해 보자. 경쟁시장 구도가 돼야만 가격도
합리적이 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관련 상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는 교육을 '존엄한 인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는 과정'이 아니라 철저히 시장에서 거래되는 서비스상품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시장적 교육관은 밀턴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의 성서라 불리는 "택할 자유에서 주장한다. "학교 교육에서 부모와 자녀는 소비자이며 교사와 학교 관리자는 생산자다. 학교산업은 경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학교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프리드먼의 충직한 수제자로서 윤 대통령은 철 지난
신자유주의 교육론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논리에 따르면 교육도 시장의 상품이다. 따라서 교육도 무한 경쟁의 원리에 따라야 하고,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춰 제공되어야 한다. 세계 최악의 경쟁 교육을 한다고 비판받는 나라에서 현재의 교육을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길 위험한 관점이다. 학교 서열화, 교육 불평등, 살인적 경쟁을 더욱 심화시켜 학생, 교사, 학부모와 사회 구성원 모두를 더 큰 교통에 빠트릴 것이 너무도 자명하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쟁 교육이 빠른 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전수평가가 확대되고, 특목고가 부활하고 있으며, 상대평가가 강화되고, 정시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 교육이 빠른 속도로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쟁 교육이 심화
되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사이에 사교육비가 무려 26조로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사교육 참여율 또한 78퍼센트로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52만 4천 원으로 역대 최고치에 이르렀다. 경쟁 교육 강화가 사교육 수요를 자극한 결과이다.

경쟁 교육이 급속히 강화되는 이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며 책의 출간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교육정책을 저지하지 않으면 한국 교육이 파탄의 벼랑으로 떨어질 것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