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著, 해냄 刊
야만의 트라이앵글
경쟁 교육이 이처럼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데도 우리는 이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경쟁 교육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왜 우리는 경쟁 교육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경쟁 교육이 '만악의 근원'임을 알면서도 이를 지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경쟁 교육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정도까지 완화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경쟁 교육의 폐쇄회로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경쟁은 좋은 것이다. 경쟁이 설혹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고,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라는 생각들이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경쟁이 자연스럽고, 긍정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한국인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지배적인 생각이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이처럼 '지배적인 잘못된 생각'을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조금 학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데올로기란 '특정 사회나 집단에서 지배적인 잘못된 관념체계'를 뜻한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은 '경쟁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잘못된 관념체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경쟁 이데올로기는 무소불위의 위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한국은 만인이 만인과 경쟁하는 '경쟁 사회'를 넘어, 경쟁이 이상화되고, 절대화되고, 최고의 원리로 부상한 '경쟁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 경쟁은 사회를 작동시키는 '원리'를 넘어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영혼'이다. 경쟁이 없는 세상,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세계를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다.
경쟁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유례없는 위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경쟁 이데올로기를 '능력주의'와 '공정'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결과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고, 경쟁의 '과정'은 공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합리화된다. 이처럼 경쟁-능력주의-공정 이데올로기는 서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강고하게 상호 결합되어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3각의 이데올로기 체제를 이룬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가 경탄하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게 최악의 불평등,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 '지옥 같은 사회'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 3각의 이데올로기 체제 때문이다. 나는 경쟁-능력주의-공정의 3각 이데올로기 체제를 한국 사회를 야만적인 사회로 만든 가장 결정적인 관념체계라고 보고, 이를 '야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이 잘못된 3각의 이데올로기 체제가 한국인의 의식을 완전히 장악한 결과, 한국인은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약탈적 야수자본주의, 천박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이에 저항하기는커녕 '자발적으로 자신의 불행에 스스로를 내던지고' 있다. 이데올로기 이론의 대가 테리 이글턴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어려운 해방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
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정상성의 병리성(pathology of normality)'이 한국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사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는 우리 사회 어딘가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병리적'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야만의 트라이앵글이 한국 사회를 병들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 능력주의, 공정처럼 우리가 당연시하는 가치들이 사실은 지배 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 기가 아닌지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이다. 이러한 성찰을 '이데올로기 비판'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이데올로기 비판적 관점에서 쓰였다. 경쟁-능력주의-공정의 3각 이데올로기 체제가 어떻게 그리고 왜 '야만의 트라이앵글을 구성하는지는 이 책의 본론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경쟁-능력주의-공정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아만의 트라이앵글을 깨부숴야겠다는 생각이 저자가 이 책은 쓴 가장 중요한 동기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 책을 쓸 때 직면한 가장 넘기 힘든 장애 물이기도 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심지어 바람직하다고, 적어도 불가피하다고 느끼고 있는 생각을 비판하고, 관점을 바꾸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경쟁이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성취와 발전을 가저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고통과 불행을 가져온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과연 경쟁이 협력보다 정말 나은 것일까?
능력주의가 중세 시대의 신분제를 넘어서 근대 사회의 새로운 진취적 가치가 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오늘날 사회 기득권 집단의 특권을 강화하고 정당화하고 세습시키는 이데올로기로 타락한 것도 사실이다. '능력 있는 자'가 부와 권력을 모두 독식하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공정이 불공정한 사회를 비판하는 중요한 개념적 도구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정은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것도 사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잣대를 대면 누가 이길까?
나는 '야만의 트라이앵글' 개념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위력적인 세 가지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0) | 2024.09.14 |
---|---|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거대한 퇴행 (0) | 2024.09.14 |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7) | 2024.09.14 |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0) | 2024.09.13 |
경쟁 공화국 (1) | 202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