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著, 해냄 刊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세계 최악의 경쟁 교육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불행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총체적 난국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다. 절망적 파국의 낭떠러지 끝에서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당장 돌아서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도 암울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불행하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신문 (르몽드)는 "한국의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한국의 교육은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고통을 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라고 이유까지 덧붙였다. 독일의 공영방송도 한국의 교육을 취재하러 왔다가, 학생에 대한 일상적인 인권 유린과 학대에 너무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프로그램의 성격을 '교육 프로에서 인권 프로로 바꾸어 내보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대학생 열 명 중에 여덟 명이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쟁터'로 기억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경쟁 교육으로 악명 높은 미국과 중국 학생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우리 사회 또한 너무도 병들어 있다. 다양한 국제적 지표들이 우리나라의 병리성을 가리키고 있다. 먼저 한국인은 세계에서 '불평등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2014년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소득이 보다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4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소득 차이가 지금보다 더 벌어져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무려 59퍼센트이다. 한국인의 불평등 선호는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우리의 전도된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조사 결과다. 독일의 경우는 정확하게 우리와 대척점에 있다. '평등에 찬성한 이가 58퍼센트, '불평등'에 찬성한 이가 16퍼센트였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나라이기도하다. 2020년 영국의 킹스칼리지 런던정책연구소의 의뢰로 입소스(Ipsos)에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28개국 중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나라'로 밝혀졌다. 12개 조사 항목 중에서 무려 7개 항목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빈부 갈등, 이념 갈등, 정당 갈등,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종교 갈등, 학력 갈등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였다.
한국은 타인에 대한 관용도도 가장 낮은 나라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세계가치관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52개 국가의 관용성 수준을 평가한 결과 '자녀에게 관용을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45.3퍼센트로, 52위 꼴찌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한국이 1,800달러의 르완다(56.4퍼센트)보다도 관용도가 낮았다. "여러분의 자녀가 같은 반에 성적이 낮은 친구와 어울린다면,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네가 좋 도와줘라,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개랑 놀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 교육이 한국인의 내면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했는지를 이보다 더 선연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경쟁 교육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례는 최근 우리 교육이 길러낸 '최고의 엘리트들'이 보인 행태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의료 파업을 일삼는 의사들, 사법 농단을 저지른 고위 판사들에 대해 무죄 판결로 일관하는 판사들, 고위 검찰 간부들에 대한 '봐주기 수사'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검사들의 행동은 한국 엘리트들의 민낯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보편적 정의의 편에 서기는커녕, 이처럼 집단적 이기주의에 매몰된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유독 한국의 엘리트 중에 대중을 깔보는 오만한 자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교육 탓이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교실에서 12년 동안 자란 아이가 어떻게 성숙하고 기품 있는 인간이 되겠는가.
우리나라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소멸해 가는 나라이다. 2023년 12월 2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로스 다우서트의 칼럼 '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정조준한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이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왜 이런 극단적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다우서트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경쟁 압박과 불안을 핵심적인 원인으로 보면서도, 그 근원에는 극심한 입시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잔혹한 학업 경쟁 문화는 부모를 불안하게 하고 학생을 비참하게 만든다."
다우서트의 칼럼이 나온 바로 다음날인 12월 3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서 발포한 보고서도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 초저출산 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초저출산의 원인은 주거•고용•양육 불안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 압력을 급속한 출산율 저하의 결정적인 이유로 들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저출산 한국'을 심지어 '집단 자살사회'로 규정했다. 초저출산으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상을 지적한 것이다.
2024년 2월 27일 영국 BBC에서 다룬 보도 '왜 한국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나(Why South Korean women aren't having babies.)'에서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국가 비상상태'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국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값비싼 사교육비'가 저출산의 주요 원인임을 밝히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도 한국을 '인구 소멸 국가 1호'로 지목했습니다. 그도 초저출산의 원인으로 높은 경쟁 압력, 고용•주거•양육 불안, 가부장적 가족 문화, 낮은 성평등 의식, 비혼 동거문화와 출산에 대한 폐쇄성 등을 들고 있지만, 그중에서 경쟁 압력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유명 유튜버인 마크 맨슨이 최근에 촬영한 유튜브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I traveled to the most depressed country in the world.)'는 한국 사회에 대한 상당히 수준 높은 분석을 담고 있다. 그는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하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울증과 불안, 자살률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처럼 불행한 사회가 된 원인으로는 경쟁과 성과 압박, 특히 "절대적으로 잔인한(absolutely cruel) 교육 시스템"을 지적한다. 맨슨의 유튜브를 보는 내내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개탄하며, 우리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우울한 나라'이다 보니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이케아에서 38개국을 대상으로 한 `2023년 소비자 조사'를 발표했는데, "집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즐겁다"는 응답을 한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 결과 또한 치열한 경쟁의 각자도생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고달픈 삶을 반증하는 것이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결국 이 모든 지표와 많은 석학들의 지적이 가리키는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바로 경쟁이다. "세계 최고의 우울증"(마크 맨슨), 세계 최저의 출산율"(뉴욕타임스), "세계 최악의 갈등 국가"(킹스 칼리지), "세계 최고의 홀로주의"(이케아), 이러한 암울한 세계 기록들의 뿌리에는 모두 극단적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경쟁, 특히 경쟁 교육이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로 만든 것이다. 이를 해소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교육의 문제를 넘어 국가 존립의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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