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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9코스(영덕 블루로드 D코스)

나는... 누구인가? 2024. 5. 24. 21:32

2024.05.24.금

해파랑길 19코스(15.7km)
화진해변 ←4.1km→ 장사해변 ←5.1km→ 구계항 ←3.8km→ 삼사해상공원 ←2.7km→ 강구파출소 (강구버스터미널)

걸은거리 17.65km
걸은시간 14:37~18:56, 4시간 19분 소요

영덕 블루로드 D코스 / 쪽빛파도의 길

http://blueroad.yd.go.kr/ko/open_content/course/wave/

영덕 블루로드의 D코스입니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하늘과 여기서만 마실 수 있는 공기를 마음껏 담아 본다. 이곳을 떠나는 순간 금새 다시 그리워 질테니까... 7번 국도를 축으로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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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해파랑길 1코스를 걸은 후 5주 만에 다시 시작한다. 애초에 코스 순서대로 걸으려고 계획했었으나 이곳 동해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중간은 건너뛰고 '영덕 블루로드'와 같이하는 19코스부터 시작해 완주 후 그전코스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걸으려 한다.
금요일 오전근무 후 12시에 퇴근해서 강구항으로 출발했다. 2시간 가까이 달려 강구항에 도착했고 적당한 공터를 찾아 주차해 두고 택시를 이용해 화진해변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기사님께서 지역명소와 함께  블루로드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영덕블루로드는 대게누리공원에서 강구항 - 해맞이공원 -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까지의 64km로 A, B, C, D코스가 있는데, 해파랑길 19, 20, 21, 22코스와 일치한다. 영덕블루로드 A코스는 '빛과 바람의 길'로 해파랑길 20코스와 같고, B코스는 '푸른대게의 길'로 해파랑길 21코스와 일치하며 C코스는 '목은사색의 길'로서 해파랑길 22코스와 같다. D코스가 거꾸로 해파랑길 19코스와 같은 것은 영덕블루로드 중 가장 나중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코스 시작점은 화진해수욕장이다.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316.8Km 지점이고 고성 통일전망대까지는 453.1Km 남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진해수욕장의 조형물이 예쁘게 디자인되어 있다. 정말 우리 한글은 그 과학적인 체계나 형태를 봤을 때, 인류사 최고의 문화유산이 아닐까 싶다.

화진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 해변이다. 잔잔하게 들이치는 파도가 아름답다. 물이 깊지 않고 경사가 완만해서 어린아이를 동반한 해수욕객들에게 제격이다. 물도 깨끗하고 상업 시설도 거의 없어 조용하게 지내고픈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고래바위

화진해수욕장을 뒤돌아 보는 곳에 고래바위가 있다. 내 눈에는 혹등고래로 보이는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눈에는 어떤 고래로 보일까?
지경리 포구로 가는 길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바위와 소나무, 바다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트레킹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호랑이바위

화진해수욕장은 포항지역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위치한다. 거기서 조금 가면 고래바위가 있고, 또 조금 더 가면 호랑이 바위가 있다. 이 호랑이 바위는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동해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형상이다. 호랑이 한 마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경항 포구

포항지역의 마지막은 마을은 지경리이다. 땅의 경계라는 뜻이다. 이 마을로 가는 길은 해안선을 따라서는 바위와 작은 소나무들이, 좌측 내륙 쪽으로는 카페와 펜션들로 이어지는 길이다. 조금 지루하다고 느껴질 무렵, 포항 내연산 자락에서 이어지는 지경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 지경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기점으로 포항과 영덕으로 구분된다.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면 영덕군 부경리에서 시작되는 '영덕 블루로드' 길이다.

지경교
영덕 블루로드 출발점 조형물

영덕 블루로드는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770km 해파랑길의 일부로, 영덕 대게공원을 출발해서 강구항, 축산항을 거처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도보여행을 위해 조성된 약 64.6km의 해안길이다. 푸른 동해의 풍광과 풍력발전단지, 대게원조마을, 축산항, 괴시리마을 등 풍부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가족이나 어린이를 동반하여 신재생에너지전시관 등을 둘러보며 환경의 중요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친환경적인 생태여행을 경험할 수 있어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부경리마을 입구 어느 집 담장에 핀 장미
부경리마을회관
부경항 포구

부경리를 지나면 장사(長沙)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와 만난다. 국도를 따라 조금 걸으니 택시 기사님께서 꼭 둘러보라시던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되었던 "문산호' 배가 보인다. 문산호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이용 중이다.

아! 학도병들이여...

역사 속으로...
학생들은 학업 대신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학도의용군을 조직하고 조국을 수호하는데 앞장섰다. 학생의 신분으로 조직된 학도의용군은 전쟁 초기부터 국가의 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전쟁 중에 현역으로 충원됨으로써 국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50년 9월 14일, 대부분 젊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육본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는 2,700톤 급의 LST문산호에 올랐다.

작명 174호

장사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
1950년 6월 25일 미명을 기하여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아군은 을 최후 방어선으로 적과 치열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을 때, UN군 총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총반격전을 위한 인천상륙을 결심하고, 동해안 장사동 적 후방 적전상륙의 양동작전 명령을 하달함으로써 시작된 전투이다. 제1유격대대(대대장 이명흠)는 대원 772명, 지원요원 56명과 문산호(2,700톤급)로 부산항을 9월 13일 15시경 출항, 다음날 새벽 5시경 장사동 해안 상륙지점에 도달하였으나 케지아호 태풍으로(파고 3-4m) 배는 좌초되고, 적의 포화 속에 대원들은 구국일념의 투혼으로 악전고투 끝에 상륙에 성공. 적 후방 교란, 보급로 차단, 퇴각로를 봉쇄하고, 적의 전의를 상실케 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 상륙전에서 아군은 학도대원등 전사 139명, 부상 92명을 포함하여 수십 명의 행불자를 발생시켰다. 그 후 육군본부에서는 이 전투에 참전한 유격대원에게 우국청년(의사)이라 호칭하였다.

LST-120(Landing Ship, Tank 120)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해군 <USS LST-120>으로,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해군에서 <LST 문산>으로 활동했던, 전차 상륙함이었다.
1947년 2월, LST-120을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들여 <문산>(이하 문산호)으로 명명하였고, 교통부 산하 대한해운공사에서 밀가루나 석탄을 운송하는 운송업에 종사하였다. 묵호항에서 석탄을 싣기 위해 정박하고 있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해군 묵호 경비 부사령관 김두찬 중령의 전시 동원령에 의해 징발되었다.
당시 육군-경찰 합동부대인 묵호 전투부대가 1950년 6월 25일에 상륙한 조선인민군 해군 제549육전대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문산호는 퇴각하는 묵호 전투부대를 포항으로 탈출시켰고, 3일 뒤 해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재정비한 묵호 전투부대를 태우고 묵호로 다시 출향 하기도 하였다.
9월 14일, 문산호는 제1독립 유격 대대의 장사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출항하였다. 대대원 772명을 태우고 장사에 도착했으나, 곧 태풍 케지아(Kezia)에 의해 해안가에 좌초되었다. 간신히 상륙한 대대는 1주일간 조선인민군 제2군단의 주의를 끌었고, 그들과의 전투에서 문산호의 황재중 선장과 선원이 전사하였다. 생존자들은 9월 19일 USS 헬레나(CA-75)를 기함으로 한 제7함대 포격임무대(bombardment Task Force)의 지원으로 엄호받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LST 조치원>호를 타고 철수하였다.
문산호는 장사리 해안가에 좌초되어 버려진 뒤 그대로 잊혔다가, 1991년 3월 6일에 발견되었다. 장사 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한 전승기념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레플리카(Replicas: 복제)로 재현되었고, 좌초된 실제 문산호는 아직 바닷속에 있다고 한다.

남겨진 39인

남겨진 39인
상륙부대의 긴급구조 요청을 받은 한국 해군본부는 유엔군에 지원을 요청하여 즉시 미 육군의 스피어스 소령을 L(해난구조선) 636호에 승선시켜 현장으로 보냈다. 이 배는 15일 밤 10시경 부산항을 출발한 후 다음날 아침 7시경에 현지에 도착하여 LST문산호 구출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배가 너무 깊이 좌초되어 있어 구조에 실패하고 일몰과 동시에 돌아갔다. 한국 해군의 304정 역시 LST문산호를 구출하고자 출동하였으나, 시계불량으로 소재를 발견하지 못한 채 풍랑이 심하여 구룡포로 돌아갔다. 드디어 9월 19일 새벽 5시가 지나서 LST함정 1척이 LST문산호로 접근해 왔다. 이 배는 LST조치원호로서 미 육군 소령 프랭크 스피어가 지휘하고 있었다.
LST조치원호는 LST문산호 북방 400m, 육지로부터 약 30m 떨어진 지점에 배를 접안시켜 닻을 내렸다. 그리고 스피어 소령의 지휘로 유격대원 구출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LST조치원호가 해안에서 너무 멀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보트를 활용하는 외에 해안부터 LST조치원호까지 빗줄을 연결한 후 줄을 이용해 유격대원들을 승선시켰다. 중환자부터, 제28연대, 제37연대, 사령부, 제32연대, 제29연대 순으로 탑승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매복해 있던 적들이 유격대의 철수를 눈치채고 맹렬하게 사격을 가해왔다. 천신만고 끝에 갑판에 올라도 적이 쏜 박격포탄에 대원들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낮 12시 정도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승선이 오후 3시가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오후 3시 40분경, 결국 적의 역습으로 인해 LST조치원호 선체가 손상될 염려로 인하여 승선을 중단하고 출항할 수밖에 없었다. 해안에는 아직도 39명의 대원들이 남아 있었다. 이미 배를 탄 사람들은 이 광경을 처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때 LST조치원호에 승선하지 못한 대원들은 대부분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퇴각을 위해 필사적으로 'LST 원산호'에 오르는 학도병들
문산호에서 바라 본 장사해수욕장

문산호에서 바라본 장사 해수욕장의 풍경은 우거진 솔숲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고, 고운 모래가  아름다운 해변이다. 지금도 포화 속에 떠난 그날의 영령들이 머물고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저미어 온다.

- 장사상륙작전과 영웅들 -
인천상록작전 성공의 토대를 마련한 장사상륙작전. 조국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작전을 감행했던 어린 학도의용군.
이제라도 우리는 장사상륙작전의 의미와 가치를 바로 알고 그들의 호국충절과
희생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장사상륙전 전몰용사 위령탑

장사상륙작전 참전용사 명단 위령탑 앞에서 머리 숙여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린다

작전명 174호... 잊혀진 영웅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장사상륙작전을 다룬 곽경택·김태훈 감독의 영화가
2019년 9월 25일에 개봉되었다.

날씨가 좋아 많은 캠퍼들이 해안 원두막과 오토캠핑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길은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지루하게 북쪽으로 이어진다.

부흥리 전경

멀리서 본 부흥리 전경은 지붕색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쓸모없을 것 같은 담벼락을 이용해 낚시하는 소년상을 만들어 놓았다. 주인장의 예술적 소양이 엿보인다.

곳곳에 포토존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은 물고기 두상을 이용해 만들어 놓았다.
부흥리를 지나 해변 자갈길 걷고 있는데 갑자기 길이 끊어진다. 살펴보니 앞쪽은 군부대다.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군부대 담장 옆으로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오니 다시 7번 국도와 만나고 한참을 걸으면 원척리가 나온다.

원척리의 동신당

길을 걸으면서 내륙의 마을에서는 성황당, 바닷가 마을에서는 용왕당을 많이 보았는데 '동신당'이란 명칭의 신당은 처음 본다.

원척리 포구

방학중은 근세의 해학과 풍자의 달인, 영덕읍 하저리 출신이다. 역사적 인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일생을 백수로 산 해학가, 못하는 것이 없는 기발한 재주꾼, 유머가 넘치는 익살스러운 인물이다. 더러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속임수나 심술을 부리는 이야기도 있어 천하 잡보라고 불렸다. 방학중 전설은 구비역사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으며, 영덕(영해)을 비롯하여 경북의 안동과 봉화를 넘어 강원도 지역에서도 풍부하게 전승되어 있다. 이와 같은 유형의 인물로는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평양의 봉이 김선달, 한양 정수동, 경주 정만서가 있다. 그중에서도 방학중이 가장 격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천하 잡보'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해안가로 100m 정도 떨어진 남정면 원척리 동해가 보이는 '지푸심골'에 그의 묘소가 위치한다.

원척리에서 구계항으로 가는 7번 국도변 테크길에서 바라본 해변은 좌우측으로는 접근하는 도로가 없고 전면은 벼랑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사람도 없고 해변이 무척 깨끗하다. 인간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은 어디나 청정한 자연이 유지된다. 인간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구계항 포구

멀리서 바라본 구계항 포구는 조용한 어촌마을의 정겨운 풍경이다.

조용한 구계항은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없어서 인지 활어시장이 닫혀있었다.

남호해수욕장 전경

남호해수욕장을 지나면 나오는 남정방파제를 지나자 오색 빛깔을 띈 작은 자갈들이 깔려 있는 해변이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색의 작은 자갈밭을 발이 푹푹 빠지게 걸어본다.
서해안 태안반도의 파도리해수욕장과 유사하다.

남호리 마을회관 앞 인도교

멀리서 봤을 땐 옛날에 지어진 작은 차도라 생각됐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인도교다. 다리의 폭이 약 1m 정도로 좁다.

싱싱한 활어가 넘치는 푸른바다 삼사(三思)항

싱싱한 활어가 넘친다는 구호가 적혀 있는 삼사리 표지판. 횟감의 제왕이라는 돌돔을 그려 놓았다.

삼사 해상산책로

2011년 4월에 준공한 이 산책로는 길이 233m의 해상산책로다. 바다로 향해가는 은행나뭇잎 모양의 부채꼴로 만들어져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노란색 페인트로 바다낚시 체험존도 표시해 놓았다.
새해 아침에 해맞이 축제가 열리는 명소로서 삼사해상공원의 경북대종 타종행사와 함께 희망찬 새해를 연다.

해상산책로에서 본 삼사항 전경

삼사항은 1997년 MBC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이다. 최불암, 김혜자, 고 최진실 등 유명배우들이 출연했다. 강구항과 함께 드라마 촬영장소가 되어 갑자기 유명세를 탄 곳이다.

민규(송승헌)가 애견 도꾸와 함께 바다로 고기잡이 떠난 아버지(최불암)를 기다리던 오포등대와 백사장, 박선장(최불암)의 꿈과 희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강구항, 박선장과 가족들이 고향 영덕의 해맞이 축제에 참석하여 떠오르는 신년해를 바라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던 삼사해상공원 등 아직도 드라마 속의 명소들이 고스란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동해의 맑은 정기가 서린 삼사해상공원은 청정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행락객들이 줄을 잇는다.

삼사해상공원 입구
영덕군의 심벌

바다의 빛
산과 바다, 강이 삼위일체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광의 고장 영덕. 유구한 역사와 향기 높은 문화를 창조해 온 영덕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과 파도를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영덕군민의 꿈과 희망, 영광을 상징하였으며 자연과 문화를 소중히 가꾸는 고장, 영덕의 미래가 하늘과 땅끝까지 영원히 밝게 빛나길 기원한 작품이다

경북대종(慶北大鐘)은 경상북도 개도(開道) 100주년(1996.08.04)을 맞이하여 도민의 단결을 도모하고, 조국통일과 민족화합을 염원하며, 환태평양시대의 번영을 축원하는 삼백만 도민의 큰 뜻을 담고 있다. 종의 모양은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국보 제29호)을 본(本)으로 삼아 천인상(天人像)과 비천상(飛天像)을 새겨 넣었다. 대금 부는 천인상은 문화예술의 고장을, 사과를 든 비천상은 경북의 풍요로운 결실을 상징한다. 경북대종의 총사업비는 18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종각(鐘閣)은 대지 2,410m 규모가 지상 1층 66.1m, 지붕은 십자형(+동 ) 합각(合閣)으로 꾸몄으며, 대종은 지름 250cm, 높이 420cm, 무게 7,700관(약 31톤)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중 무게 칠천 칠백관의 칠천은 남북한 겨레 칠천만을 뜻하고, 칠백은 경상도의 명칭이 정해진 고려 충숙왕 원년으로부터 칠백 년을 가늠한다. 종각이 세워진 이곳은 경북 영덕 삼사해상공원(三思海上公園)으로 동해의 찬란한 아침 햇살이 영원히 비칠 영지(靈地)다. 대종에서 울려 퍼지는 장엄(莊嚴)한 소리는 온누리에 평화와 사랑의 축복을 영겁(永劫)에 전하리라. 그리고 이곳 "삼사 "의 지명유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하나는 '통일신라시대에 세 사람이 시랑(侍郞) 관직을 지냈다'해서 '삼시랑(三侍郞)'이라 하고, 또 하나는 '세 번 생각한다고' 해서 '삼사(三思)'라고 부르는데 이는 '들어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한다'라고 한다.

경북대종
영덕 어촌민속 전시관

강구항 포구에는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고 건너편 대게거리 건물벽에는 커다란 대게 조형물이 걸려있다.

강구대교 위의 대게 조형물

강구시장에서 물가자미 회덥밥으로 저녁밥을 먹고 나오니 벌써 초저녁 어둠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