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6.목
해파랑길 22코스(16.1km)
축산항 ←2.3km→ 대소산봉수대 ←5.8km→ 괴시리전통마을 ←2.4km→ 대진항 ←5.6km→ 고래불해변
걸은거리 18.20km
걸은시간 13:34~18:43, 5시간 8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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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블루로드의 C코스입니다.
“바다, 나는 결국 네게로 왔다. 돌연한 네 부름은 어찌 그렇게도 강렬했던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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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없던 술자리에서 과음을 한 탓에 늦게 일어났다. 당초 해파랑길 22, 23코스를 걸을 계획이었으나 22코스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동해에서 11시 40분에 출발하여 1시 30분에 축산항에 도착했다. 축산항 버스승강장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해파랑길 22코스를 시작한다.

해파랑길 22코스 시작점은 축산리 버스정류장이다.

통사동 동신당과 남씨 발상지 표지석 사이의 계단을 시작으로 와우산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방파제 입구에 '남씨 발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 일대는 남씨 시조 영의공 유적지다. 표지석은 남덕우 국무총리의 글씨로 남씨 대종회에서 세웠다.
축산항은 남씨의 시조 영의공 '휘 민'이 서기 755년(당 천보 14년, 신라 경덕왕 14년)에 안렴사로 일본에 갔다가 귀로에 태풍을 만나 도착한 지점이다. 이때 중국 여남출신인 영의공께서는 신라에 살기를 원하므로 경덕왕은 여남에서 왔다 하여 남씨로 사성하고 천자가 영민하다 하여 이름을 충에서 민으로 개명하고 영의라고 시하였다. 영의공 유적으로는 유허비, 이부동, 통사동, 망제단, 망향대, 일광대, 월영대, 절부총이 있다

언덕 위 정자 옆에서 잠시 뒤돌아 축산항 전경을 감상한다.

와우산에는 남씨 시조 영의공의 유허비 등 관련 유적들이 있다.
와우산 입구 남영의공 유허비
왼쪽이 1798년 9월 15일에 세워진 구비이고 오른쪽은 1973년 3월 10일에 세워진 신비다. 이 비석을 세운 지 불과 40년 만에 구비가 기울어지고 신비 과대의 균열, 철책 부실로 2014년 3월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신비는 한글을 혼용한 비석이라 비문을 읽기가 편하다. 구비는 원래는 바닷가 반석 위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1973년 신비가 세워질 때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세월과 이 비석이 세워졌던 장소를 고려할 때 비석의 상태는 상당히 양호하다

좀 더 위로 올라가니 유허비각이 또 있다. 이 비각 앞에는 영양김씨 시조공 사적안내판이 있는데, 영의공의 본명은 김충이다. 시조는 같은 사람이지만 경덕왕이 하사한 남씨를 쓰는 후손과 영의공의 본래의 성인 김씨를 쓰는 후손이 따로 비석을 세웠다.

와우산 정상가는 길에는 '월영대'라는 비석이 두 개 있고, 정상에는 '일광대'라는 비석이 두 개 있는데 어떠한 설명도 없다. 투박한 것은 오래된 것이요, 세련된 것은 최근에 만든 것 일 뿐이다. 그런데 울창한 소나무에 가려 달도 해도 잘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와우산 정상에는 몇 개의 벤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특별한 것은 없다. 빽빽하게 자란 해송들로 인해 전망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와우산에서 내려오니 망망한 바다가 조망되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

산 같지 않은 산, 와우산을 내려가 영덕대게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좌측으로 대소산(285.8km) '봉수대'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도 '기 받기 좋은 곳'이란 안내판이 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 어디엔들 기 받기 좋은 곳 아닌 곳이 있을까.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는 해파랑길 22코스가 영덕 블루로드 C코스와 같이 함을 알려준다.

아주 가파르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조금 경사가 있는 산길을 쉬지도 않고 오르려니 땀이 많이 흐른다.
솔향기를 맞으며 걷는 오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1시간 정도 산행 끝에 봉수대에 도착한다. 대소산 봉수대에서는 사방으로 조망이 참 좋다. 바다 쪽도 좋지만 반대쪽으로는 넓은 들판과 산군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축산항도 절경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오솔길이다. 참. 좋다.


봉수대를 지나고도 산길은 계속 이어지지만 그렇게 힘든 구간은 아니다.

목은 이색 등산로는 길게 이어지는 오솔길의 연속이다. 고즈넉한 오솔길을 걸으면서 솔향기를 마시는 행복한 길이다.

망월봉 정상에 있는 정자 망월정

망월정에서 바라보는 망망한 동해바다. 아름다운 풍광과 시원한 솔바람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망월정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 이 일대에는 풍력발전기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솔방울과 솔잎이 우수수 떨어진 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망월봉에서 내려와 망일봉으로 가는 길에는 시너리제를 넘어가는 도로 위에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구름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한가로운 바다. 너무 푸르지도 않고 적당히 해무가 낀 차분한 바다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젊은 시절 목은은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꿈을 키우며 사색 했을까.


표지판은 없지만 망일봉(169m)이다. 주변에는 운동시설과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해파랑길을 걷다 보면 마을과 산, 많은 곳에서 정자를 만날 수 있었는데 정자는 모두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다. 신을 벗고 올라가라는 안내문도 있었고 누군가 청소하는 사람이 있는지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어서 여행자들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목은 이색기념관 가는 길과 관어대 가는 길 갈림길에 백운동 서원을 세운 신재 주세붕의 <망일봉>이란 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망일봉 / 신재 주세붕
고향엔 낙엽이 쓸쓸히 날리겠지만
높은 봉우리에 한 번 올라 해돋이를 보니
금빛 햇무린 하늘과 이어져 있고
수레바퀴처럼 밀려오는 파도는 지축을 쪼개네.
상국의 큰 도량은 산과 바다를 삼킬 듯 넓지만
서생의 크게 뜬 눈엔 천지가 작아 보이는데
만약 겨드랑이에 날개 생겨 날 수 있다면
아득히 먼 만장 구름 위로 한 번 날아 보려네.
신재 주세붕 선생은 1495년 경남 함안군 칠원에서 태어나, 황해도 관찰사, 호조참판을 역임했다. <망일봉>은 유년시절 영해 망일봉에 올라 지은 시이다.


고려말 정치가이자 대유학자였던 목은 이색(1328~ 1396년)은 영양남씨 집성촌인 괴시마을에서태어나 원나라에 유학했으며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는 등 고려말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신진사대부 세력을 이끌었다. 고려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에 충성을 다했으며, 조선중기 이후 주류세력이 되었던 사림의 학문적,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인물이다. 목은 선생께서는 영덕에서 태어나 일찍이 고항을 떠났으나, 종신토록 고항을 잊지 않았다. 특히 영덕과 관련하여서는 관대소부와 유사정기 외 20여
수에 이르는시가 있어 당시 고향에 대한 선생의 생각과 당시의 풍습과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6,000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시문을 남긴 대문호일 뿐만 아니라 성리학을 진작시킨 대학자였다.


잠시 기념관 내부를 둘러본다.

영해를 그리워하며 / 목은 이색
외가택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성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녘 바다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 하니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황량한 마을서 하룻밤 단란히 묵으면서
젊은 시절 회포를 자세히 논해보지 못하였는데
회상컨대 몇 년 사이 선배들은 다 떠났고
아침 까치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일세
목은 이색 선생은 1328년 영해면 괴시리(호지말)에서 태어났다.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 3은 이며 문하시중을 역임했다.

괴시리 전통마을에서 목은기념관으로 가는 골목길의 아름다운 기와담장.

괴시리 전통마을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800m쯤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 가옥들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마을 괴시리마을이 있다. 원래 이름은 호지촌으로 목은 이색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자기 고향이 중국의 괴시와 비슷하다 하여 괴시로 부르면서 명칭이 굳어졌지만, 호지골, 호지마을, 호지촌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괴시리 전통마을은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400여년간 세거를 누리며 살고 있는 팔자 형국의 마을이며 마을 앞에는 영해평야가 광활하게 전개되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고택들은 모두 2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들로, ㅁ자형 구조로 뜰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사랑채 뒤에 안채를 숨겨 안팎을 완전히 분리하는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가옥 가운데 괴정, 영해 구계댁, 영해 주곡댁, 물소와서당 등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4건과 문화재자료 12건, 30여채의 전통가옥과 마을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낮은 담장들로 이어진 고택들 사이를 거닐면 잘 가꾸어진 정원과 고택과 현대의 조화로운 생활 모습을 볼 수 있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한옥 스테이도 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X127714
괴시리 전통마을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800m쯤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 가옥들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마을 괴시리마을이 있다. 원래 이름은 호지촌으로
100.daum.net

괴시리 전통마을은 영해 터미널에서 버스로 2~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입장료는 없으며 고택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한옥스테이를 운영한다.

늙음을 읊으면서 / 괴정 남준형
총명은 유한하나 이치는 무궁한데
부질없이 책 속에서 예순 살 늙은이 되었네
요즘 다시 천화(天花)가 책상 가득 떨어져
흑백(黑白)을 가져다가 청홍(靑紅)으로 바꾸었네


괴시리 전통마을(안내판)
200여 년 된 고가옥들이 30여 동이나 즐비한 괴시리 전통마을은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400여 년간 세거를 누리며 살고 있는 팔자 형국의 마을이다. 마을 전면에는 영해 평야가 광활하게 전개되어 있고, 옛날에 호지가 있었다고 하여 호지골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일명 호지마을로도 불리워지고 있다. 그리고 괴시라는 현마을 명칭은 고려 공민왕 8년 때 목은 이색 선생과 교분이 두터운 중국 사신 래왕 시가 마을을 방문하다 마을 형상이 괴시리 수구 풍면의 호지촌과 비슷하다 하여 괴시리라 칭하게 되었다. 도내에서도 보기 힘든 고가옥들로 남씨 괴시파종택 외 6점의 고택이 지정되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뭔 말인지... 호지가 뭐지...?
괴시리 수구 풍면의 호지촌과 비슷하여 호지골을 괴시리로 바꾸었다니...
반복해서 읽어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무식한 길손을 위해 좀더 쉬운 문장을 구사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괴시리 마을 앞 당산나무


괴시리 마을을 빠져나와 대진항을 향해 걷는다.
길가엔 큰금개국이 한창이다.

괴시2리 마을 입구의 성황당과 당산나무

대진항으로 들어선다.



대진항(대진2리) 입구 해변공원의 대게 조형물과 벤치


영해면 대진리 일원의 도해단은 1914년 11 월 7일 벽산 김도현 선생이 일제에 저항하며 바다에 몸을 던져 순국한 곳이다. 당시 영남 선비들이 그를 기리며 비를 세웠으나 일제가 뽑아버렸고, 현재의 비는 벽산 김도현 숭모회가 1971 년 9월 3일에 다
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의병을 모집하여 싸우기도 하고 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도 힘쓰다 국권이 상실되었다는 소식에 도해순국 하셨다.

도해단 주변의 바다 풍경




청춘 밭에 청춘을 뿌리다.

대진항을 지나 대진해소욕장에 도착한다. 해변에는 한가롭게 낚시하는 사람들과 모래 속에서 뭔가를 캐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이 보인다.

저 다리를 건너면 영해면을 지나 병곡면이다.

고래불대교의 입구에는 재미있는 게 조형물로 명판을 만들어 놓았다.

해안사구에는 낚시하는 사람도 있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6월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온몸으로 눈물을 흘리며 걷는다. 그나마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노독을 달랜다.







영리해수욕장의 춤추는 파도


고래불 해안은 약 4.6 km에 달하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사빈(모래사장)을 가진 해안으로, 초승달 모양의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고래불'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 학자 이색이 동해 바다에서 고래가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뻘'이라 말했다고 하여 붙여졌다. 고래불 해안의 모래는 해안 남쪽에 있는 송천에서 유입되었으며, 육지에서 운반된 암석조각들이 파도에 의해 오랜 세월 깎이면서 형성되었다. 이곳의 모래는 주로 석영, 장석이라는 광물로 이루어져 있어 밝은 빛을 딴다. 송천의 하구는 담수와 염수가 섞여 만들어 지는 염습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육지나 바다에서 보기 힘든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또한, 사빈의 뒤편에는 해안방재림이 있어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염분과 모래를 막아주고 해안지역의 농사를 돕는다.






여기에서 농어촌버스를 타고 영해터미널에 도착하니 축산항으로 가는 막차가 방금 떠났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축산항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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