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한반도 남쪽 구례 땅에 황현(黃玹1855~1910)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호는 매천(梅泉)이다. 그는 이십대에 큰 뜻을 품고 상경하여 과거 시험을 보았는데, 초시에서 첫째로 뽑히고도 전라도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둘째로 내려앉혀졌다. 이로 인해 매천은 온 나라에 가득 찬 편견과 부패를 몸소 겪게 되었고, 바로 분기탱천하여 다음 시험은 보지도 않은 채 고향으로 내려가버렸다. 그렇게 5년을 보냈다. 나중에 부친의 바람이 하도 간절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상경해 생원회시에 응시했다 장원 급제하여 진사가 된다. 서른넷의 나이에 성균관 생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여전한 관료계의 부정부패밖에 없었다. 이에 신물을 느낀 매천은 관직을 버리고 다시 귀항한다. 관리의 길을 포기하고 재야학자사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매천이 초야에 문혀 학문을 닦고 있을 당시, 대한제국은 급격히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렸다. 열강의 침략은 계속되었고, 당연히 국력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약해졌다. 그러다 보니 대한제국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조차 없었고, 한반도 온 천지에 '독립'이라는 단어가 설 자리는 반 뼘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서로 차지하려고 중국과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전쟁에서 이겼고, 우리는 일본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나라가 사라져버렸다. 매천은 "반드시 죽어야 할 의리는 없지만, 나라에서 선비를 500년이나 길러왔는데, 나라가 망한 처지에 이르러도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견딜 수 없다"는 말을 자식에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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