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 著, 북루덴스 刊
춘추전국시데, 노(魯)나라에 형벌을 받아 발 하나가 잘린 왕태라는 사람이 있었다. 덕망이 높아서 따르는 제자가 공자만큼이나 많을 정도였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상계(常季)가 공자에게 묻는다. "왕태는 외발이 장애인입니다. 그런데도 따르는 제자 수가 선생님만큼이나 많습니다. 그는 가르치는 것도 없고 토론도 하지 않는데, 빈 마음으로 찾아갔다가 무언가를 가득 얻고 돌아간다고들 합니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답한다. "그분은 성인이시다. 나도 찾아뵈려 했지만 꾸물대다가 아직 뵙지 못했다. 나도 그분을 스승으로 삼으려 하는데, 나만 못한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 노나라 사람뿐 아니라 온 천하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가서 그를 따르려 한다." 장애인인데도 모두 그를 따르려 한다면 도대체 그 사람은 어면 마음가짐을 가진 것인지를 상계가 묻자 공자는 '근본'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왕태는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본마음을 터득한 것이다. 이에 상계가 또 묻는다.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본마음을 터득했을 뿐인데 왜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는지요?" 공자가 답한다.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삼지 않고 잔잔하게 가라앉은 물을 거울삼는다. 올바름 본심은 못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장자(莊子)/덕충부(德充符)]"
도가에서는 이런 본마음, 즉 존재의 근본 상태를 덕(德)이라고 표현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타인들은 이런 사람을 추종하고 싶어 한다. 중후함이 경박함을 흡수하는 이치다.
기능적인 활동에 갇힌 사람은 편한 것을 추구하며 가벼운 잡담과 비교 욕망에 빠져서 자신의 본바탕을 놓치고 가볍게 흔들린다. 하이데거는 이런 상태를 "존재자에게서 존재가 빠져 달아나버렸다"라고 말한다. 가벼운 기능과 비교와 잡담에 빠져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성스러운 어떤 본바탕을 상실하였다고 비판한 것이다. '장애'의 상태를 자초하여 불편을 감수하면서 '덕'이라고 불리는 본바탕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키우는 일이다.
이 '덕'의 유지가 바로 인간을 기능적 활동에서 벗어나 본래적 인간으로 서게 만든다. 기차 안에서도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는 기능에 빠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통로로 걸어 나가는 불편을 감수한다. 교회에 갈 때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차를 몰고 가지 않는 불편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아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불편한 몸부림을 친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질량이 커지고 또 커져서 다른 가벼운 것들을 제압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매력이고, 존경을 유발하는 요소다. 장애인 왕태가 존경받고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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