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5.일
해파랑길 33코스(13.6km)
추암해변 ←7.1km→ 동해역 ←2.8km→ 한섬해변 ←3.7km→ 묵호역 입구
걸은거리 14.45km
걸은시간 10:42~14:48, 4시간 6분 소요
갈까 말까 망설이다 집을 나섰다. 지난 7월 21일 이후 5주 만의 해파랑길이다. 그동안 몇 번을 나섰다가 너무 더워 되돌아온 날도 있었다. 이제는 조금은 기온이 떨어졌기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날씨가 춥거나 선선할 때는 체력 단련의 목적으로 속보로 걷기도 하지만 너무 더운 날에는 그러는 것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작년여름에 절실히 깨달았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날 트레킹을 했다가 온열질환으로 한동안 무기력한 일상을 보낸 경험을 했던 것이다. 사유와 힐링을 위해 떠나는 걷기 여행이 폭염 때문에 고난의 시간으로 채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추암해변에서 출발해 동해역과 한섬해변을 거쳐 묵호역 입구에 이르는 해파랑길 33코스는 촛대바위와 형제바위, 해암정이 절경을 만드는 추암해변을 지나 동해의 대표 산업단지인 북평공단을 지나고, 시내에 잘 조성된 산책길을 걸어 정감이 넘치는 옛 역사의 추억이 서려있는 동해역으로 지나면, 신라 51대 진성여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린 감추사와 감추해변이 있다. 이어지는 해변길을 따라 어어진 절벽과 바위섬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추암해변과 붙어 있는 추암역 굴다리 아래로 길을 시작한다.
굴다리를 지나 강원 동해안의 대표적인 산업단지인 북평공단의 공단로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좌측으로 보이는 높은 구조물은 GS동해전력(600MW×2기)의 굴뚝이고 우측의 것은 동해화력(한국동서발전, 200MW×2기)의 굴뚝이다.
공단로에 진입하면 좌측에 동해자유무역지역관리원이 있다. 이곳은 자유무역지역의 관리·운영 및 수출산업 지원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의 소속기관으로 2008년 8월 7일에 발족하였다.
시원한 가로수 그늘을 따라 걷는다. 그런데 이곳 공단로를 따라서 심어진 가로수의 수종이 특이하다. 이곳에는 아까시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우리에게 잊혀진 고향의 정경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박화목의 동요 '과수원 길'에 등장하는 그 꽃이다. 아까시나무는 외국에서 수입한 나무이지만 우리와 너무 친해져 버린 나무다. 그렇다면 아까시나무 꽃은 언제부터 우리 땅에 꽃향기를 풍기기 시작하였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891년 사가키란 일본 사람이 처음 들여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이 고향인 아까시나무는 1910년경부터 심는 양이 많아져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뿌리를 내렸다. 아까시나무는 콩과 식물로서 토사가 흘러내릴 정도로 황폐해진 민둥산에도 뿌리를 잘 내렸다. 아울러 잘라 버려도 금세 싹이 나올 만큼 강한 생명력과 화력이 좋아 땔나무로서의 역할도 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아까시나무 심기가 더 많아져 한때 우리나라에 심은 전체 나무의 10퍼센트에 육박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고향의 정경을 복사꽃이나 살구꽃으로 나타내기보다 아까시나무의 꽃향기로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을 정도이다. 우윳빛으로 치렁치렁 매달린 꽃의 군무와 코끝을 스치는 그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유년의 꿈과 낭만을 가져다준 나무로 기억된다.
이 꽃은 ‘향긋한 꽃 냄새’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꽃 속에는 질 좋은 맑은 갈색의 꿀을 잔뜩 가지고 있다. 꿀을 따는 사람들은 아까시나무가 꽃 피는 시기를 쫓아 제주도에서부터 휴전선까지 벌통과 함께 올라간다. 우리나라 꿀 생산의 70퍼센트를 아까시나무 꽃에서 딸 정도이다. 나무의 쓰임새 또한 이름난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재질은 최고의 나무로 치는 느티나무에도 뒤지지 않는다. 노르스름한 색깔에다 단단하며 무늬 또한 일품이다. 예부터 원산지에서는 힘을 받는 마차바퀴로 쓰일 정도였고, 오늘날에는 고급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아까시나무는 '아카시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아까시나무 종류는 열대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진짜 아카시아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 원산의 아까시나무가 있지만 전혀 별개의 나무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불러온 탓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진짜 ‘아카시아’는 제주도 일부지역에서는 자란다고 하는데, 한반도에서는 자랄 수 없으므로 아까시나무라고 불러야 맞는 이름이다.
5월에 핀 꽃은 이미 모두 지고 나뭇잎만 무성하다. 떨어진 꽃잎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어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간다.
동해화력 발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환유동층 보일러를 이용하는 발전소이다. 이곳에서는 일반 석탄화력발전소에서는 연료로 사용할 수 없는 폐목재, 바이오연료 등을 연소시키고 있으며, 국내 무연탄을 주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무연탄광산은 한때 태백, 정선, 영월, 문경, 보령 등 곳곳에 있었으나, 이제는 난방 방식이 바뀌어 연탄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대부분 폐광되었고 태백에서만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이마저도 운영하는 이유가 아직도 일부 극빈한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연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제조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탄 제조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탄광을 운영하는 것은 체산성이 없기에 대부분의 석탄을 이곳 동해화력에서 발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국내 무연산은 열량이 아주 낮은 저질탄이기 때문에 발전용으로 사용하기에는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그래서 발전용 탄은 주로 호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들여오는 양질의 유연탄을 사용한다.
동해화력발전소 울타리를 따라가던 해파랑길은 발전소 울타리가 거의 끝날 무렵 향기롭지 않은 냄새(똥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곳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간다. 동해시 하수종말처리장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하수종말처리장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깨끗한 분위기다. 조경시설도 잘되어 있고 하수처리시설은 지하화 했는지 눈에 띄지는 않는다. 지나오면서 맡았던 냄새는 환기구를 통해 새어 나온 냄새인 것 같다.
처리장 후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우측으로 길이 이어진다.
5분 정도 걸어 산업구조물들이 들어선 해안가에 닿았는데 길이 난 곳을 가니 해파랑길이 아니다. 풀이 우거진 곳을 잠시 헤매다 좌측으로 난 계단을 발견하고 풀숲을 헤치고 지나간다. 여기서 헤매는 여행자들이 자주 있을 것 같은데, 길을 따라 제초작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높지 않은 해안을 따라 난 산길을 한 고개 넘으니 '을미대'라 음각된 비석이 나온다
이곳도 산업시설이 들어서지만 않았으면 절경이다.
바다를 넘는 저 구조물은 동해항에서 동해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시설이다.
소공원엔 위사진에서 보이는 작은 바위섬 '마고암'을 형상화한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다.
공원을 내려오면 시원한 그늘아래 호해정이라는 전각이 있어 잠시 쉬다 간다.
전천강 하구에 위치한 동해항에는 거대한 쌍용양회 시멘트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삼척의 삼표시멘트도 그렇고 물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항구에 공장을 설치했다.
강변을 따라 좌측으로는 공원시설이 꾸며져 있고 우측으로는 공단이 들어서 있다.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은 주거나 사무용 공간이 아니고 LS전선의 전기케이블 생산 타워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길과 걷기 길이 같이 조성되어 있다.
인도교를 건너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맑은 강물엔 물오리들이 조용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동해선 철로와 LS전선 울타리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지루하게 걷는다.
드디어 철로 옆을 따라 걷는 길이 끝나고 차도가 나왔다. 약 200미터 전방이 동해역이다.
동해역은 신축하지 않은 옛날 역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오래전부터 이용해 온 이들에 추억의 공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길은 이제는 전동화된 철로 옆으로 난 동해역길을 따라간다. 이 철로는 동해선이 아니라 영동선이다. 포항에서 동해까지 이어지는 동해선이 동해역 직전에 영동선과 만나는 것이다. 영동선은 영주에서 중앙선과 분리되어 봉화, 춘영, 도계를 지나 강릉 안인까지 이어진다.
동해역길을 따라가던 해파랑길은 해군 제1함대 부두를 지나면서 '해안로'를 따라간다.
도로변을 따라가던 해파랑길은 해안로와 해군 제1함대 낙산대체력단련장 골프장 사이에 조성되어 있는 산책길을 따라간다.
이 길은 도로변을 걷는 길이지만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많아 마치 숲 속을 걷는 느낌이다. 그런데 골프장 쪽으로 심어진 나무의 수형이 특이하다. 가지가 위나 옆으로 향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처져서 자라고 있다. 어렵게 검색해 보니 처진회화나무 또는 수양회화나무라고 나온다. 아무튼 특이한 나무다.
산책로가 끝나면 바로 한섬해변으로 가는 길 입구가 나온다. 이길로 이어진 다리, 감추교를 통해 영동선 철로를 건너 우측으로 가면 신라 51대 진성여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린 감추사와 감추해변이 나오고, 좌측으로 가면 한섬해변이다.
길게 데크길을 만들어 놓아 걷기에 편하다. 이 길은 행복과 한섬을 합쳐 '행복한섬길'로 명명해 놓았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감추교에서부터 한섬해변을 지나 가세해변까지 2.4km에 이르는 길이다.
한섬해변의 상징물 '리드미컬 게이트'다. 이 조형물은 낮에는 조(造)형미가 뛰어나며, 밤이면 조(照)형미가 뛰어나다. 낮에도 리드미컬한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밤에는 황홀함을 선사한다.
테트라포트도 예쁜 그림과 글씨로 꾸며 놓았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행복한섬'이 나올까?
하대암은 감추사 해변에 자리하고 있다. 천곡마을에서 남쪽으로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하대암이라고 하였고, 그 생김새가 촛대처럼 생겼다고 하여 촛대바위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최근 이곳을 찾는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제임스 본드 주연의 007 시리즈 촬영지인 세계 3대 절경 태국 푸껫 팡아만의 바위를 닮았다 하여 제임스본드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늑하고 호젓한 한섬해변이다. 지금 삼척해변과 추암해변 사이 언덕 위에 들어선 솔비치 리조트는 원래 이곳 한섬해변에 건설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삼척해변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대형리조트가 들어섰으면 관광산업 발달과 함께 지역경제 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결론적으로는 삼척시에서 판단을 잘한 것으로 보인다.
한섬해변을 지나면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언덕길이 나온다.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 속을 걷는 길이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향긋한 솔내가 기분을 좋게 한다.
언덕길에 조금 튀어나온 지형을 이용하여 벳머리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잠시 수평선을 감상하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아까 지나온 북평공단과 동해화력 높은 굴뚝이 가물가물 눈에 들어온다.
행복하게 걷는 행복한섬길을 상쾌한 기분으로 걷는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아기자기한 조각품을 만들어 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천곡해변이 지나고 고불개해변에 닿았다. 이 해변은 길이가 50여 미터에 지나지 않는 작은 해변이다. 그렇지만 모래가 곱고 물이 얕아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기기 좋은 곳이다. 해변가에 재래식 우물이 있고 우물가에는 어린왕자가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그 곁을 여우가 지키고 있었다.
이어지는 해안언덕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묵호항과 동해의 북쪽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가세해변은 자동차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는 곳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피서객이나 탐방객은 보이지 않았다.
한섬길은 가세해변에서 끝이 나고 영동선 철로 옆으로 난 좁은 오르막 내리막 길을 지나니 하평해변이 나왔다.
하평해변을 지나고 묵호역으로 향하는 길에 '부곡돌담마을 해안숲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나왔다. 한섬해변의 아름드리 소나무숲을 지나 한동안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갇다가 나온 공원이라 반갑기 그지없다.
소공원을 지나자마자 좌측의 굴다리를 지나고 다시 우측으로 꺾어 철로를 따라 이어지는 마을길을 걷는다.
오른쪽의 철로는 영동선은 아니고 묵호항에 화물을 실어 나르는 묵호항선이다.
어느 사이엔가 옛날엔 사람들이 북적였을 것 같은 골목길로 접어든다. 표지판엔 향로봉길이라 적혀있다. 골목길 이름이 향로봉길이라 이상하게 여겨져 근처에 향로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는지 지도에서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져 그 유래를 찾아봐도 나오질 않는다. 왜 향로봉길 일까?
향로봉길을 나오면 4차선 도로인 발한로가 나온다. 오늘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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