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1.일
해파랑길 32코스(21.9km)
맹방해변 입구 ←2.5km→ 상맹방해변 ←7.8km→ 죽서루 ←8.4km→ 삼척해변 ←3.2km→ 추암해변
걸은거리 25.9km
걸은시간 10:22~17:26, 7시간 3분 소요
오늘은 조금 긴 코스 해파랑길 32코스를 걷는다. 근덕농협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맹방해변으로 향한다.
해파랑길 32코스는 삼척 동해 구간 중 삼척시 근덕면에서 동해시 추암동을 잇는 길이다. 덕산 해변에서 출발해 하맹방, 상맹방해변과 죽서루, 삼척항을 거쳐 추암해변에 이르는 도보길이다. 바닷길과 오십천 강변길, 하천길과 산촌마을 등 다채로운 길을 지난다. 넓은 폭과 1.5km 이상의 길이를 자랑하는 삼척 제일의 해수욕장 삼척해변과 다양한 조형물과 야간조명이 아름다워 포토존으로 유명한 이사부 사자공원, 삼척 시내와 가까운 관동팔경의 제1경 죽서루, 삼척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증산 해변, 촛대바위 일출과 함께하는 추암해변이 주요 관광포인트다.
마읍천 하구에 있는 덕봉산이다. 맹방해변에서 덕봉산으로 가는 길도 풍경이 일품이다. 마읍천이 덕봉산을 휘감아 돌아나가는데 해변에서 덕봉산으로 가는 길은 좁은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산 주변으로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덕봉산(53.6m)
마읍천 하구에 있는 산이다. 해동여지도와 대동여지도 기록에 의하면 덕봉산은 본래 섬이었다고 한다. 산 모양이 물더덩(물독)과 흡사하여 ‘더멍산’이라 불렸다. 이후 육지와 연결되어 육계도로 불리게 되었으며 더멍산을 한자화해서 덕봉산으로 섰다고 전해진다. 육지와 연결된 이유는 조선 후기 인구가 증가하여 삼림이 밭으로 빠르게 개간된 시기와 관련이 있다. 산꼭대기에 화선대와 우물이 있어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산 아래는 마읍천이 흐르고 좌측에는 맹방해수욕장, 우측에는 덕산해수욕장이 위치하고 있다. 덕봉산은 군 초소가 있어 통제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다가 군 경계 철책 철거와 함께 해안생태탐방로가 개방되면서 2021년, 53년 만에 숨겨진 절경이 공개되었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로 올라가는 내륙코스(317m)와 해상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는 해안코스(626m)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상쾌한 해풍과 함께 탁 트인 바다 풍경과 맹방해변, 덕산해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맹방해변의 '맹방'이라는 이름은 매향 의식을 치르던 곳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향을 묻는 곳이라는 의미의 '매향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향나무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묻어둔 후 3백 년 뒤에 꺼내어 향을 피우면 냄새가 좋다고 향나무 묻기를 했다고 한다. 매향방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맹방으로 변했다.
맹방해변의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거기다 바람도 잠잠하니 걷기 여행엔 최악의 날씨다. 그래도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탁 트인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의 여정엔 어떤 풍광이 펼쳐질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백사장엔 피서객을 기다리는 피크닉테이블이 줄지어 앉아있다.
끝이 안 보이는 해수욕장을 걸어가다가 너무 더워서 작은 그늘이라도 만나면 자주 쉬었다. 맹방해수욕장의 해파랑길은 해송사이로 난 것이 아니라 백사장 옆 차도와 같이 가도록 되어 있어서 햇볕을 그대로 받으면서 걷는다.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휴일이라 그런지 푸드트럭이 여러 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소규모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이런 곳이 없었더라면 정말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이런 길의 연속이다.
상맹방해변 바다엔 해안 침식 방지를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일대에 삼척그림파워(한국남부발전)와 삼척블루파워(포스코) 두 곳의 대용량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석탄하역 부두를 건설하는 바람에 물길이 바뀌어 해안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전력 사용량은 늘어만 가는데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을 수가 없다.
3km가량 이어지는 해변도로가 끝나고 좌측 맹방 유채마을길로 들어서면 다시 삼척로와 만난다. 삼척로 주변 들판엔 지금은 수수와 옥수수가 심어져 있지만 봄이면 이 일대는 온통 노란 유채꽃들로 만발할 것이다.
예쁜 모형의 버스정류장과 아름드리 벚나무의 삼척로를 따라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늘 속을 걷는 것과 땡볕을 걷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거기다 살랑살랑 산들바람도 불어온다. 오늘은 간식과 물도 충분히 준비했다. 든든하다.
옛 7번 국도 삼척로는 신 7번 국도 아래를 지나 한재를 향해 나아간다. 지금부터 한참 동안은 오르막길을 가야 한다.
좌측 터널을 지나거나, 우측 산길로 고개를 넘으면 삼척블루파워 발전소가 나온다. 삼척블루파워는 2100MW급의 석탄화력발전소로서 농협은행(54.5%), 포스코에너지(29%), 두산중공업(9%), 포스코건설(5%)이 출자해서 설립한 민간발전회사이다.
오르막을 2/3 정도 올라서면 한재소공원이 나온다. 잠시 쉬면서 땀도 식히고 가지고 온 간식과 음료를 먹으면서 체력보충도 한다.
한재소공원에서 바라본 삼척블루파워 석탄하역장 공사현장
계속해서 오르막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한재공원이다. 이곳엔 전망 좋은 정자도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나들이객이나, 라이더들, 또는 나처럼 걷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쉬어가는 곳이다.
한재공원에서 바라본 펜션과 삼척항 풍광
이 내리막을 내려가면 7번 국도와 만나는 오분교차로를 지나고 오분리 마을로 들어선다.
삼척시 초입에 있는 오분동마을 입구에는 데크를 깔아 통행량이 많은 7번 국도와 분리해 놓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오분동 마을 초입 위로 건설 중인 동해선 철로가 지나간다. 새로 건설 중인 철도는 포항에서 영덕을 거쳐 울진, 삼척, 동해, 강릉으로 이어진다.
오분동마을을 지나면 하수처리장 방향으로 작은 철교가 나온다. 철교를 건너면 오십천 천변을 걷는 길이다.
오십천을 가로질러 거대한 구조물이 지나간다. 이 구조물은 삼표시멘트 공장의 시멘트 원료를 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다. 분진이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름이 3m도 넘는 거대한 파이프 속에 설치되어 있다.
천변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오랍드리산소길은 삼척시에 있는 도심 둘레 길이다. 오랍드리는 강원도 방언으로 ‘집 주변’을 뜻한다. 삼척 시내를 중심으로 그 둘레를 걷는 길이어서 ‘오랍드리산소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랍드리산소길은 봉수대길, 봉황산길, 강변길, 삿갓봉길, 해변길 등 5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강변길은 삼척장미공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겨울을 제외한 날에 언제나 장미 1000만여 송이가 피고 지는 공원으로, 황홀한 장미향이 늘 공원을 가득 채운다. 공원 옆에 있는 삼척교를 지나면 새벽장이 서는 수산물 번개시장이 나온다. 그 옆으로 계속해서 강변길이 이어지며, 몸엔 벚꽃 터널이 장관을 이루며, 가을에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징어를 널어 말리는 광경도 볼 수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강변길은 약 4.0㎞이다.
이 길은 지금은 짙은 녹음이 펼쳐져 있지만 봄이면 연분홍의 벚꽃으로 환상적인 장관을 이룰 것이다. 양쪽 강변의 벚꽃 터널은 멀리 진해의 그것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내년 봄에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에도 이면에는 어두운 측면이 숨어있다. 강원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회석 광산이 여러 곳에 있다. 이곳 삼척에도 삼표시멘트를 비롯하여 쌍용양회, 한라시멘트 등의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시멘트를 생산하는 공정은 고열을 필요로 하는데 예전에는 주로 석탄을 연소하여 필요한 열원을 얻었으나 요즘은 원가절감과 자원 재활용 측면에서 폐타이어, 폐플라스틱을 혼합하여 연소시키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시멘트 공장은 화력 발전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대기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측면에서 보면 더 유해한 시설이다. 그러나 노동 집약적인 시설은 아니다. 발전소나 시멘트 공장이나 자동화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고용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세수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인구유입 효과는 크지 않다.
오십천은 삼척시와 태백시 경계인 백병산에서 흘러내려 동해로 들어간다. 50km 길이의 냇물이 하도 구불거려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길을 오십 번은 건너야 한다고 오십천이 되었다고 한다.
천변 시멘트 산책길이 끝나고 삼척문화예술회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데크길로 조성해 놓았다. 녹음이 짙은 숲에서 풍기는 향긋한 풀내음이 상쾌하다.
드디어 삼척문화예술회관에 도착했다. 회관 앞 광장은 황영조 국제마라톤 코스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엑스포광장이다. 엑스포광장은 2002년 삼척에서 개최된 세계동굴엑스포를 기념하는 광장이다. 세계 21개국 53개 도시가 참여했다. 삼척에는 동양 최대 규모인 환선굴을 비롯하여 관음굴, 대금굴 등 80개가 넘는 동굴이 있다. 광장의 우측으로는 어린이과학놀이체험관, 시립박물관, 청소년수련관이 있고, 광장 건너편에는 엑스포공원이 있는데 지금은 가람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광장을 우측으로 돌아 나와 죽서교를 건너면 해파랑길은 오십천 동쪽 천변을 걷는다. 동쪽 천변엔 장미공원이 있고, 삼척교를 지나고 이사부 독도기념관을 지나서 삼척항으로 이어진다.
오십천을 건너는데 다리 좌측 절벽 위로 죽서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2023년 12월 국보로 승격되었다. 이 누각에는 이이(李珥)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시가 붙여져 있는데,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는 대액(大額)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건 것이다. 현재의 크기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좌우 각 1칸에 놓인 공포(栱包)의 모습이 다르고, 또 내부 천장에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서루라는 명칭은 동쪽에 대나무 숲이 있었고 숲 안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숲의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고 죽서루라고 불렀다고 한다. 죽서루를 제외한 관동팔경의 나머지 명소들은 모두 동해안을 따라 있지만 죽서루만이 내륙의 오십천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강의 동쪽에서 바라본 서쪽 기슭
장미공원엔 200여 종의 장미들이 가꾸어져 있다. 이 일대엔 4월이면 벚꽃이 5, 6월엔 장미가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7월 말이라 많이 시들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은 장미들이 피어있다.
마침 오늘은 2008년부터 이어온 신라시대 우산국(울릉도, 독도)을 우리 영토로 복속시킨 이사부 장군의 해양개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삼척동해왕이사부축제가 (7월 20일부터 21일까지) 열리고 있었다. 삼척 오십천은 이사부장군이 우산국 정벌에 앞서 함대를 제작했던 장소로 추정하는 장소이며 오십천과 이사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천변 산책길에는 벚나무 터널을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중간중간에 마련되어 있다. 땀도 식힐 겸 간식을 먹으며 한참 동안 쉬어 간다.
장미공원 둔치 끝에 있는 삼척교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7번 국도인 동해대로를 따라 삼척항으로 길을 이어간다. 이 길의 오른쪽에는 삼표시멘트 공장이 있는데 공장의 담벼락을 고궁의 그것처럼 꾸며놓고 담쟁이덩굴을 심어놓았다. 삭막한 시멘트공장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자연친화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정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시로 가는 길이고 우측이 삼척항 방향이다. '자연산 활어의 명소 삼척항'이란 조형물이 보인다.
삼척항 입구에 있는 이사부 독도기념관은 공사 중인지 휴일이어서 그런지 문을 열지 않았다.
삼척항 전경. 정면에 보이는 다리처럼 생긴 건물은 '삼척 지진해일 안전타워'이다. 우리나라는 관측을 시작한 1900년 이래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지진해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1983년과 1993년에는 일본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삼척, 속초 등지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해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컸다고 한다. 이에, 정부와 강원특별자치도는 지진해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삼척항 지진해일 안전타워를 설치(2022년 준공)해 운영하고 있다. 삼척항 지진해일 안전타워는 최고 3.7m의 지진해일을 견디도록 설계된 방어구조물로써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이다. 평소에는 선박의 입·출항이 가능하도록 수문을 개방하고, 지진해일 발생 시에는 수문을 폐쇄해 피해를 방지한다고 한다. 또한 방문객들이 지진해일에 대한 이해와 재해예방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교육홍보관도 운영하고 있다. 평소에는 다리처럼 보이는 건물 아래로 선박이 드나들고 해일발생 시에는 수문이 내려와 닫힌다.
맞은편 언덕배기에 오밀조밀 들어선 집들이 이색적이다. 이름하여 정라동 '나릿골감성마을'이다. 경남 통영의 동피랑이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비슷한 분위기다. 생겨난 배경은 다르겠지만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나름 지역경제의 한 축을 이루었던 마을들이다. 어느 곳이든 방문을 열고 나가면 마당인지 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이 이어진다. 나릿골이라는 이름은 계곡에 나루가 있던 곳이라 나릿골이라 했다는데 이름이 이쁘다. 지금이야 삼척 시내가 번화가이고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예전에는 이곳 정라동이 삼척항의 중심지였다. 풍성한 어족 자원으로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정어리 공장에서는 정어리기름으로 비누와 양초가 생산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어업이 더욱 번성하여 항구에는 노가리와 오징어가 산더미로 쌓이고 나릿골 집집마다 오징어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바닥이 파란색으로 칠해진 골목길로 올라가면 나릿골마을로 이어진다.
나릿골 골목은 조금은 가파른 듯 하지만 길 양쪽으로 가드레일을 설치해 놓아 노인들도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게 해 두었다. 골목의 분위기는 마치 물이 흐르는 수로 같아도 보이고 고깃배의 갑판 같이도 보인다.
이곳은 한 공무원의 제안으로 노후주택을 정비하고, 담장을 색칠하고, 곳곳에 쉼터와 전망대, 포토존을 만들어 삼척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공무원 한 사람이 동네도 살리고, 도시도 살렸다.
나릿골마을 뒤편 산정으로 올라오니 '바람의 화원'이란 이름의 공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시원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팔각정을 세웠고 각종 꽃나무와 조경수를 아기자기하게 심어놓았다.
팔각정에 올라앉아 땀을 식힌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삼척항의 전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해파랑길이 진행되는 방향으로는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있고 구릉을 타고 넘어가는 굽은 길은 아득하게 산속으로 이어진다.
팔각정 아래 길섶으로 여름수국이 한창이고 물고기모양의 이정표는 여행자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아득한 길을 따라 다시 산속으로 길을 이어간다.
해파랑길 32코스에서는 처음으로 시원한 오솔길을 만났다. 향긋한 솔내음을 맞으며 걸어가는 길은 무한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이런 길은 아무리 길어도 지루하지 않다. 봉수대길이라고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오솔길을 걸어 산봉우리에 오르면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 '국난극복 유적지'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 봉수대는 조선 성종 때 설치하여 인조 때까지 운용했다고 한다. 이른 시기에 복원했으면 좋겠다. 광진항에 접해 있는 이 작은 산은 광진산이다.
산에서 내려오면 광진길을 건너는 작은 출렁다리가 나오는데 해파랑길은 이 다리는 건너지 않고 다리 오른쪽 샛길로 내려가 광진길을 통해 광진항으로 내려간다.
작지만 아름다운 항구, 광진항이다. 여기서부터는 삼척 새천년도로를 따라서 삼척해변까지 간다. 새천년도로는 2,000년도에 삼척항에서 삼척 해변에 이르는 4.6km의 해안 도로를 개통하여 2000년도 새천년을 맞이하여 개설한 도로라 하여 새천년도로로 명명했다. 이 길은 구간별로 이사부길, 샛바람길, 오랍드리산소길 해변길로 구분해 부른다.
광진항에서 후진항까지는 해변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걷는 길을 차도와 구분해 편안한 데크길로 조성해 놓았다.
비치조각공원엔 각종 조각품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야외 공연장도 있는데, 지역 음악가들의 자선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기암괴석들이 이어지는 데크길을 가벼운 걸음으로 걷는다. 오후가 되니 해도 서쪽으로 기울어 데크길에 그늘을 드리운다. 거기다가 바람도 시원하게 분다.
후진항에는 방파제와 갯바위에서 많은 수의 낚시 꾼들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후진항은 '뒷나루'라는 뜻이라고 한다. 삼척 뒤쪽에 있는 나루라는 의미이다.
후진항 옆에 아담한 작은 모래 해변이 있는데 이곳을 작은 후진해변이라 하고
지금의 삼척해수욕장을 큰 후진해변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후진'이라는 명칭이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삼척해수욕장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삼척해수욕장은 곳곳에 많은 편의시설을 조성해 놓았다. 해변 데크와 팔각정 쉼터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좌측 쉼터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은 그 유명한 삼척 솔비치 리조트다.
삼척 해수욕장은 널찍한 해변을 따라 주차 공간도 많이 조성해 놓았고 곳곳에 포토존과 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설치해 놓았다.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삼척해수욕장을 떠난 길은 해변을 따라가지 못하고 수로부인길을 따라 솔비치 삼척 정문 앞으로 우회하여 증산해변으로 넘어간다.
내리막길 우측에 보이는 정자는 '해가사의 터'인 임해정이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의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표지석은 증산마을 표지석이다. 증산마을 입구에 세워진 증산 마을비에는 '시루뫼'라는 글씨도 있다. 마을 주변 산의 모양이 시루를 닮았다고 해서 시루 증(甑) 자를 써서 증산 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에 있는 삼척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해가사 터'인 임해정은 <삼국유사> 수로부인전에서 전하는 <해가>라는 설화를 토대로 복원된 곳이다. 문헌상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삼척해수욕장의 북쪽 와우산 끝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원래의 위치는 현재 군사보호시설지구로 개발이 불가하여 주변경관이 수려한 인접지역인 증산동 해변에 조성되었다. 임해정 좌우로의 해변은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삼척시에서 바다를 끼고 있는 유일한 정자이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도중, 임해정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의 용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남편인 순정공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막대로 언덕을 치며 해가(海歌)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니 용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타났다 한다. 설화를 토대로 복원한 임해정과 해가사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고 주변으로 수로부인공원과 주차장을 조성했다. 2006년 4월, 사랑의 여의주 드래곤볼을 설치했으며 사랑과 소원을 비는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또, 동해의 일출 명소인 추암해수욕장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사진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증산해변은 그리 큰 해변은 아니지만 고운 모래가 아름다운 해변이다. 좌측 산 위로 이사부 사자공원이 보인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 옆으로 지나가고 나중에 시간을 내어 둘러볼 생각이다.
추암해변부터는 동해시에 속한다. 추암해변도 증산 해변처럼 아담한 크기의 해변이지만 애국가 배경화면 속 추암 촛대바위가 있어 관광객의 발길은 더 잦은 곳이다. 두 해변은 이사부 사자공원의 작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추암해변은 '해금강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리며, 해돋
이 명소로 유명하기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다. 너른 수평선이 아름다운 해변 옆에는 이곳을 대표하는 촛대바위와 출렁다리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앞에 보이는 작은 산 정상에는 능파대(凌波臺)라는 정자가 있고, 그 너머에 촛대바위가 있다.
다리를 건너니 뒤뚱거리는 오리가족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
촛대바위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능파대라 적혀있는 정자가 있다.
이어서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언덕이 나타나고, 뒤이어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해안절벽 사이로 길쭉하게 솟아있는 바위가 바로 촛대바위다.
이 바위 끝에 해가 걸린 모습이 촛불처럼 보여 촛대
바위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절경이다. 조선 세조 시대에 한명회가 강원도 제철사로 있으면서 바위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해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능파대'라 불렀다고 한다.
추암 촛대바위는 석회암이 지하수의 용식 작용을
받아 형성된 암석 기둥, '라피에(Lapie)'이며, 국내
에서 유일하게 해안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계
적으로 유명한 라피에는 중국 쿤밍 외곽 지역에 있
는 '석림(石林)'인데, 거대한 숲처럼 조성된 석림에
비하면 촛대바위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국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기에 '한국의 석림'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촛대바위 주변에는 거인바위.
코끼리바위, 양머리바위 등의 군락이 지어져 있다.
해암정은 고려 공민양 10년(1361)에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1310~?)가 벼슬을 사양하고 내려와 세운 정자이다. 해암정은 정면 3간, 측면 2간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고려 시대에 지어진 해암정이 불에 타서 사라진 이후 조선 중종 25년(1530)에 후손 심언광(1487~1540)이 다시 지었다. 그리고 정조 18년(1794)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조선 중기 문신인 한명회가 쓴 '능파대기'를 비롯하여 옛 명사들이 남긴 글귀가 많이 남아 있다. 해암정은 기암괴석과 촛대 바위로도 유명하다. 심동로는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풍월을 즐기며 여생을 보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해암정에서 보는 일출은 장관으로 유명하다.
촛대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출렁다리가 있다. 국
내에서 유일하게 바다 위에 지어진 출렁다리다. 기암 위에 가볍게 툭, 놓인 것 같은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불안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그 생각은 기우였다. 다리는 튼튼하기 그지없었고, 인원 제한이 있어서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 경우 입장이 안될 수 도있다고 한다.
오늘의 긴 여정은 추암 조각공원을 지나 추암역에서 마무리를 한다.
조금 늦은 시간에 걷기를 시작하였고, 더워서 힘들거나 풍광이 좋은 곳에서 자주 휴식을 취했더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제 차를 가지러 근덕농협으로 가야 한다. 버스 편을 검색해 보니 추암역 건너편에서 삼척시내버스를 타고 삼척상공회의소에서 좌석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버스가 있을지 모르겠다. 시내버스 앱에서는 '긴 기다림'으로 뜨는데 이런 경우는 진짜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버스가 끊겼을 때 나오는 메시지다. 50여 분을 기다려 택시를 탈까 말까 고민하는데 다행히 버스가 왔고, 삼척상공회의소에서 내려서도 20여 분 기다리니 좌석버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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