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해파랑길

해파랑길 34코스

나는... 누구인가? 2024. 8. 30. 21:21

2024.08.30.금

해파랑길 34코스(14.1km)
묵호역 입구 ←1.6km→ 묵호등대공원 ←3.6km→ 대진항 ←2.6km→ 망상해변 ←6.4km→ 한국여성수련원

걸은거리 15.98km
걸은시간 15:05~19:23, 4시간 18분 소요

해파랑길 34코스는 동해시 발한동에서 강릉시 옥계면을 잇는 길이다. 묵호역에서 출발해 묵호등대공원과 망상해변을 지나 옥계해변의 송림까지 이어진다. 바닷길과 어촌마을, 망운산 골짜기길이 어우러진 길로써 동해시에서 강릉을 넘어가는 구간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동해안 최고의 해수욕장 망상해변, 묵호동 산 중턱에 위치한 묵호등대와 출렁다리, 등대오름길. 그리고 도시적인 카페와 싱싱한 활어 횟집이 조화를 이루는 어달해변이 있다.

오늘은 예정에 없던 업무로 인해 퇴근시간이 지연되어 조금 늦게 출발했다. 향로봉길 입구에서 시작한 해파랑길은 발한로를 따라 묵호항으로 향한다.

그렇게 덥던 한여름의 열기는 처서를 지나면서 조그씩 누그러지더니 이제는 양산을 쓰지 않고도 걸을 만하다.

묵호항으로 가는 길가의 건물들은 번잡했을 옛날의 명성을 뒤로하고 지금은 간판만 달려 있고 장사를 하지는 가게들이 수두룩하다. 이 거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을까.

묵호별빛마을을 오르는 계단 주변에서 놀고 있는 어린왕자와 여우를 만났다. 삼척과 동해가 어린왕자와 무슨 내막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묵호동 이야기
묵호(墨湖)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조선 순조 연간에 이곳에 굶주림이 극심해 강릉부사 이응유가 파견되었는데 "이곳은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으니 묵호(墨湖)라 하는 게 좋겠구나."라고 해서 생겼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묵(翰墨)이란 학문과 선비를 지칭하는 뜻이기에 이 지방 선비들이 바로 서쪽 마을인 발한(發翰)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묵호(墨湖)라 칭한 데서 생겼다는 것이다. 묵호는 '유행의 첨단도시', '술과 바람의 도시' 동해안 제1의 무역항으로서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화주와 선원, 지역 주민들이 한 데 엉켜 요정과 백화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행의 첨단 도시가 되었고, 또한 예부터 명태, 오징어 등의 어획량이 풍부한 전통적인 어촌 도시였다. 하지만 1983년경 동해항이 성장함에 따라 묵호 쇠퇴기가 시작되었고 더불어 명태의 어획량까지 감소했다. 명태가 더 이상 잡히지 않아 요즘은 부산에서 냉동 원양어를 사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게도 금어기고 명절도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묵호항 주변의 상가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항구는 위판장도 깨끗하게 비워져 있고 어선들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정박해 있다. 철이 비수기라 그런지 아니면 경기가 나빠서 인지...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잔잔한 물결과 함께 항구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묵호항을 벗어나자마자 해파랑길 빨간 화살표는 좌측 골목길을 가리킨다. 이 길은 논골담길로 이어지는 등대오름길의 입구 모습이다. 이곳은 동해시 묵호 중에서 '바깥 묵호'가 아닌 '안 묵호'라고 하는 곳으로 다른 지역에는 없고 오직 묵호에만 있는 안묵호이다.

논골 담길
논골마을은 1937년에 개항하여 성업을 이루었던 묵호항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마을로서 묵호항의 역사와 함께 치열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묵호항이 무연탄과 시멘트 운송으로 성황을 이룰 당시 논골마을 사람들의 삶은 남루하였지만 활기로 넘친 곳이었다. 이렇게 성황을 이루던 묵호에는 여러 가지 해산물을 지게로 져나르며 흘린 물로 인해 마을길은 온통 질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검은 무연탄가루까지 날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을 많이 뿌렸는데 항구 뒤편 묵호동의 비탈진 언덕에 지어진 판잣집 사이의 마을골목은 마치 논처럼 질퍽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렇게 마을길이 논처럼 질퍽한 모습을 하여 마을 이름을 논골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이곳에서는 장화 없인 살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논골에서는 '신랑 없이 살 수는 있지만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전해지고 있다. 묵호항을 중심으로 어부와 그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는데, 때문에 산비탈 전체가 블록으로 벽을 올려 만든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현재도 '덕장길'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듯 산비탈 비좁은 공간에 묵호등대를 맨 꼭대기에 두고 사방으로 이런 골목길이 수 십 군데나 있는데 어느 길로 올라가든지 묵호등대에 닿는다. 논골담길의 이야기는 묵호등대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르막길 골목길 바람개비는 돌담과 함께 동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바람의 언덕
바람 앞에 내어준 삶.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린다. 남은 이들의 삶을 살려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삶이며 죽음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간절한 바람이다.

아버지 혼불의 바다
바다 나서면 아버지 늘 거기 살아 숨 쉬고 있다. 하얀 선체 푸른 깃발 달고, 향해하는 곳 어디든 끄떡없었다. 언젠가 일러주시던 그 바다. 어부가 섬기는 혼불이 있다는데, 세월 가며 바라봤어도 그 빛 볼 수 없어, 파도 못 맡겨도 배만 덩그러니 서있는 곳에 종일 마주 서서 찾아 헤매도 아버지 넋 찾지 못했다.

등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지만 군데군데 오밀조밀 볼거리와 예쁘게 그려진 시화, 벽화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여 지루하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등대 광장엔 불꽃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고 울타리를 따라 묵호의 애환과 역사를 담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1963년 묵호에서 가장 높은 이곳 언덕에 세워진 묵호 등대다.

1968년에 제작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장소

등대에 설치되어 있는 전망대를 오르니 묵호항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넓은 바다는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든다. 젊은 연인끼리 언덕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차 한잔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걸어보고 싶었던 도째비(도깨비의 방언)골 스카이워크는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설치된 조형미가 일품인 시설이다. 오늘은 갈 길이 바빠 스쳐지나지만 다음에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이다.

장난끼 가득한 눈망울의 도깨비가 땅속애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도째비골 비탈면 바위얼굴
옛날 옛적, 도째비골에는 동해바다의 정령과 관련이 있는 동해바다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선행에 크게 감화받은 동해 바다의 정령은
이 일대의 마을을 큰 파도와 폭풍으로부터 지켜주었다. 동해바다 정령은 수호신으로서 바다의 깊은 곳에서부터 마을을 지켜보면서 바다에서 어민들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주고, 언제든지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바다를 진동시켜 마을 사람들에게 미리 대피할 수 있도록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정령은 수호신으로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파도와 폭풍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냈다. 그 존재는 수천 년의 세월을 기억하는 이 바다와 파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야기는 다음 세대에게 이어져 전해졌고 지금도 도째비골 입구 절벽에는 "동해바다 정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논골담길과 등대오름길을 지나 도째비골로 내려오면 바다위를 걷는 해랑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옥계항 까지는 계속해서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다.

도깨비골애서 내려오면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은 이곳 까막바위 입니다'란 안내석이 세워져 있다. 추암 촛대바위 앞는 '남한산성의 정동방은 이곳 추암해수욕장 입니다'란 안내석이 있었는데, 이곳은 남대문의 정동방이란다. 그런데 일제의 용어인 남대문을 숭례문으로 바꿔야 할 듯하다.

까막바위

까막 바위 옆에는 문어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는 전해지는 설화가 있다. 조선 중엽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호장(지역유지)가 있었는데, 노략질하던 이들을 막다가 숨을 거두었고, 그 호장이 큰 문어로 환생하여 왜구를 막았으며,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마을에 평온이 찾아왔다고 한다.

까막바위 맞은편에는 거대한 회타운이 들어서 있다.

까막바위를 지나자 마자 뒤를 돌아 보니 멀리 북평공단과 동해항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넘실거리는 파도 너머로 어달항 포구가 보인다. 등대 주변 테트라포트에 무지개색 칠을 해놓아 아름다운 항구의 전경이 더욱 아름답다. 어달항까지 가는 길에는 카페와 팬션이 많았다. 남해안과는 다르게 이곳 동해안은 바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이런곳에서 유숙을 하거나 이른 아침 카페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차 한잔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해의 푸른 꿈이 출렁이는 곳, 여기가 어달항 이라네!

한적한 어달항이다. '어달'이라는 지명이 특이하여 찾아봤더니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에서는 산이나 높다는 의미로 달을 사용했다. 지금은 동해시 어달동이지만 예전에는 명주군 묵호읍 어달리라 불리던 곳이라 아직도 어달리 어다리가 익숙하신 분들이 많다고 한다. 어렐, 어렐골, 어을달, 어델, 얼개 등으로 불리웠는데 달이라는 단어는 고구려 시대의 지명으로 산과 관계된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진다. 실제 어달항 뒤쪽에는 어달산이 있다

어달해수욕장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그래도 폭넓은 자전기길이 있어 걷는데 위험하지는 않다. 이 도로는 발한 삼거리에서 대진항의 대진삼거리까지 '일출로'라 명명해 놓았다. 거친파도와 검푸른 바다, 떠오르는 태양으로 인해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하다.

이제 대진항 입구에 도착했다.

대진항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등대가 특이하다. 빨간 등대는 배 모양, 하얀 등대는 봉수대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길을 따라 세워진 덕장엔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말리는 생선은 없고 빈 줄만 길게 어이지고 이따금씩 지줏대위에 갈매기가 쉬었다 간다.

대진항도 대게로 유면항 항구인데 지금은 금어기라 모든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듯 하다.

늦은 오후의 망상해변은 한적하기만 하다. 몇몇의 서퍼들만이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 반대편 송림 캠핑장에는 많은 캠퍼들이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군데군데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느라 매케한 연기가 날리고 있었다. 고기굽는 냄새가 내가 걷고 있는 길 건너까지 날아오니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해파랑길 쉼터에 앉아 가지고 온 간식을 먹으며 늦은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일어섰다.

조형미를 살린 MANGSANG 과 빨간 시계탐이 인상적이다. 빨간 시계탑은 동해의 붉은 태양을 상징하는 듯 하다.

광활한 모래밭과 건너편 캠핑장엔 어린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해변에 마련된 생태 탐방로를 걷는다.

밀려오는 파도 낮게 깔린 구름. 하루 쯤 야영을 하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망상해수용장이 끝나면 바로 기곡해수욕장으로 이어서 갈 수도 있지만 해파랑길은 좌측 굴다리 아래로 영동선 철로를 지나 7번 국도를 따라 간다.

이제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고 길의 끝은 까마득하다. 길을 걷다보면 비포장길을 걸을땐 다리는 아프지만 발바닥은 편하다. 그런데 아스팔트를 걸을 땐 다리는 조금 편한데 발바닥이 아프다. 발바닥도 편하고 다리도 편한 길은 탄성 아스팔트길이나 테크길이다. 길을 떠난 나그네가 길을 탓할 수 있으랴. 이런 길도 내길이고 저런 길도 내길인 것을. 인생도 그렇다.

철길 건너편으로 동해시의 자랑거리인 망상한옥촌(콘도, 리조트)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 위치는 기곡해변에 있는데, 망상해변이 인지도가 높아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 같다.

이제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석양의 붉은 빛만 남아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기곡해변을 지나면 도직해변부터는 강릉시에 속한다.

작은 항구 도직항을 지나면 한라시멘트 항만공장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제는 날이 많이 어두워져 공장의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종점까지는 2km 넘게 남았다. 사진으로는 주변풍경이 보이지만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발길을 재촉한다.

어둠이 내리는 길을 따라 주수천을 건너는 옥천대교를 건넌다. 구슬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이라는 의미인 옥계의 옛 이름인 옥천에서 따와서 이름지은 다리다.

이어서 낙풍천을 건너는 광포교를 지난다. 앞서 지나온 주수천은 남쪽에서 흐르고 낙풍천은 북쪽에서 흐르다 옥계해변의 광포에서 합류한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옥계해변의 주차장과 야영장에 인적이 없다. 주차장엔 몇 대의 차가 주차 되어 있으나 해변에도 숲속 캠핑장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둑어둑한 송림을 지나다 보니 밤공기가 내려 앉는다. 낮게 깔리는 눅눅한 밤공기에 솔향이 가득하다. 기분 좋은 냄새다.

늦게 출발한 탓에 버스가 모두 끊겼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호출하여 차를 가지러 간다. 오늘 처럼 버스가 끊기면 택시비가 만만찬게 들어간다.

걸으면서 무엇인가 정리하고 여러 생각을 하다 보면, 아쉬운 과거에 대한 후회, 주변에 잘 된 사람과의 비교,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들 이지만 이런것에서 벗어나야 행복할 수 있다. 걷는 동안은 회피하지 않고 많이 생각하고 그 생각에 대한 실체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고민한다. 오늘도 걷는 동안에 많은 것을 버리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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