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노자와 장자

허무의 기반에 사는 인간

나는... 누구인가? 2025. 9. 4. 10:42

《장자》라는 책의 첫 페이지에는 아주 미세한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천지라고 하는 우주의 바다에서 몇천 리나 되는 크기로 자란 다음에 바다가 회오리바람을 따라 요동치며 솟구치자, 그 기세를 타고 하늘로 올라 온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거대한 붕(鵬)이라는 새로 변하여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는 매우 역동적인 얘기가 나온다. 장자의 이런 역동적이고 낙관적인 삶의 자세는 어떤 통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까를 탐구하면, 그 책 안에서 우리는 매우 비극적이고 허무한 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획 지나가는 것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郤 忽然而已 인생천지지간 약백구지과극 홀연이이 [장자, 지북유])

인생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극단적인 허무에 도달한 한 인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토록 극단적인 허무에 도달한 사람이 또 무한 변화를 우주적 크기로 완수하는 역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무와 무한 확장은 이렇게 하나로 연결된다. 허무와 무한 확장을 연결하는 것은 하나의 독특한 능력이 아니라 허무라는 기반 위에 사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존재적 명령이자 사명이다. 허무하기 때문이다.

허무는 주관적 가치평가가 아니라 우주의 진실한 모습이다. 가치(value)가 아니라 사실(fact)이다. 어떤 의미인가는 아무 상관없다. 우주는 원래 허무하다. 허무하게 생긴 우주의 존재 형식을 노자나 장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이런 도의 이치를 온전히 깨닫고, 그 이치릉 자기화해서 구현할 능력까지 겸비하면, '득도(得道)'했다고 말한다. 우주적 삶을 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단계에 오른 자가 걸리느누것 하나 없이 일을 잘 수행하면, '도통(道通)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궁극적 사명은 득도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득도한 자는 세상과 우주의 이치에 밝아서 그때그때 상황을 잘 살펴,(즉, 도통하여) 매우 적절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해를 당하지 않는다.[ 장자, 추수]

이 적절한 행동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여서 우주적 차원의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곤(鯤)으로 태어나서 대붕(大鵬)처럼 살게 된다는 말이다.

누군들 우주적 차원의 삶을 살기 원하지 않겠는가. 하비만, 우리는 득도의 경지가 매우 특별한 극소수에게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서 지레 초기하고 꿈도 꾸지 않기 십상이다. 그렇더라도 득도가 인간의 사명이라면, 이는 특별한 소수에게만 하락된 것알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가능해야 하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 질서에 맞는 적절한 행동 하나하나를 쌓는다면, 우주적 성취를 해내는 단계가지 도다루한다고 하니, 일상의 작은 행동도 도통의 길일 수 있다. 우리가 얻어야 하는 도는 어떻게 생겼을까? 전적(典籍)들에 등장하는 도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은 움직임이나 모습이 감각적 수단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위무형(無爲無形)!"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허무를 나타내는 충실한 표현들은 없거나 없어진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없어지기 때문에 허무하고, 없거나 없을 정도로 사소하기 때문에 허무하다. '도'는 허무 그 자체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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