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1월 28일결핵에 신음하던 스님이 바랑을 챙겼다. 몸이 약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선방에서 버티던 스님이다. 어제저녁부터 각혈이 시작되었다. 부득이 떠나야만 한다. 결핵은 전염병이고 선방은 대중처소이기 때문이다.각혈을 하면서도 표정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동진출가(童眞出家)한 40대의 스님이어서 의지할 곳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면서도 절망이나 고뇌를 보여주지 않는다. 조용한 체념뿐이다.뒷방 조실스님의 제의로 모금이 행해졌다. 선객들에게 무슨 돈이 있겠는가. 결핵과 함께 떠나는 스님이 평소에 대중에게 보여준 인상이 극히 좋아서 대중스님들은 바랑 속을 뒤지고 호주머니를 털어 비상금을 몽땅 내놓았다. 모으니 9,850원이다. 사중(寺中)에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