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교수 강연 요약
경쟁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어떤 인간이 될까? 궁금하지 않은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은 변한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이 도발적인 말은 1970년 독일에서 아도르노의 사상이 교육개혁의 모토로 시작되어 54년 후, 오늘날 완전히 새로운 교육으로 성장한 독일인과 세계적으로 존경받은 나라가 된 독일이 되었다.
'교육혁명'이 우리나라에 필요하다."
히틀러의 파시즘을 경험했던 독일은 68혁명 이후 빌리 브란트정부가 히틀러의 세계관을 뿌리 뽑는 것이 진정한 과거청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아우슈비츠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독일 교육개혁의 목표였고 '야만적 경쟁 교육'을 없앤 교육개혁의 결과로 가장 성숙한 나라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 학살, 홀로코스트를 저질렀으며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20세기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이 21세기 최고의 모범국가가 된 것은 기적이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로 유럽 전체와 세계가 국익 추구만 쫓아가는 정치적 상황에서 백만 난민을 수용하고 윤리와 도덕, 정의와 인도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메르켈 총리와 그를 뽑아준 국민이 있었다.
2020년 9월 초 그리스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화재로 갈데없는 1만 5000 명의 시리아 난민을 독일 정부가 9월 15일 2700명을 먼저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40개 도시 수만 명의 항의시위가 일어났고 베를린 시위대 'Lager Evakuieren' 피켓 글씨에서 '인간 존엄에 걸맞은 거주지를 제공해라, 모두 독일로 보내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이 모든 힘이 경쟁 없는 교육에서 발생한 것이다.
2017년 한국개별연구원(KDI)이 한국, 중국, 미국, 일본 4개국의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당신들에게 고등학교는 어떤 곳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하는 광장 ▲거래하는 시장 ▲사활을 건 전쟁터 등 세 가지 선택문항으로 고르게 한 조사결과를 제시했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무려 80.8%가 '사활을 건 전쟁터'라고 대답했고 미국과 중국은 대략 40%, 일본은 약 14%로 대답했다. 일본 학생들은 '함께하는 광장'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76%나 된다.
독일 태생의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에게 '어느 쪽에 속하는가?'를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세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파티였다'라고 답했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우리는 일본이 심어놓은 경쟁 교육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탈출해 유럽 교육에 접근한 것에 대해 놀랍고 화가 난다.
독일 청소년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경쟁교육'이 아닌 예민한 감수성과 지적 호기심으로 많은 책을 읽고 인류가 만들어놓은 최고의 예술 작품을 즐기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누군가와 깊은 사랑을 공유하며 보내고 있고 이런 아이들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창 시절을 '전쟁터'로 기억하고 있고 우리 교육이 승자와 패자로 나눠 '전교 1등' 승자에겐 오만함과 미성숙함이 형성되고 패자에게는 열등감과 모멸감, 패배감과 무력감, 좌절감과 절망감을 내면화하고 있다.
전교 1등이 망치는 대한민국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 2020년 9월 1일 페이스북에 '정부와 언론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사실 : 의사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를 올렸다.
이와 관련해 2020년 9월 2일 자 한겨레신문 사설, <전교 1등 의사를 골라야? 혹 떼려다 붙인 의협 연구소>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올린 게시물에 대해 "<전교 1등>이란 말은 다 큰 성인이 유치하게 학창 시절의 성적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정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찾아볼 수 없다"라며 오만한 엘리트상이라고 비판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재판 독립을 침해한 혐의를 받은 이른바 '사법농단'의 주역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판사들의 궤변이다. 국민을 깔보고 경시하는 것이다. "권한이 없으니 직권남용도 불가능하고 그래서 무죄라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논리인가.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공정이라는 착각>의 원제목은 <Tyranny of Meritocrary(능력주의의 폭정)>이다. 가장 모범적으로 인식되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도널드 트럼프의 출연으로 나중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의회 점거시위까지 간 것에 대한 충격적인 사태를 지적한 마이클 샌덜 교수의 통찰력이 놀랍다.
백인 노동자들은 원래 미국의 민주당을 지지하는데 오만한 엘리트 힐러리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그들이 공화당인 트럼프를 뽑게 만들었다. 경쟁·능력주의에 매몰된 사회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파렴치하고 미성숙한 엘리트'가 국가를 지배하는 나라가 된다.
미국의 능력주의와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은 어떠한가?
<엘리트 세습>으로 알려진 대니얼 마코비치 교수의 저서 원제는 <The Meritocracy Trap(능력주의 덫)>이다. 예전에는 대중들이 혁명을 통해 저항과 비판의식을 표출했다. 그러나 지금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혁명을 막아내고 있다.
절망사(絶望死) : 자살, 약물•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을 말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제조업 몰락 등으로 저소득•저학력 백인 중년들 사이에서 약물 중독 사망과 자살이 급속히 번진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절망의 죽음’이라고 이름 붙였다. 앵거스 디턴의 책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7년 사이 ‘절망사’로 사망한 사람은 총 60만 명이다.
2018년 미국인 15만 8000명이 절망사 했다.
'공정'이라는 말은 '불공정'과 '특권'이라는 개념을 잡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공정이데올로기에 잡혀있다. 능력주의 교육, 경쟁주의 교육을 혁명적으로 파기해야 한다.
'교육혁명'을 위한 세 가지를 제안
첫째, 교육혁명의 주체로서 선생님들이 '정치적 시민권 박탈'에 대해 '자기 해방'을 가져야 된다. 한 사회의 지식인집단으로 OECD 평균 10%를 목표로 의회참여를 통해 교사들의 교육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둘째, 지식인들과 학부모님들은 광화문에 촛불로 나서야 한다.아이들에게 행복과 존엄을 이야기하며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 개성적인 자유인이 되도록 응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3년 뒤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경쟁·능력주의·공정' 야만의 트라이앵글에서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교육혁명으로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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