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7.화
중국에는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시장은 대책을 만든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있다. 대책은 상책, 중책, 하책의 총 9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순간만 모면하고자 하거나 변명하는 건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심오한 바둑에도 "잔수에 강하면 진다"는 교훈이 있다. 허구한 날 '대책 없는 회의'가 반복되는 조직도 많다.
전쟁론의 바이블, 손자병법은 제3편 모공(謀攻)에서 벌모(伐謀), 벌교(伐交), 벌병(伐兵), 공성(攻城)의 4가지 단계별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벌모(伐謀)이다. 벌모는 지략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지략으로 적을 굴복시키면 창칼 앞에서 서로 다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지략으로 상대의 모략을 깨뜨리는 데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 조조는 이 단락에서 ‘적이 막 전쟁 계획을 수립했을 때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용이하다(적시유모敵始有謀 벌지역야伐之易也)’라고 부연 설명하였다. 적이 전략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려고 할 때는 아직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상대의 작전이 제 모습을 갖추지 않은 어수선한 때를 틈타 적의 의도를 미리 꺾어 놓는다는 뜻이다. 전쟁은 힘의 대결이 아니다. 힘이 부족함을 걱정하지 말고 맞서 싸울 지략이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
둘째, 벌교(伐交)이다. 벌교는 주변 국가와의 외교 관계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외교는 나와 주변 국가들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다른 나라에서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외교를 통해 적국과 적국 동맹국 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와해시키거나 고립시킬 수도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해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적국은 결국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강화를 요청하거나 항복해 올 것이다. 이 전략은 각 주변 국가들이 처해 있는 정치적 상황과 각국의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꿰뚫고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강국과 약국, 강한 군대와 약한 군대가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전략적 외교 관계는 물질적인 출혈을 크게 요하지 않으니 오히려 약자일수록 외교 관계를 잘 활용하여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거나 나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벌병(伐兵)이다. 모략을 이용하거나 외교 수단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지만 대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공격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손무는 이 벌병의 방법이 이상적인 대결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 번째로 제시하고 있다. <손자병법> 13편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군대와 군대가 서로 싸우는 경우를 대비하여 어떻게, 어떤 장소에서, 언제 싸우는 것이 유리한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싸움의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것 그리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벌병의 방법을 써야 할 때는 가능한 한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하다.
넷째, 공성(攻城)이다. 공성은 적국의 성을 공격하여 무너뜨림으로써 오갈 데 없는 적군의 항복을 받아 내는 방법이다. 공성은 제시된 네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하책이어서 손무마저도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에 부득이하여 쓰는 방법(공성지법攻城之法 위불득이爲不得已)’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성을 공격하는 방법은 공격하는 사람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엄청난 자원 낭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먼저 성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방어용 방패나 엄호용 수레, 공성용 장비를 준비하는 데 3개월이 걸린다. 공성용 흙산을 쌓으려면 또 3개월이 걸린다. 공격을 오래 감행했음에도 승리하지 못하면 장수는 초조함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결국 휘하의 병사로 하여금 성벽을 오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그 가운데 3분의 1의 병사가 죽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고도 성을 무너뜨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 공성의 방법을 어찌 하책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준비 과정에서 체력과 자원을 모두 소진한 상태가 된다면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이 바로 공성의 해로움이다.
다만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선 질 수 있다. '이기는 것(win)'과 '지지 않는 것(not lose)'은 전혀 다른 애기다. 관건은 승부처를 보는 눈, 즉 형세 판단이다.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손자는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 있고, 지지 않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라고 설파했다.
한편 현실에선 역설, 아이러니, 딜레마 등 각종 심리적 구조변수들이 춤을 춘다. 특히 정책의 풍선효과는 정책입안자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다음에는 어찌할 건가. 따라서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전략적 사고, 시스템 싱킹(system thinking)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첫째,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라.
둘째, 열쇠는 수순과 타이밍이다.
셋째, 잘 모르겠으면 손을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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