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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37코스

나는... 누구인가? 2024. 9. 27. 22:04

2024.09.27.금

해파랑길 37코스(15.8km)
안인해변 ←4.0km→ 강동초등학교 ←1.5km→ 정감이숲길 구간 ←9.7km→ 정감이수변공원 ←0.6km→ 오독떼기전수관

걸은거리 16.90km
걸은시간 13:19~17:25, 4시간 05분 소요

4주 만에 다시 시작하는 해파랑길은 갈까 말까 망설이게 한다. 일기예보상 금요일 오후에는 강릉지역에 비가 올 것이라 예정되어 있어서다. 그러나 정오가 다가오는데도 비록 강릉과 50여 km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곳 동해의 날씨는 비가 올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혹시나 해서 작은 우산을 하나 준비해 가지고 출발했다. 회사에서 12시에 출발해 1시 10분쯤에 안인항에 도착해 하늘을 보니 구름은 조금 있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해파랑길의 37코스는 강릉구간이며 바우길 07구간과 같이 하는데 '풍호연가길'이란 별칭이 붙어있는 길이다. 안인해변에서 출발해 군선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가 오독떼기전수관으로 이어지는 18km의 길이다. 트레킹을 즐기면서 코스 도중 풍호 연꽃 단지, 정감이 수변공원과 정감이 등산로, 굴산사지 당간지주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괘방산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한 해파랑길은 영동선 철로를 따라 걷다가 육교를 통해 안인해변으로 넘어간다.

안인 해변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해변이다. 해변가까이 얕은 물속에 바위들이 형성되어 있고 물 흐름이 없어서 그런지 물속엔 작은 수초들이 많이 보이고 물은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해변을 거닐며 산책하기엔 어떨지 몰라도 해수욕을 하기엔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은 해변이다.

조용한 안인항은 대게 금어기라 그런지 어선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다. 지도에는 이곳이 안인항이라 표시되어 있지만 현지에서 말하는 이곳 어항의 이름은 안인진항으로 부른다. 실제 주소도 안인진리다. 안인리도 있는데 군선강 너머 북쪽에 있는 마을이 안인리이고 강 남쪽은 안인진리이다. 조선 숙종 때까지 수군의 진영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안인이라는 이름은 "강릉의 동쪽이 평안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항구의 입구에는 돛단배를 형상화 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갑판부위는 낡아서 손상되었고 돛의 뼈대는 녹이 슬었다. 강릉시애서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했으면 한다.

항구를 뒤로하고 안인진리 마을을 가로지르는 영동선 철로 굴다리 아래를 지난다.

마을을 나오면 강릉시에서부터 동해안 해변을 달리는 도로, 율곡로와 만난다. 해파랑길은 율곡로를 따라가지는 않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들길을 따라간다.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들판은 일부 논에선 벌써 벼베기를 마쳤다. 들길의 끝은 군선강과 만난다. 해파랑길은 여기서 좌회전하여 군선강 상류를 따라 올라간다.

군선강은 만덕봉 장구목이에서 발원하여 단경골을 지나 모전리에서 장적골로부터 흘러온 물과 만나 안인리로 흐른다.
군선강 북쪽 강변엔 두 곳의 발전소가 있다. 한 곳은 해변 쪽에 있는 영동화력발전소(한국남동발전)다. 1970년대 초반의 강원지구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함과 아울러 이 지역 탄전개발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호기(125MW) 건설계획이 추진되었다. 1972년 12월 12일 처음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이듬해 1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으며, 그 뒤 증설된 2호기(200MW)가 1979년 10월에 준공됨으로써 당시 석탄화력발전소로서는 국내 최대 시설용량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 한 곳은 강릉에코파워화력발전소다. 이발전소는 총 2,080MW(2개 호기) 설비용량으로 조성된 국내 최대의 민자(국민은행 42%, 삼성물산 29%, 한국남동발전 29%) 석탄화력발전소다. 2018년 착공하여 2022년 10월에 1호기가 준공되었고, 2023년 5월에 2호기가 준공되었으며, 발전운영은 남동발전에서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 하늘에 보이는 구름이 비구름으로 변할지 몰랐다. 구름은 바람을 따라 흐르고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를 건너다보며 걷는 군선강은 낭만으로 가득하다.

한동안 걷던 길은 군선교를 건너 죄회전하여 강의 반대편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대동제방길이라고 하는데 가을 강변의 잡초는 녹음이 짓던 계절을 뒤로하고 벌써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배롱나무의 빨간 꽃과 대비된다.

태풍에 해를 입었는지 한 방향으로만 가지를 뻗은 나무 한그루가 홀로 외로이 강변을 지키고 있다.

안인리 마을풍경을 감상하며 걷던 길은 안장교 다리를 통해 다시 한번 군선강을 건넌다. 안인리에서 모전리로 넘어가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모전리 강변길에서 만난 안인보에는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다. 어도 안내판을 보니 연어, 황어, 은어가 올라올 수 있게 아이스하버식으로 어도를 만들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보통은 계단식과 벽을 지그재그로 만드는 도벽식 어도를 많이 설치하는데 아이스하버식 어도는 물의 흐름이 고르고 중간중간에 물고기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어도다.

아이스하버식 어도

안인보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강가운데에 있는 소나무섬이 나타났다. 강원도를 걸으며 늘 떠오르는 생각이 '어딜 가나 소나무'인데 여기는 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임에도 멋진 소나무 군락이다. 다른 지방 같으면 보통 수양버들이나 잡목이 자라고 있을 자리다.

해파랑길은 다시 모전 1교를 통해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자마자 좌회전하면 7번 국도 아래를 지나고, 다시 우회전하여 7번 국도를 따라간다.

7번 국도를 따라 약 200여 미터 걸으면 좌측으로 강동초등학교가 나오는데, 이 학교는 1932년도에 개교한 유서 깊은 초등학교다. 학교 앞 담장을 따라 걷다 다시 우회전하여 모전리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소박한 풍경의 정겨운 모전리 마을이다.

외벽을 자연석으로 쌓아 올려 장식하고 창틀은 유럽의 고딕양식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모양으로 건축한 창고 같은 건물이 있어, 교회 인가해서 창을 통해 들여다보니 공장 같은 작업실과 사무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간판이 보이지 않아 뭔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 보니 케이디음향이란 스피커 만드는 회사다. 이런 작은 마을에 스피커 공장이라니, 아마 이 지역 출신의 장인이 고향마을에서 수제 스피커를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마을 안에는 뙡마을 쉼터가 있는데 이름이 특이하다. 맞은편엔 뙽마을 복지회관도 있고, 옆엔 모전리 마을회관도 있다. 이 마을은 모전리 인가, 뙽마을 인가! 검색을 해보니 '모전리(茅田里)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마을에 띠(풀 이름)가 많은 곳이라 하여 뙡지 마을 또는 모전이라 하였다. 1916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일부 지역을 갈라서 모전이라 하고 그 나머지를 언별리, 안인리라 하였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과 성덕면, 경포면이 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할 때 분리되어 명주군에 속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속하게 되었다.'라고 나온다.

마을 입구로 나온 길은 다시 정감이마을 방문자센터가 있는 둔지마을 방향으로 이어진다.

둔지마을로 향하는 둔지길 양옆으로는 벚나무가 조금씩 녹음을 벗겨내고 노란 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벚나무가 늘어선 둔지길을 벗어나면 정감이 마을 삼거리에 다다른다. 정감이 마을은 "정이 많고 감이 많은 동네"라는 의미를 가진 농촌체험마을이다. 강릉시 강동면의 생활권이 같고, 발전 잠재력이 있는 언벌 1리, 언별 2리, 모전 1리, 상시동 2리 등 4개 마을 513 가구가 모여서 아름다운 농촌 마을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공동체이다. 정감이마을에서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한데, 농촌체험, 공예체험, 먹거리 체험으로 크게 나뉜다. 농촌체험으로는 봄에는 밭에 파종하기, 채소 심기가 있고 여름에는 옥수수 수확, 감자 수확이 있으며, 가을에는 땅콩 수확하기, 고구마 수확, 감 따기, 감말랭이 만들기, 곶감 만들기가 있다. 공예체험에는 싱싱한 감을 씨가 여물기 전에 따서 갈아서 면포에 거른 후 최소 세 번 이상 빨고 널기를 반복하는 감물 들이기 체험과 초충도 LED등 만들기, 소나무 수납함 만들기, 소나무 연필꽂이 만들기, 나만의 머그컵 만들기 등이 있다. 먹거리체험으로는 곶감 설기 만들기, 곶감 송편 만들기, 곶감 만들기, 곶감찹쌀고추장 만들기, 곶감타르트 만들기 등이 있다.
해파랑길은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정감이마을 등산로를 향한다.

정감이마을 등산로 유래
마을 김부짓집에 머슴을 살고 있는 유총각이 있었는데 유총각은 부지런하고 영리하고 참으로 성실하여 주인과 이웃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사실 총각은 본래 양반이었는데 집안이 몰락하여 김씨 집에 머슴을 살게 된 사람이었다 마침 김부잣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성실하고 잘생긴 유총각을 사모하게 되었다. 어느 봄날 김낭자는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가고 유총각은 나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산에서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고 소나무 가지 밑에서 비를 피하던 중 둘은 같이 도망가기로 결심하고 칠성산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등산로로 가는 도중 명주관아를 보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 후 젊은 연인들이 이 장소에서 사랑을 언약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유래가 내려온다.

짙은 소나무향이 배어 있을 것 같은 오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높지 않은 능선을 타고 가는 산길은 완만한 오르막 내리막에다 구불구불한 길이다.

길은 모전리에서 언별리로 넘어간다. 언별리라는 마을의 이름은 마을에 있는 송담서원과 관련이 있다. 1천 미터가 넘는 만덕봉을 품고 있는 언별리의 송담 서원은 율곡 이이를 추모하기 위해 인조 때 학산리에 석천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했고, 현재의 위치로는 효종 때 이전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서원이 순조 때 산불로 불타 없어지자 서원에서 공부하던 많은 수의 유생들이 이곳을 떠나버렸는데 선비들이 떠났다는 의미로 언별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언별 1리에 있는 송담 서원은 1904년 유림들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대규모 태양광 발전단지를 지날 무렵 하늘의 구름이 심상찮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 걷는 길의 2/3 정도 지날 무렵 한 방울 두 방울씩 내리던 비는 갑자기 쏴아~ 하고 소낙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펴 들었지만 수풀길을 걷는 동안 허리 아래로는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흠뻑 젖었다. 그래도 상의는 젖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숲 속에서 나온 해파랑길은 언별 1리에서 한국철도공사 강릉차량사업소로 이어지는 언별하평길 포장도로를 만나고 길을 건너 다시 숲 속으로 이어진다.

이제 길은 도랑이 되었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산속에서 나와 동막저수지 부근에 다다르자 잦아들었다.

어단 2리 농로를 따라가며 보는 풍경이다. 안개비가 내리는 농촌의 들녘과 그 끝에 희미하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 중의 하나다.

살아보고 싶어지는 한옥으로 지은 전원주택은 지금 날씨와 잘 어울려 그림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어단 1리 마을 입구에 '마음이 쉬어 가는 곳'이란 표지석이 있는데, 이곳은 상부락마을 서낭당이다.

누렇게 익은 벼와 잘 생긴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 돌로 쌓은 서낭당이 한국의 멋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서낭당을 뒤로하고 어단리 마을을 가로질러 나오면 칠성로와 만난다. 남쪽으로 200여 미터 걷다가 우회전하여 남강릉 IC방향으로 걷는다.

칠성저수지에서 내려오는 개천변을 따라 갇는다. 뒤돌아 보니 동해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그 뒤로 칠성산의 봉우리가 빗속에 고즈넉하다.

남강릉 IC를 지나 굴산사지 당간지주 방향으로 걷는 도중 개천 건너편에 테라로사 커피공장이 있다.

비에 젖은 감나무 과수원 길을 걷는다. 옷도 젖고 신발도 젖었다. 빗물에 불은 발가락과 발바닥이 아프다. 그러나 목표가 있는 길이기에 계속해서 걷는다. 여행을 떠날 때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견디는 일은 체력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힘도 시험하고 훈련을 시킨다.

하늘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수포로 돌아가게 한다. 강인함과 참을성을 길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맹자)
알베르트 키츨러 <철학자의 걷기 수업> 중

최신식 재배시설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궁금하여 들여다봤으나 알 수가 없다. 유실수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굴산사지 당간지주가 바로 앞에 보이는 곳에 굴산사라 적혀있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 왔는데 석탑의 모서리가 날카롭게 각이 서있고 건물도 뭔가 어색한 것이 도무지 고찰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아 검색해 보니 신라시대의 굴산사지는 따로 있고 이 절은 근래에 지은 것 같은 개인절이다. 거기다 대웅전 현판도 마루 위에 나뒹굴고 있는 폐사다.

드디어 굴산사지 당간지주에 도착했다. 비 온 뒤의 당간지주는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보러 갔을 때의 감회를 불러온다. 고즈넉한 들판에 서있는 석탑과 당간지주는 주변의 풍경과 어울려 서로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여행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강릉 굴산자지 당간지주는 신라 문성왕 13년(851년) 범일국사가 개창한 신라하대 구산선문 중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인 굴산자에 세워진 불교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돌로 만든 당간지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고대 사찰에서는 법회 등의 중요한 행사를 할 때 불화를 그린 깃발을 높이 매달아 행사를 널리 알렸다. 천이나 종이 등에 그린 그림을 '당'이라 하고  당을 다는 진 막대기를 '간'이라 한다. 이 당간을 받쳐 세우는 두 개의 돌기둥이 '당간지주'이다. 대개 사찰 입구 양쪽에 세우며, 그 안쪽이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굴산자지 당간지주의 맨 꼭대기는 뾰족하고, 깃대를 고정했던 구멍이 위아래 두 군데에 뚫려 있다. 4면에는 조각을 전혀 하지 않고 돌을 다듬을 때 생긴 거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보인다.

구산선문
통일신라 이후 불교가 크게 흥할 때, 승려들이 중국에서 달마의 선법을 받아 가지고 와 그 문풍을 지켜 온 아홉 산문(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다.

당간지주 앞의 논엔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간지주를 뒤로하고 오독떼기전수관을 향해 굴산교를 건넌다. 길을 걷다 보면  조금 긴 거리를 걸으면 지루함이 몰려온다. 단조로운 풍경이 연속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종점에 다다라야 오늘 쉬고 또 다음을 기약한다. 계속 걸으면서 걷는 동안은 오직 걷는 데에만 열중해 본다. 그렇게 걷는 것이 가장 편하다. 걷는 데에 열중하는 것 외에 달리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목표하는 곳에 닿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하며 살든 그것에 열중하면 되는 것이다. 오직 사는 데에만 열중하다 보면 이 또한 끝이 오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 외에는 달리할 방도가 없고, 또 그것이 가장 편하게 사는 길이다.

오독떼기전수관 조금 못 가서 길 우측으로는 국가유산사적으로 지정된 굴산사지가 있다. 그 넓은 면적으로 미루어  보건데 굴산사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하였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도로 옆 굴산사지 한쪽 가장자리에도 서낭당이 있었다. 강릉지역의 서낭당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종 모양으로 쌓은 것이 다른지역의 서낭당과는 차이가 있다.

강릉 학산 오독떼기전수관에 도착하여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비가 오는 길을 걷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마지막 버스가 끊겼다. 택시를 호출하였으나 비가 와서 그런지 잡히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시내방향이라 생각되는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트럭이 멈추어 서고 기사님이 해파랑길을 걷고 있는지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고 사정을 말했더니 시내 방향은 반대쪽이라 한다. 아뿔싸, 큰일 날뻔했네. 뒤돌아 걷고 있는데 아까 그 트럭이 다시 따라와서는 자기는 오독떼기전수관에 있는 해파랑길 쉼터 직원인데 그냥 가자니 안타까워서 그러니 시내버스가 많이 오는 곳까지 태워 주겠다고 한다. 구세주와 같이 고마운 은인이다. 퇴근길과 반대방향으로 태워다 주겠다니... 그 직원분은 강릉 병무청 앞 버스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갔다. 50여 분을 기다리니 102번 버스가 와서 안인해변으로 가서 내차를 몰고 동해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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