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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41, 42코스

나는... 누구인가? 2024. 10. 12. 17:05

2024.10.12.토

해파랑길 41코스(12.4km)
주문진해변 ←1.2km→ 향호 ←5.9km→ 남애항 ←3.5km→ 광진해변 ←1.8km→ 죽도정

해파랑길 42코스(9.7km)
죽도정 ←5.0km→ 38선휴게소 ←3.3km→ 하조대 ←1.0km→ 하조대전망대 ←0.4km→ 하조대해변

걸은거리 24.51km
걸은시간 09:41~16:28, 6시간 47분 소요

간밤에 잠을 설쳤더니 해가 떴는데도 불구하고 일어나기가 힘들다. 오늘은 가지 말고 늘어지게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이 계속 몸과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고 있다.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결국은 잠도 오지 않는다. 그래도 느지막이 일어난 때문인지 피곤하지는 않다. 서둘러 밥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주문진해수욕장 공용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파랑길 41코스를 시작한다.

해파랑길의 41코스는 양양 속초 구간에 속한다. 주문진 해변에서 출발해 남애항과 광진 해변을 지나 죽도정 입구에 이르는 구간이다. 여러 항구를 거치는 해안을 따라 석호와 소나무숲, 대나무숲을 지나는 길이다. 주요 관광포인트로는 하천의 담수와 동해안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생성된 석호 향호, 깨끗한 백사장과 송람으로 사랑받는 양양군 남쪽 끝에 위치한 지경 해변, 빨간색, 하얀색 등대가 그림같이 호위한 강원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남애항, 낙산사와 함께 새로운 일출 명소로 떠오른 쉬고 또 쉰다는 의미의 휴휴암, 기암절벽과 동해바다가 절경인 사시사철 송죽이 울창한 죽도정 등이 있다.

주문진 해변길은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는 도로 바로 옆이 백사장인데 도로와 백사장사이에 자연석을 이용한 경계석을 세우고 그 안쪽에 인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길 건너편에는 인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 반대편에는 인도가 없다 보니 백사장 방향에서 걷는 사람은 지나다니는 차량 때문에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길양쪽으로 인도를 정비하고 있으니 걷기 여행자들에게는 여건 고마운 일이 아니다.

아침나절의 드넓은 향호해변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바다 또한 하늘색이 투영되어 짙푸르다. 향호해변은 고운 모래 해변이다. 경사도 거의 없는 평지와 같아서 물이 깊지 않고 깨끗하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찾는 해변이다.

운동장같이 평평한 향호해변이다.

BTS 버스정류장

이곳은 2017년도 발매된 BTS 'You never walk alone'이라는 앨범 재킷을 촬영했던 장소로 ‘BTS 버스정류장’이라는 유명한 포토존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강릉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정류장은 촬영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졌다가 철거된 후 관광객들을 위해 현재 포토존으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이곳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파도치는 바다가 배경이 되어준다. 주문진의 이색 볼거리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향호해변 끝에서 좌측으로 돌아 나온 해파랑길은 향호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기 전 다시 좌회전하여 7번 국도 동해대로를 연결하는 향호 3교 아래로 통과한다.

다리아래를 통과하여 나오면 거울같이 잔잔한 향호가 반갑게 길손을 맞이한다. 향호(香湖)는 동해안 여러 석호(潟湖) 중의 하나이다. 호수의 이름은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맹방해변처럼 매향 풍습. 즉, 향나무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묻는 풍습에서 기원한다.

향호는 사주(沙洲)가 만의 입구를 막아 바다와 분리된 호소(湖沼)로서 지하로 해수가 섞여 들어와 염분농도가 높아 담수호(淡水湖)보다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부영양(富營養)인 석호(潟湖)이다. 석호는 수천 년 전 해수의 흐름과 지형적인 영향에 따른 복합적인 결과의 산물이다.

해파랑길을 시작할 때는 활짝 핀 벚꽃길을 걸었는데 어느새 낙엽진 벚나무 산책길을 걷는다. 세월의 흐름이 빠름을 실감한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동네주민들이나 나와 같이 걷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다. 덕분에 호젓한 호수길을 느릿느릿 조용히 걸으면서 사색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갈대숲 사이로 깔끔한 데크길 탐방로도 만들어 놓았다.

물속에 쓰러진 나뭇가지 위에 가마우지 사형제가 앉아 쉬고 있다가 사진을 한 장 찍고 나니 후다닥 날아가 버린다. 조용히 쉬고 있는데 불청객이 방해를 한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다.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 봐도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호수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파란 하늘이 잔잔한 호수에 그대로 가라앉은 것 같은 풍경이다.

호수를 돌아 나오면 군부대가 있고 곧바로 7번 국도와 만나는 향호삼거리다. 여기서 죄회전하여 동해대로를 따라간다.

해파랑길은 이제 강릉시 주문집읍에서 양양군으로 넘어간다. 강릉을 지나면서 울창한 송림과 솟대, 월화거리 등 강릉만의 특색 있는 풍경을 많이 보고 감상했는데 양양군에는 어떤 볼거리들이 펼쳐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걷기 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동일한 지명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지경리도 마찬가지다. 지역과 지역이 구분되는 곳에 있는 마을 이름은 어김없이 지경리(地境里)다. 이곳 지경리는 과거에는 임호정리에 속하였는데, 당시 주위가 방책(防柵)이었고, 강릉과 양양의 군 경계였기에 지경리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지경리 벌판 서쪽 오지에 방축을 막아 담수하였다가 농업용수로 사용하였다 하여 방축말(池里)이라는 지명도 있다.

산 좋고 물 좋은 양양이라네!
지경해수욕장을 향해 나아간다.

구름한전 없는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는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 백사장은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니다.

지경리 해변에도 오래된 나무는 아니지만 소나무밭이 이어진다. 나무 크기로 보아 10~20여 년 전에 조림을 한 것 같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조림은 꼭 필요하다.

비록 인조 야자수지만 에메랄드 빛 바다와 어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해파랑길은 지경리해수욕장 중간쯤에서 길을 우회한다. 해변을 따라 직진하면 좋겠지만 지경리와 붙어있는 양양군 현남면 지리 일원에 들어설 초대형 복합 리조트 공사로 인해 가림막을 쳐놓아 리조트 공사 현장을 우회해서 원포리로 향한다. 리조트가 완공되면 양양은 더욱 활기가 넘칠 것 같다.

지경리해변을 지난 길은 화상 1교를 통해 화상천을 건너 화상해안길을 따라 직진한다. 화상천은 주문진항 서쪽의 삼형제봉(622.8m) 북쪽에서 발원하여 달래저수지를 거쳐 입암리를 지나 원포리에서 지경리해변과 원포리해변을 구분 지으며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향호해변에서부터 밀려드는 파도가 너무 좋다 싶었는데 원포리 해변에 들어서자 갑자기 서퍼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강릉 옥계해변에서 드문드문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을 보았는데 이곳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월포리해변 끝에 있는 남애어촌체험마을의 예쁜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해변 한쪽 끝에는 두 아이가 모래성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

테크길을 해변 깊숙이 설치해 놓아 신발 속에 모래가  들어갈 염려 없이 물가를 구경할 수 있게 해 좋았다. 성수기엔 많은 사람이 몰릴 것 같다.

예쁘게 꾸며놓은 남애리 마을공원을 지난다.

강원도 3대 미항 중의 하나라는 남애항에 도착했다. 남애항은 양양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항구로 양양 8경 중 하나다. 강릉 심곡항, 삼척 초곡항과 함께 강원도 3대 미항으로 꼽힌다. 모두 작은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자연스러운 만 형태의 모습을 가진 작은 항구다. 방파제에는 송이버섯 모양의 빨간 등대가 이채롭다.

남애항은 항구를 배경으로 뜨는 해가 아름다워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남애항의 또 다른 볼거리는 남애항 스카이워크 전망대다. 방파제 입구 쪽에 자리한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남애항 일대와 동해의 시원스러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스카이워크가 들어선 곳은 조선 시대에 양야도라는 섬으로 불렸고, 섬의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스카이워크를 설치했다.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북쪽

남애3리 해수욕장 앞 바위섬을 콘크리트로 보강하여 다리를 놓아 일출 명소를 만들어 놓았다.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스카이워크 동쪽의 바위섬 양지도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남애항 방파제와 등대

남애3리 해수욕장은 서핑의 천국이었다. 밀려오는 높은 파도가 반가운 서퍼들로 가득하다. 근처엔 서핑장비와 스킨스쿠버 장비를 대여하고 강습하는 업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남해 3리 해변의 이국적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쉬어 간다

한참을 쉬고 떠난 해파랑길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남애 3리 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남해초등학교 옆을 지나 갯마을길을 따라간다.

해변 백사장과 소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아담한 작은 학교 운동장에는 황금빛이 물들기 시작하는 잔디가 깨끗하게 손질되어 깔려 있다. 문득 바람이 불거나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흙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던 어릴 적 국민학교 교정이 떠오른다.

남애초등학교와 아모레퍼시픽 남애임직원휴양소를 지난 길은 오른쪽으로 갯마을해변을 둔 갯마을길을 좌측으로 한굽이 돌아 다시 7번 국도와 합류한다.

7번 국도를 만난 해바랑길은 곧장 포매호의 물길이 동해로 빠져나가는 포매교를 건넌다. 포매호는 매호라고도 하는데 경포호, 향호와 마찬가지로 동해안에 형성된 석호로서 포매천과 견불천이 호수로 유입된다. 한동안 국도변을 걷는다. 하지만 차도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가드레일 안쪽에 마련된 자전거길을 따라 걷는 길이기에 가끔씩 만나는 라이더들만 피해 주면 불편함은 없다.

한동안 7번 국도를 따라가던 해파랑길은 관진해변 표지판을 조금 지나서 해변 숲길을 걷는다. 그런데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이곳은 광진해변이 아니라 '멍비치'라 표기되어 있다. 광진해변은 휴휴암 지나서  휴휴암과 인구항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 표기된다. 안내판 위치를 잘 못 설치한 것 같다.
멍비치가 궁금하여 검색하니 애견인구 1000만 시대지만 애견인들이 다중이 출입하는 계곡, 바닷가, 강가 등을 반려견과 동시에 출입하는 것은 각종 제약과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 반려견과 자유로운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애견전용해수욕장이라고 한다. 해변길이 300m 중 150m를 애견 전용 구역으로 지정하여 일반관광객과는 분리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변에서 나온 길은 잠시 산길을 오르는가 싶더니 여러 기의 분묘와 뙤기 밭을 지나, 쉬고 또 쉬라는 휴휴암에 도착했다.

휴휴암은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쉬고 또 쉬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1997년 홍법스님이 창건한 이곳은 묘적전이라는 법당 하나로 시작되었으나 1999년, 바닷가에 누운 관세음보살 형상의 바위가 발견되면서 기도처로 유명해졌다.

묘적전 아래 바닷가에는 활짝 핀 연꽃을 닮아 연화대라고 이름 지어진 너른 바위가 있다. 연화대에서 관세음보살 바위와 거북이 형상의 바위를 찾아볼 수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휴휴암을 뒤로하고 언덕길을 내려와 7번 국도와 나란히 붙어있는 광진리 마을로 들어선다.

작은 방파제와 바위가 오밀조밀한 광진해변은 특별할 것 없는 아주 작은 해변이다.

광진해변을 지나 해송교를 건너 인구해변에 도착했다. 멀리 죽도산과 인구방파제가 길게 뻗어 있다. 해송교는 서쪽 만월산(621.8m)에서 발원한 물길이 동해도 빠져나가는 해송천을 건너는 다리다.

인구해변의 상가에는 휴일이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건물이 밀집해 있는 해변길을 돌아 죽도 해안산책길을 향해 걷는다.

죽도 해안산책길은 시작부터 기암이다. 파도와 바람,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 앞에 감탄사만 연발한다.

부채바위
신선대

산책길에서 벗어나 죽도 정상에 오르면 죽도정과 전망대가 있다. 일출 명소로도 유명한 죽도정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정자로 1965년 현남면 부호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고 행정 지원을 받아 지었다.

죽도정 동쪽에 위치한 약 20m 높이의 죽도 전망대는 섬 풍광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또 다른 명소다. 섬의 상징인 대나무가 연상되도록 전망대 골조에 대나무 공예의 격자무늬를 접목했다. 사시사철 송죽이 울창한 죽도는 옛날에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소돌해변, 남애항 휴휴암이 그림처럼 보인다.

전망대에서 본 인구 시가지
전망대에서 본 동산항
죽도암

침식작용으로 생긴 구멍 안에 귀여운 꼬마스님들이 가득하다.

서핑의 메카로 알려진 죽도해변 앞바다는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이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다.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나도 젊었을 때 저런 스포츠를 한번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적에는 이 젊음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줄 알았다. 지금도 나이가 많이 든 것은 아니지만 저런 스포츠는 감히 엄두를 못 낼 것 같다. 이제는 젊은 날의 열정이나 활력을 욕심내기보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을 배우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사소한 즐거움을 찾으면서 살 궁리를 해야 할 때이다. 그것이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시끌벅적 활력이 넘치는 거리를 지나 41코스를 마무리한다.

해파랑길 42코스는 죽도정 입구에서 38선 휴게소와 하조대를 지나, 하조대해변까지 이어지는 걷는 길이다. 동해바다와 함께 조선시대 우국충정이 깃든 하조대와 38선 분단 역사를 둘러보는 코스로서 38선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나 철조망이 없는 기사문해변,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가 있는 국가명승 제68호 하조대 정자, 동해바다의 절경인 하조대 전망대가 있는 하조대 해수욕장 등이 있다.

서핑의 성지이자 메카로 통하는 죽도해수욕장은 젊음으로 넘실댄다. 해변은 온통 서퍼들 세상이다. 거리엔 서핑숍이 즐비하고, 서퍼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술집과 식당, 카페 등 핫한 공간들로 가득하다.

죽도해수욕장이 서핑의 메카가 된 건 수심이 비교적 얕고 알맞은 파도 때문이다. 특히 가을은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어오는 덕분에 서핑을 즐기기에 좋다. 거기에 춥지도 덥지도 않고, 휴가철을 비켜선 요즘 죽도해변은 서퍼들의 천국이 된다.

죽도해수욕장을 지나면 동산항해수욕장이다. 여기도 소나무 밭은 있는데 조림한 지 오래지 않은 숲이다. 그렇더라도 계속 심어 후대에 울창한 숲을 물려줘야 한다.

죽도해수욕장과 나란히 붙어있는 동산항 해수욕장도 죽도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서퍼들의 천국이다. 곳곳에 서핑 슈트를 입은 젊은이들로 생기가 넘쳐흐른다.

동산항은 작고 아담한 항구인데 항구 안에 커다란 바위덩이들이 마치 주인인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독특하다.

동산항을 지나 동산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동산리 마을길을 걷는다. 거리는 오래된 건물도 있고 한창 건축 중인 신축 건물들도 있다.

'조개 굽는 마을'이라는 대단위 밀집 조개구이 가게들이 있는 곳을 지나 7번 국도와 나란히 북분리 해수욕장을 향해 간다.

동산해변에서 북분리해변에 이르는 길은 소나무 숲과 나란히 걷게 된다. 해변에는 예술가들의 솜씨인 듯한 인상적인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고, 솔밭 야영장에는 차박과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북분리해변의 푸른 바다와 황금빛 백사장을 배경으로 조각배 같은 초승달과 그믐달 모형을 설치해 놓았다

해변길을 소나무와 함께 걷던 해파랑길을 7번 국도 아래를 통과해 우회전하여 간다.

복분리 복지회관을 지나고 마을 뒤 구릉지를 가는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릉지를 지나는 길이지만 포장이 잘 되어 있어 걷기에는 무난한데 이 길도 동해안 자전거길과 함께하는 길이어서 라이더들에게는 꾀나 힘든 길이다.

길은 숲 속을 걷기도 하고 우측 7번 국도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이어진다.

7번 국도 좌측을 따라가던 해파랑길은 앞에 보이는 오르막을 지나 우측으로 육교(나중에 보니 육교가 아니라 '대전차 방어용 낙석 장애물 시설'이라고 한다)를 건너 내려가면 38선 기념탑이 나온다.

대전차 방어용 낙석장애물 시설

38선 불망기

겨레여!
여기 이곳을 저 파도소리처럼 잊지 말자.
한땐 민족의 사랑도 끊기었던 38선
하늘에 사무친 한을 국토통일 그날까지
- 황금찬 -

2차 세계 대전에 승리한 강대국들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군사적 편의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임의로 그어놓은 경계선,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미, 소가 양분하여 관리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고 적대감이 고조된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이선이 무너지나 1953년 휴전 협정으로 휴전선이 성립될 때까지의 남과 북의 정치적 경계선이 되었다. 인천 상륙 작전과 서울 수복 이후 미군과 유엔군은 전쟁 확대를 원치 않았으나, 이승만은 국군 단독으로 북진을 명령했고 양양지역에서 국군 3사단 23연대가 처음으로 38도 선을 돌파하면서 기념 표지판을 세웠는데 이를 기념하여 1956년 10월 1일  국군의 날로 제정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다고 느껴지는데 38선 기념탑과 휴게소를 보니 북쪽으로 많이 올라왔다는 게 실감 난다.

기사문해변도 서퍼들의 천국이다. 연신 밀려오는 파도를 맞서 넘어가서는 보드에 올라타 파도를 따라 해안으로 내 달린다. 해변 한쪽에는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쉬고 있다. 그런데 등대를 보니 여기도 버섯모양 빨간 등대다. 송이버섯의 주산지 양양의 마스코트가 송이버섯이다 보니 양양군의 모든 빨간 등대는 송이버섯 모양하고 있는 것이다.

38선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기사문항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영동고속도를 통해 설악산 여행을 떠날 때 반드시 들렸던 38 휴게소와 인접해 있어 인파가 몰렸었다고 한다.

한적한 항구거리를 지난 해파랑길은 기사문리 마을길로 들어선다.

기사문리 마을회관 주변으로 특색 있는 벽화들이 많다.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이야기들이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아찔하다. 언제 통일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또, 그 과정이 어렵고 험난할지언정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뻥이요~~. 어릴 적 설 명절이 가까워지면 도시 시골 가리지 않고 주택가 공터엔 뻥튀기 판이 벌어졌다. 옥수수, 쌀, 수수, 말린 가래떡 등 갓은 곡식을 튀겨주는 뻥튀기 기계를 설치하면 동네아이들은 주변에 몰려 있다가 귀를 막고선 뻥~ 소리가 나길 기다렸다. 자루 밖으로 튕겨져 나온 뻥튀기는 아이들 몫이었다.

1919년 3.1 만세 이후 양양엔 장날을 기점으로 4월 4일부터 만세 운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1천여 명이 모인 시위대는 일제의 무차별 총격에 9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기사문리를 지나온 길은 이제 하조대를 보기 위해 현북면 하광정리 방향으로 길을 재촉한다.

7번 국도 동해대로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 길이다.

현북면사무소 입구에서 계속 직진하여 광정천을 만나 우회전하여 천변을 따라 400여 미터 가면 '하조대 명승지'입구다.

광정천은 만월산 북쪽 대치리에서 발원하여 상광정리, 하광정리를 거쳐 하조대 북쪽에서 바다로 빠져나간다.

하조대 명승지 입구

이곳에서 약 500여 미터를 걸어서 하조대를 만나고 조금 북쪽의 기사문등대를 보고 나오면 군 휴양시설 옆 철책을 따라 하조대 둘레길을 감상할 수 있다.

하조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신 하륜과 조준이 고려말에 이곳에서 은둔하던 곳이라 하여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 하였다. 하조대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는 1955년에 건립됐고 2009년에 명승 제68호로 지정되었다. 6.25 전쟁으로 불타 소실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하조대 정자에서 바라보는 바위 절벽 위 소나무가 멋지다.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 일출장면에서 나오는 소나무다. 바위 절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200여 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척박한 바위 위에서 고고하게 홀로 빛나는 그 생명력이 신비롭다.

하조대에서 해안 절경을 구경하고 무인등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바위 위에 세워진 하얀 등대인 기사문등대는 1962년 5월에 세워졌는데, 약 20km 거리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등대 주변의 괴암괴석이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등대에서 내려오면 군인 휴양소 옆으로 난 철책을 따가 가다가 하조대 둘레길을 걷는다.

군인 휴양소 앞의 해변

하조대 둘레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보는 풍광 또한 일품이다. 하조대해수욕장과 함께 멀리 수산항까지 조망된다.

하조대 전망대를 둘러 나온 해파랑길은 우회전하여 광정천을 가로지르는 하륜교를 건너 42코스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즐겁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제 다시 차를 세워둔 곳까지 가야 한다. 시내버스 코스를 검색하고 버스정류장이 있는 하조대농협 하나로마트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버스시간을 검색하니 '배차간격이 긴 노선'으로 뜨고 배차정보가 없다. 최소한 1시간 이상 기다리라는 뜻이다. 마침 배도 출출하고 해서 마트에서 빵과 커피를 사들고 나와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업로드를 하면서 기다렸다. 1시간 20여분 후 버스가 와서 탔다. 자리를 잡고 앉는데 익숙한 투의 억양이 들려 돌아보니 중년의 여행객 한분이 기사님께 행선지에 대해 묻고 계셨다. 분명히 대구 억양이었다. 그래서 어디서 오셨는지 물어보니 역시, 대구에서 왔다고 하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종점인 향호삼거리에 도착해 같이 내렸다. 이분의 차도 내차를 세워둔 주문진해변 주차장에 세워둔 것이다.  주차를 해 둔 곳까지 1km 남짓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세가 나보다 15살이나 위 이신 선배님이다. 얼핏 봤을 땐 10살 남짓 많게 보였는데 이렇게 젊음을 유지하시는 게 대단하다. 혹시 내일 만나게 되면 같이 걷자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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