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9.토
해파랑길 48코스(13.6km)
가진항 ←2.7km→ 남천 ←3.4km→ 북천철교 ←3.6km→ 반암해변 ←3.0km→ 거진항
해파랑길 49코스(12.3km)
거진항 ←3.4km→ 응봉 ←1.6km→ 김일성별장 ←4.6km→ 대진항 ←2.7km→ 통일안보공원
걸은거리 29.47km
걸은시간 08:18~16:21, 8시간 3분 소요
해파랑길 48코스는 가진항을 시작으로 항목리, 동호리, 울창한 송림을 따라 반암해변과 거진해변을 거쳐 거진항 활어회센터에 이르는 코스다. 가진항을 벗어나 바닷가 옆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향목리까지 걷다가 남천을 건너고, 이어서 동호리를 지나고 북천을 따라 상류 방향으로 올라가 북천철교를 건넌 후 다시 북천을 따라 바닷가 방향으로 걷는다. 바닷가에 이르면 송림이 펼쳐진 비포장도로를 걸어 올라간다. 이 길은 해파랑길 중에서 조용하고 한적한 바다와 농촌의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길이다. 또다시 바닷가 송림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반암리 마을을 지나, 반암해변에 이르게 된다. 반암해변부터 거진항까지는 해변길을 따라 걷는다.
아침에 조용히 혼자 걸었을 때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가진항. 잔잔함과 조용함 때론 거침이 함께 살아있는 아름다운 가진항은 비교적 큰 규모의 항구이다. 예부터 다른 어항보다 수산물이 많이 나서 주민생활에 덕이 많이 되었다고 하여 약 100여 년 전부터 속칭 덕포라 불렀으며 후에 작은 나루가 하나 더 생겨나자 가포진이라고 불렸는데 1914년 리명 개편 시 가진리로 고쳤다.
아침부터 분주한 가진항 위판장은 새벽같이 잡아온 활어들로 풍성하다. 수조마다 갑오징어, 가자미, 우럭, 부시리 등의 활어가 힘차게 펄떡이며 경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매 현장을 보기 위해 한참 기다렸으나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항구 뒤쪽 언덕길로 발걸음을 돌린다.
항구 뒤 언덕길에서 본 가진항은 마치 얼어붙은 듯 잔잔한 물결이 고즈넉하고, 포구엔 빨간등대와 하얀등대가 장승처럼 항구를 지키고 있다. 멀리 공현진항과 해수욕장 너머로는 설악산의 험준한 산맥이 수묵화처럼 아련하다.
언덕을 돌아 나온 길은 가진해변길을 따라 평화로운 가진리 마을을 걷는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실개천도 건너고...
봄은 어젯밤 꿈같이 또렷한데 더운 여름도 찰나로 지나고 가을이 익어간다. 서걱이는 낙엽을 밟고 지나는 길은 흐르는 세월의 생경함을 더해준다.
가진마을을 지난 해파랑길은 남천을 향해 끝이 보이 않는 직선도로를 이어간다. 이 지역은 지도상으로 보면 해변 솔밭과 백사장 경계지점에 걷기 좋은 길이 보이는데도 해변으로 나가지 않고 도로를 따라간다. 아마 해안은 군사지역이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도로를 따라가는 것 같다는 추측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백사장과 바다를 보며 걷는 것도 좋지만 잠시 벗어나 내륙의 분위기에 젖어보는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추수를 끝낸 들판 너머로 울창한 송림이 보인다. 속에서 보는 숲도 좋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풍경도 일품이다.
도로 옆에 있는 한우 농가에 소음 피해가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투명 방음벽에는 독수리사진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버드 세이버'라는 것이다. 고층 건물 유리벽이나 투명한 방음벽이 많아지면서 야생조류가 허공으로 착각해 빠르게 지나가다 충돌해서 죽는 일이 많다. 그래서 맹금류 스티커나 그림을 등을 붙여 실제 맹금류로 착각하고 부근을 피해 날아가도록 유도하는 보호장치다.
간성읍내를 사이에 두고 북천과 남천이 위아래를 흐르는데 그중 남천을 먼저 건넌다. 남천1교 다리 위에는 풍력발전기와 태양광전지로 켜지는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나름 조형미가 있다. 남천은 고성군 간성읍 흘리 마산봉(1,052m)에서 발원하여 죽왕면 향목리에서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남천의 하류 쪽으로는 사빈이 길게 형성되어 있고
상류 쪽으로는 평화로운 고성시내(간성읍)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천을 건넌 길은 직진하지 않고 좌측으로 돌아 지나온 다리 밑을 통과해 동호리 해변으로 나간다. 여기서 화살표를 보지 못해 한참을 직진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찬란한 태양이 만들어 낸 윤슬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동호리해변 북쪽으로는 해파랑길 48코스 종점이 있는 거진항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온다.
동호리 유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300여 년 전 당시 선조들이 마을을 개척할 때 갈대가 너무나 무성히 자라 있는 갈대밭이었기에 갈벌이라 칭하였다가 1880년대에는 신선이 놀다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선유리(仙遊里)로 개칭했으며, 1940년대 이후로 동쪽에 호수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호리(東湖里)로 다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해변 공원을 지나 소나무 숲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도 해당화가 피어있었다. 해당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5~7월에 꽃이 피고 9월에는 열매가 익는 식물이다. 그런데 올여름은 유난히 덮고 여름 날씨가 가을까지 이어지다 보니 아직도 꽃이 피어있는 것이다.
동호리해변의 소나무도 곰솔이다. 곰솔의 다른 이름은 ‘해송(海松)’이다. 자라는 곳이 바닷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감히 살아갈 엄두도 못 내는 모래사장이나 바닷물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에서도 지평선이 아련한 바다의 풍광을 즐기면서 거뜬히 삶을 이어간다. 파도가 포말(泡沫)이 되어 날아다니는 소금 물방울을 맞고도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은 곰솔이 아니면 다른 나무는 감히 넘볼 수도 없다. 곰솔은 수십 그루가 모여 자라면서 억센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 주고 농작물이 말라 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바닷가에 떼 지어 자라는 소나무는 틀림없이 곰솔이다. 그러나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본래 소나무의 생활터전인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가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 해송이라는 그의 별명이 무색해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옛 문헌에 나오는 해송은 지금의 곰솔이 아니라 잣나무라고 한다. 신라 때 당나라로 유학 간 학생들이 학비에 보태 쓸 요량으로 가져간 잣을 두고 중국인들은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의미로 ‘해송자(海松子)’라고 한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자태인가!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는 해송숲을 따라 늦가을의 따뜻한 햇볕을 음미하며 걷는다. 봄꽃의 산뜻한 향기도 좋지만 가을 솔숲의 고소한 향기도 일품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소나무 숲도 끝이 보이고, 동호리 들판 너머에 있는 북천을 향해 걷는 발걸음은 가볍다.
넓은 해안사구 끝에는 개천 뚝방을 따라 소형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오늘은 바람이 약해 날개가 돌지는 않았지만 알록달록하게 채색한 기둥과 그 옆의 작은 풍차모형은 돈키호테가 봐도 괴물로 보이지 않을 풍경이다.
북천에 도착했다. 북천은 간성읍 진부리 칠절봉(1,172m) 북동쪽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 교동천과 합류한 뒤 거진읍과 간성읍의 경계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간성읍 중심지의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간성북천이라고도 부르며, 그 남쪽에는 북천과 나란히 남천이 흐른다. 도로는 자전거길과 겸한 도보여행길인데, 포장을 한지 오래지 않은 길인지 키 낮은 가로수는 그늘을 만들지 못한다. 여름에는 고난의 길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봄에는 천변 기슭에 핀 봄꽃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을 것 같다.
강 건너 송죽리에 있는 동산 마산(48m)에는 절반은 침엽수가, 절반은 활엽수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쪽은 검푸른색이고, 한쪽은 누렇고 불그스레 한 색을 연출한다. 낙엽진 나무의 빛깔이 하얀 것을 보니 자작나무가 틀림없다.
마산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저곳에서 아주 용맹스러운 말이 태어났는데 그 말을 탈만한 사람이 없어서 결국 말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죽었다고 마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옛날에는 대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북천을 거슬러 올라 데크길로 리모델링된 북천철교를 건넌다. 북천 철교는 양양에서 원산까지 이어지는 옛 동해북부선의 철교로 지금은 평화 누리길이라는 이름으로 리모델링하여 보도교로 활용되고 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상류와 하류의 모습이다. 쾌청한 날씨에 하늘과 물과 바람이 동색이다.
동해북부선 북천철교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북천철교는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원산 - 양양 간 놓았던 동해북부선 철교로써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이 철교를 이용하여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시작하자 아군이 포사격으로 폭파해야만 했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철교를 건넌 길은 다시 동쪽 해안방향으로 걷는다. 남쪽의 길과 다르게 북쪽 길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작당한 크기의 벚나무 가로수가 있다. 봄이면 북쪽 천변은 벚꽃이, 남쪽 천변은 야생화가 가득한 아름다운 북천의 길을 상상해 본다.
북쪽 천변길이 끝난 곳엔 국토종주 동해안자전거길 인증대가 있고, '송강정철정(松江鄭澈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쉼터(정자)가 있는데 이곳이 송강 정철과 무슨 인연이 있나 싶어 검색해 봐도 찾아지지 않는다. 길 정면의 다리는 '마산해안교'인데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좌회전하여 마산(48m)을 오른쪽으로 끼고 반시계방향으로 돌아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티스토리 '옥토끼쉼터'에서 빌려 옴.)
오른쪽으로 마산의 멋스러운 해송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는 길을 지난다.
송죽리의 황금들판과 그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해송군락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해변으로 나가는 길목 밭에는 들깨를 수확한 낟가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비에 젖지 말라고, 새들이 훔쳐먹지 말라고 비닐을 씌워 놓은 모습이 마치 해파리 같다.
북천과 마산을 돌아 나온 길은 이제 송죽리 솔밭을 향해 간다.
이곳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모습이고 몇몇의 캠퍼들과 낚시꾼들이 넓은 송림과 해변을 독점하고 있었다.
해파랑길은 이곳에서도 해안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송림 뒤쪽 농로를 겸한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이는 해안사구를 따라 조성된 송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반암해변은 바람이 없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거친 파도가 으르렁거렸다. 해안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테트라포트는 밀려 나온 모래에 파묻혀 그 흔적만 보여줄 정도로 파도는 많은 모래를 해안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좋은 현상이다.
해파랑길은 잠시 반암리 마을길을 지나가는데, 길가에 '고성군 각자전수교육관'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무형문화재 제16호라는 '각자'는 나무에다 글자를 새기는 것을 말하며, 각자 작품은 인쇄를 목적으로 하는 목판(木版)과 목활자(木活字), 건물에 거는 편액(扁額)·시판(詩板) 등 현판류(縣板) 등이 주종을 이루며, 의걸이장과 책장 등 목가구에도 활용된다고 한다.
반암리 마을은 특이하게 마을 전체가 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민박마을이다.
오전 10시를 지난 반암해수욕장은 해변을 거닐며 산책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몇몇의 낚시꾼들만 한가로이 후리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길은 반암마을을 지나고, 해수욕장을 거쳐 반암항으로 이어진다. 깨끗하게 정비된 반암항은 작은 항구이지만 방파제 전체에 푸른색 계통의 다양한 벽화를 그려 놓았다. 푸른색이 파란 바다에 비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선착장 반대편에는 모래가 쌓여 모래해변을 이루고 있다.
항구에는 '반암항 복합낚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긴 방파제와 함께 항구의 북쪽에는 원형의 구조물을 설치하여 낚시터를 조성해 놓았다. 안전한 낚시터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낚시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늘에는 점이 되어 날으는 갈매기 몇, 그리고 물속 숨은바위가 만들어내는 포말, 바다와 하늘은 서로를 투영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낚시터에서 바라본 거진항은 어느새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와 있었고, 불현듯 누군가 저곳에서 나를 기다릴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복합낚시공원을 홍보하기 위함인지 명태의 주산지임을 알리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화장실도 물고기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반암항을 떠난 길은 거진항으로 가기 위해 송포리 해오름해변길을 거침없이 걷는다. 이 길은 거진랜드마크공원에서 거진항까지 이어지는 길인데, 인도를 따로 조성해 놓았으나 좁은 인도 가운데 소나무 가로수를 심어 놓아 걷는데 불편함이 따른다. 그래서 차도를 따라 걸어간다.
거진1교를 통해 건봉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송강저수지에서 머물다 송강리와 자산리를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자산천을 건너면 송포리에서 거진리로 넘어간다. 거진리는 약 500여 년 전에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클 '거(巨)'자와 같은 형국이며 거부장자(巨富長者)가 불어날 것이라고 하였기에 거진리(巨津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 수외리(현 거진10, 11리) 앞에 있는 자산천이 바다와 멀지 않은 곳에서 양분(兩分)되어 이 부락 앞에서부터 해안 안쪽에 있는 원래의 국도 옆을 따라서 거진1리 선착장까지 약 1,000m를 길게 돌아서 우회해 흘렀기에 수회리(水廻里)라고도 불렀다. 두 갈래였던 자산천을 곧바로 바다로 흐르게 고친 후로는 넓은 하천부지와 해안매립 부지를 택지로 조성하여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거진1교를 건너면 '명태웰빙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농수산물 판매장과 카페, 명태요리 체험장, 민박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거진읍내 초입에 위치한 거진11리해변은 500여 미터의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변에는 예쁜 포토존 등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명태의 주산지라는 것이 실감 나는 대형벽화다.
명태를 소개하는 재미있는 벽화도 있다. '새끼 때는 노가리', '갓 잡혔을 땐 생태', '생태를 얼리면 동태', '생태를 반쯤 말리면 코다리', '추운 겨울에 얼었다 녹였다를 반복하면 황태', '바짝 말리면 북어'다.
1996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거진항은 동방파제와 서방파제로 둘러싸여 선박의 피항지로 적합하며, 500t급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고 한다. 명태가 많이 출하되기로 유명한 항구로, 전국의 명태 어획량 중 60% 이상이 이곳에서 출하된다. 명태 덕분에 1980년대만 해도 '거진항에는 거지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촌을 이루었으며, 1970년대에는 주변 인구가 2만 5,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남한의 최북단 어항인 대진항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져 있다.
거진항은 일제감점기에는 부산과 원산을 오가는 배가 중간에 쉬는 곳이었고, 동해 북부선 거진역도 있어서 물류의 중심지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인구의 급속한 팽창으로 거진리를 거진 1리부터 거진 11리까지 분할했지만 지금은 여느 항구와 같이 어업의 쇠퇴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거진항 수산물판매장에는 홍게를 비롯하여 문어와 오징어, 멍게, 생선회 등을 팔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이라 그런지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등대언덕 아래에 있는 소공원에는 거진항의 역사를 표현해 놓은 조형물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다시 시작되는 길을 보면서 48코스를 마무리한다.
해파랑길 49코스는 고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걷기 코스이다. 산과 호수, 바다를 감상하며 걷기 때문에 지리적, 역사적 특성을 골고루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거진항에서 계단을 오르면 해맞이 명소인 거진 해맞이봉과 산림욕장이 나오고 이곳에서부터는 아름다운 화진포의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응봉을 지나, 김일성 별장에 이르기까지는 긴 길이 푸르른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솔향기를 맡으며 힐링할 수 있는 길이다. 산아래로 내려가면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아름다운 석호, 화진포가 기다리고 있고, 에메랄드빛 물색이 아름다운 화진해변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성게로 유명한 초도항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고, 이어서 나타난 초도해수욕장은 황금빛 백사장이 일품이다. 높은 등대와 해상공원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최북단의 어항인 대진항을 지나면 남북화해의 상징인 금강산콘도가 나오고 활처럼 휜 마차진해변을 지나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가 있다.
거진항을 뒤로하고 등대길을 오른다.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해맞이봉까지 잠깐 올라가는 길이다.
언덕을 오르는 계단 옆에는 '거진미항'을 표현한 거대한 벽화가 타일로 모자이크 되어 있다.
계단길을 시작하자마자 멋진 소나무와 예쁜 포토존은 쉬어 가라고 발걸음을 붙잡는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햇살품은 항구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노르스름한 가을 햇살에 빛나는 소나무는 언덕 아래로 멋진 가지를 늘어뜨려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렸다.
사괴석(四塊石) 깔린 길을 걷노라니 회색 블록 위에 우수수 떨어진 노란 낙엽이 가을임을 실감 나게 해 준다.
거진등대는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잠가놓고 개방을 하지 않고 있어 울타리 사이로 살짝 눈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언덕을 올라서니 만경창파(萬頃蒼波) 동해의 푸른 바다가 가슴을 뛰게 한다.
강원도 명품길 안내판을 지나 능산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오른쪽으로는 바다를, 왼쪽으로는 강원도의 내륙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길 아래 계곡사이로 제법 큰 규모의 거진읍이 눈에 들어온다.
해맞이봉 전망대 전후로 돌로 조각한 작품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안내석에는 000 연구원이라 음각되어 있다. 산림청 산하 연구원들이 직접 제작한 것이라면 수준급의 실력이다.
능선을 따라 잠시 걷던 길은 완만한 계곡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판석을 깔아 넓게 조성한 길이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다가 그 소리에 취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또 취한다.
해파랑길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이어진다. 우측은 군부대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리본을 보지 못하고 직진을 해서 또 한참을 갔다가 되돌아왔다. 해파랑길은 좌측 분묘 쪽 능선을 타야 한다.
해파랑길을 개발하면서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시간적 여유가 있는 개인이 만들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오며 가며 하나씩 돌을 얹어서 무운을 빌다 보니 자연스레 그 숫자가 많아졌는지 모르지만 길을 따라 작은 돌탑들이 무수히 많은 길이다. 여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길을 따라가면서 계속 보게 된다.
거진리 해변을 한 바퀴 돌아 산을 넘어 화진포로 이어지는 '거탄진로' 길을 횡단하는 '화진포해맞이교'를 건넌다. 거탄진은 거진의 옛 이름이다.
사색과 명상을 동반하는 걷기는 나의 몸과 마음을 충만함으로 채우고, 이질적이고 부담을 주는 것을 떨쳐버리게 하며, 떠오르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며, 내 안의 본질적인 것 들을 하나로 묶는다. 이런 길을 자주 천천히 걷다 보면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길의 폭이 너무 넓어져 삼림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로프를 쳐서 길을 안내하고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걸으니 응봉(122m)이 나왔다. 지도를 보면 산길로 가지 않고 해변도로를 따라 걸어도 멋진 풍광이 많이 있을 것 같아 왜 굳이 산길로 안내하는지 궁금했는데 응봉을 마주하고 바로 알아차렸다. 말이 필요 없는 풍광이다.
1971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화진포는 국내 최대의 석호로서 중평천(仲坪川)과 월안천(月安川) 등이 호수로 흘러들어 담수호를 이룬다.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여 많은 별장이 건설되었고 휴양지가 되었다. 특히 광복 후에는 김일성이 별장을 지었고 한국전쟁 후에는 이승만과 이기붕 등이 별장을 지었다. 거대한 8자 모양의 호수는 그 둘레가 16km에 이르는데 8자 모양의 북쪽을 북호, 남쪽을 남호라고 부른다. 북호와 동해가 만나는 지점이 회진포해수욕장이다.
응봉에서 내려온 길은 작은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해맞이봉에서 응봉까지 가는 길은 바람이 많이 부는 능선이라 그런지 비교적 키 작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고도가 낮아질수록 아름드리 소나무숲이다. 천천히 걸으며 산림욕 하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김일성 별장을 향해기는 길에 실질적인 군사용 철책을 목격한다. 지금까지는 안보교육용으로 남겨진 철책은 많이 보아왔으나, 군사용 철책은 처음 마주한다. 북쪽으로 많이 올라왔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이 별장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로 강제 이주시킬 때, 당시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가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에게 의뢰하여 1938년 이곳에 건립하였으나, 6.25 전쟁 중 건물이 훼손되어 2005년 3월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축 당시 회색돌로 지어진 건물이 해안 절벽 위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하고 유럽의 성을 재현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렸으며,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 일가가 이곳을 휴양지로 이용하면서 지금은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건물 내부에는 한국전쟁과 북한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약 1km 거리에 있는 이승만 별장·이기붕 별장과 함께 역사 안보 전시관을 이루고 있다.
하트 속으로 멀리 금구도가 동해바다를 지키고 있다. 화진포 쪽에서 바라보면 섬의 형상이 거북이와 같이 보여 금구도(金龜島)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출처가 불분명한 연대기에는 394년(광개토대왕 3년)에 화진포의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왕릉 축조를 시작했으며, 414년(장수왕 2년)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광개토대왕릉이 금구도에 있다는 설이 제기되었으나,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는 유사 역사학자의 출처가 불분명한 유사 역사자료에 의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적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한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화진포다. 경포호나 영랑호처럼 둘레길이 만들어진다면 많은 인기를 끌만한 호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둘레만 16km이므로 해파랑길을 한 코스 더 늘려야 할 것이다.
수변을 따라 갈대를 비롯한 해당화, 아까시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화진포길'은 역광을 받아 하얗게 흔들리는 갈대도 아름답지만 봄이면 각종 야생화와 벚꽃으로 가득한 호반의 아름다움이 더 황홀할 것 같다.
경사가 아주 완만하고 깨끗한 모래밭은 김일성 별장에서 초도항까지 길게 이어져 있고, 투명한 맑은 물은 멀리서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호수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을 건너는 금구교를 통해 북쪽의 해수욕장으로 건너간다. 이 기수역을 기준으로 거진읍 화진포리에서 현내면 초도리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북쪽의 해변은 현내면 번영회가 운영하고 남쪽은 거진읍 번영회가 나누어 운영한다고 한다.
금구교를 건넌 길은 우회전하여 해변으로 나아간다. 드넓은 광장 좌측엔 화진포해양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해변엔 다양한 조형물들이 여행자를 심심치 않게 해 준다.
해파랑길은 이제 화진포해수욕장을 뒤로하고 빨간등대가 아름다운 초도항으로 가는 '초도항길'을 따라간다.
초도항은 성게 마을로도 불리기 때문에 초도항 입구 마을 안내판도 성게 모양이다.
항구에는 성게 주산지 답게 다양한 성게 모형들을 설치해두고 있었다. 빨간 등대 너머로 보이는 금구도 주변에서 성게를 키운다고 한다. 성게 제철은 산란하기 전인 5월에서 6월까지 인데, 6월 초에는 성게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초도해수욕장은 조개가 많이 살고 있는 해변이다. 물속에 들어가 발바닥으로 모래를 비비다 보면 모래 속의 조개가 발에 걸리는데, 그러면 물속으로 손을 넣어 건져 올리는 것이다.
초도항길을 걸어서 초도항을 지나고 초도해수욕장도 지났다. 길은 어느새 대진항길로 바뀌어 있었다.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대진등대는 동해 최북단에서 선박들의 길잡이를 해주며 늠름하게 서 있다.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된 대진항 해상공원은 바다쪽으로 사람이 걸을 수 있도록 바닥에 그레이팅을 깔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자연과 인공 구조물이 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대진항은 처음엔 대범미진이라 불렀고, 그 후 安씨와 金씨가 개척하였다고 해서 안금리(安金里)라고 칭하다가 고려시대에는 여산현(驪山縣), 그 후에는 열산현(烈山縣)에 속해 황금리(皇琴里 황구리)라고 불러왔고,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는 한나루(大津里)라고 개칭하였다. 그 후 동해안을 따라 확장되는 신작로가 개설되고 1920년에는 고성군 현내면 소재리로 승격하였으며, 한나루(포구)에 축항을 쌓아 명실공히 조그마한 어항으로 축조되었고, 1925년부터 동해 북부선 철도공사가 시작되어 1935년에 개통을 보게 됨으로써 어항을 모체로 풍부한 수산자원(청어, 정어리)과 농산물을 원산으로 수송케 됨으로써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대진등대는 군사시설로 통제받는 곳인지 접근이 불가하여 멀리 떨어져 지나가기만 하였다.
대진 등대에서 언덕을 내려가면 대진 1리 해수욕장이다. 멀리 금강산 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도 수심이 깊지 않고 물이 깨끗해 해수욕하기 좋은 곳이다. 하기야 강원도의 해수욕장이 깨끗하지 않은 곳이 있기는 한 것인가 마는...
대진리에서 마차진로 넘어가는 경계지점에는 속초를 오가는 1번 버스 종점이 있다. 여기서 금강산콘도 뒤에 있는 마차진 해수욕장을 지나고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까지 갔다가 다시 여기까지 되돌아 나와야 버스를 탈 수 있다.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어 금강산 관광이 처음 시작될 때에는 동해시에서 배를 타고 금강산으로 가던 것을 2003년 2월부터는 금강산 육로 관광을 시작했는데 육로 관광을 위한 집결지가 바로 금강산 콘도였다. 2008년 북한군에 의한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2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금강산에 다녀왔다고 한다.
마차진해수욕장 혹은 무송정해수욕장이라 불리는 작은 사빈의 한가운데에 밤톨처럼 생긴 무송정이라는 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섬에는 소나무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소나무의 짙은 녹색이 사빈의 흰색 그리고 바다의 청색과 대조를 이룬다. 이 섬은 만조 시에 물이 들면 모래해안으로부터 분리되지만 간조 시에는 모래톱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육계도이다. 무송정의 이와 같은 지형적 특성은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와 있는데, 당시는 무송대로 불렸다고 한다. 섬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무송'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을 것 같은데, 사실은 조선 세조 때 무송부원군 윤자운이 사절을 받들어 관동지방에 왔다가 이 섬의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이제 목표지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회도 시행착오도 격었지만 길은 어느새 목표지점에 가까이 온 것이다. 목표지점을 향해 곧장 가는 지름길은 없다. 걷다 보면 쉽게 통과할 수 없는 덤불이나 장애물도 있고, 구불구불하고, 오르고 내리는 험난한 길도 있다. 목표를 향해 걷는 도보여행의 길과 삶의 길은 굽이굽이 굴곡진 길과 우회로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해파랑길은 이제 우리나라 최북단 마지막 해변도 지나고 통일전망대를 가기 위한 출입신고소에 도착한다.
인적 없는 늦은 오후의 출입신고소는 스산하다. 해는 어느새 뒷산으로 넘어갔고, 빛바랜 은행나무는 DMZ라는 글자가 가져다주는 적막함에 쓸쓸함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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