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일
해파랑길 46코스(14.7km)
장사항 ←6.2km→ 청간정 ←3.8km→ 천학정 ←2.2km→ 백도항 ←2.5km→ 삼포해변
해파랑길 47코스(9.7km)
삼포해변 ←3.2km→ 송지호 철새관망타워 ←2.4km→ 왕곡한옥마을 ←4.1km→ 가진항
걸은거리 27.08km
걸은시간 07:37~14:38, 7시간 1분 소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다니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1시간 이내의 거리는 별 문제가 없는데 1시간 30분이 넘어가면 왕복 3시간 운전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발생하는 비용도 많아지는 것이다. 오늘은 1시간 30분 거리의 장사항에 차를 세워두고 46코스와 47코스를 걸을 요량으로 아침 일찍 나섰다. 5시 20분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챙겨 먹고 6시에 집을 나선다. 새벽 여명에 날은 밝았지만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일출을 볼 수 있으면 잠시 휴게소에 들러서 사진을 찍으려고 바다 쪽으로 보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일출은 힘들 것 같다. 강릉을 지나 하조대 부근을 지나는데 구름 위로 강렬한 햇빛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다. 한참을 달려 고속도로가 끝이 나는 속초 톨게이트 가까이 다가가니 설악산의 험준한 산맥이 펼쳐지고 곧이어 울산바위가 그 장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나의 애마는 속초시 외곽을 둘러 나와 장사항에 도착했다.
해파랑길 46코스는 속초의 끝마을인 장사항에서 출발해 켄싱턴해변, 봉포항과 천진해변을 지나 아야진항과 교암리, 백도해변을 거쳐 삼포해변에 이르는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해안길이다. 해변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소나무 숲과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기암괴석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장사항은 오징어축제로 유명한 항구다. 매년 여름이면 오징어 맨손 잡기 축제를 여는데, 수심이 얕은 바다에 들어가 맨손으로 오징어를 잡는다고 한다. 장사항을 벗어나면 동해안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한 고성군에 진입하게 된다. 멋진 포토존이 있는 켄싱턴해변을 지나 봉포항과 멋진 펜션들이 즐비한 봉포해변, 천진해변을 지나 청간정을 만나게 된다. 청간정은 관동 8경에 속하는 풍경이니만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정자에서 바다를 감상해도 좋다. 낚시 데크와 항구가 아름다운 아야진항을 지나면 물빛이 맑은 아야진 해변이다. 아야진 해변부터는 개발되지 않은 전형적인 바다마을의 풍경과 해변이 이어진다. 천학정을 지나 문암항에 들어서면 거대한 기암괴석인 능파대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처럼 바위를 넘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이 장관이다. 바닷가 오토캠핑장으로 유명한 백도해변을 지나 자작도 해변을 거쳐 마지막 지점인 삼포해변에 도착하게 된다. 삼포해변은 여름이면 해변을 붉게 수놓는 해당화와 울창한 소나무 숲의 빼어난 경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고 한다.
장사항의 아침은 고요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여행객이나 낚시꾼들로 분빌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조용하다. 거리에도 해변에도 인적이 드물다. 거리에는 펜션들이 즐비하지만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어제 밤늦게까지 즐긴 여행객들이 아침 단잠에 푹 빠진 모양이다. 해파랑길 46코스는 처음부터 해변을 따라 걷지는 않고 해파랑길 안내판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 우회전하여 속초시 중앙로를 따라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로엔 오가는 자동차도 드물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가로수만이 보도여행자를 반겨준다.
오르막을 걸어가는 길 우측 동산에는 해양경찰 충혼탑이 있다. 속초 해양경찰서 소속으로 임무 중 배가 침몰하여 순직한 해양경찰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낮은 언덕길을 넘어서면 드디어 속초시에서 강원도의 최북단 고성군으로 들어간다.
중앙로를 따라가던 길은 오른쪽으로 돌아 나와 잠시 동해바다에게 눈인사를 한다.
이른 아침의 용촌리 해변은 발자국만 무성하고 인걸은 간데없다. 멀리 봉포항 앞바다의 죽도(竹島)만이 외롭게 바다를 지키고 있다. 이정표에 '속초카페거리'가 있어서 돌아보니 두세 채의 카페건물만이 눈에 띈다. 카페거리라 이름 붙이기엔 민망스럽다. 아마 향후를 내다보고 이름 붙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잠시 바다에게 인사만 하고 나온 길은 까리따스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시설을 지나 다시 중앙로와 만난다.
중앙로를 따라가던 길은 용촌교를 통해 용촌천을 건넌다. 울산 바위 아래 미시령 계곡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빠져나가는 용촌천 상류 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울산바위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하구 쪽으로는 해안사구가 잘 발달해 있는 것이 보인다.
계속해서 중앙로를 따라가던 길을 용촌교차로를 만나 우회전하여 켄싱턴해변으로 향한다.
켄싱턴해변에도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래해변에 접해 있는 널따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조사(釣士)들만 몇, 세월을 낚고 있다.
켄싱턴해변은 토성면 봉포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고 긴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에 수심이 낮아 콘도미니엄 이용자들과 일반 피서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 인 곳이다. 켄싱턴해변에 위치한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는 설악과 동해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지난 20년 이상 국내 핵심관광지역에 회원제 콘도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켄싱턴리조트는 다양한 국내 체인망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각 체인이 산, 강, 해변, 섬, 온천지구 등 천혜의 입지조건과 유명관광지에 위치하고 있어 그 명성이 매우 높은 휴양 콘도미니어이다.
해변 백사장을 따라 길게 산책로를 깔아놓아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불곰들은 누구를 맞이하기 위해 이렇게 줄지어 서 있는지...
봉포항이 가까워지자 해안에는 무수히 많은 낚싯대가 모래밭에 꽂혀 있는데 사람은 몇 보이지 않는다. 아마 혼자서 여러 대의 낚싯대를 운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문득 사람의 욕심에 한이 없다고 느껴져 씁쓸해진다.
이렇게 북쪽의 작은 항구에도 고층건물 건설이 한창이다. 옛날에는 무척이나 오지였을 이곳이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수도권의 많은 인파가 사시사철 찾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봉포항의 아침은 바쁘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활기찬 아침이다. 이른 새벽 조업을 나갔던 배들이 돌아오고 그물을 걸린 양미리를 빼내고 그물을 손질하는 손놀림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어획량은 초라해 보인다. 예전의 강원도 항구는 명태며 오징어, 양미리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었다고 하는데, 남획과 더불어 수온상승으로 지금은 한창때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항구 방파제의 테트라포트와 벽엔 일일이 타일을 붙여 모자이크로 예쁜 그림을 수놓았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관광객유치를 위해서는 하나라도 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아담한 봉포해수욕장도 고즈넉한 분위기다. 밀려오는 파도만이 하얗게 포말을 일으켜 황금빛 해변으로 분주히 밀려오고 있다
봉포항을 뒤로하고 토성로를 통해 잠시 봉포리마을길을 걷는다. 봉포리는 토성면사무소 소재지라 그런지 고층아파트 건설과 더불어 많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고 인근엔 대학교도 있다. 그렇다 보니 시골마을인데도 불구하고 거리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봉포리 마을길을 잠시 걷다가 우회전하여 해변으로 다시 나왔다. 천진해수욕장이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천진해변도 무척이나 깨끗하고 낭만적이다.
천진항은 아주 작은 항구인데 짧은 방파제에 어선은 한 척도 보이지 않고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대여하고 강습을 하는 업소만 보인다. '봉포 머구리집'이라는 간판을 걸어둔 횟집이 보이는데 머구리는 잠수부, 즉 잠수 어업종사자를 일컫는 말로 어원은 같은 뜻의 일본어 단어 모구리(潜り)에서 유래했다. 제주에서는 해녀와 별개로 잠수를 전업으로 하는 남성 잠수부를 머구리라고 불렀다. 보통 해녀가 무호흡 잠수를 하는데 반해, 머구리는 공기호스를 갖추고 작업을 하므로 해녀에 비해 보다 오랜 시간 동안 더 깊은 심도까지 잠수하여 작업할 수 있으며 일반 스쿠버다이버 보다도 깊은 깊이로 오랫동안 잠수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녀가 접근하지 못하는 지역의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배의 밑부분을 수리하는 등의 일을 한다.
이 해변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천진항을 지나 멀리 청간정이 건너다 보이는 해변인데 지도에도 이름이 없다. 이곳은 여느 해변 못지않게 깨끗하고 훌륭하지만 해변 배후가 농지여서 그런지 개발이 되지 않은 것 같다. 펜션과 카페가 줄지어선 화려한 거리의 해변도 좋지만 건물하나 없는 이런 고즈넉한 해변이 보도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색의 장이 되어 준다.
창간정으로 가는 길은 자전거 도로를 겸한 데크길이다. 이 길은 천간천을 따라 천변에 설치했는데 천간천은 고성군 토성면 신선봉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동쪽으로 휘어져 동해바다로 빠져나간다. 강하구에는 드넓은 삼각주가 형성되어 농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청간천 상류를 200여 미터 거슬러 올라가다 보도교를 건너면 '청간정자료전시관'이 나온다.
전시관 내부에는 청간정과 관련된 시와 글, 그림, 역사에 관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청간정은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작은 구릉 위에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있다. 먼 길 돌아온 바람도 쉬어갈 수 있는 아늑함이 있고 맑고 푸른 동해안의 명승이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1560년(명종 15년) 중수기록이 있다고 하니 창건 연대는 이보다 빠르겠지만 기록에는 없다. 그 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쳤고 비바람과 화재를 겪으며 10여 개의 돌기둥만 남아 있던 것을 1928년 토성면장의 발기로 지름의 자리로 옮겨 중수하였다. 1971년 12월 16일 자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정자를 보려면 데크길 옆으로 난 별도의 산길을 걸어야 하지만 데크길을 따라가도 되는 줄 알고 가다 보니 정자 아래 해변으로 우회하고 있었다. 다시 되돌아가자니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정간정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군부대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나가자 멀리 아야진항의 긴 방파제와 하얀등대, 빨간등대가 보인다. 아야진도 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지 고층건물이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양양이 서핑의 천국이라면 속초와 고성은 스쿠버다이빙의 천국인 듯하다. 가는 곳마다 다이빙장비를 대여하고 입수 서비스를 하는 가게들이 있다.
철 지난 천간해변은 인적은 간데없고 배부른 갈매기들만 느긋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름도 예쁜 아야진항에 도착했다. 방파제에는 고래가 춤을 추고 있고, 포구에는 마치 절집을 지키는 사천왕 같은 등대가 포구를 드나드는 배를 감시하고 있다. 해변의 넓은 암반과 몽돌 같은 바위들은 옹기종가 모여 정겨움을 더해준다.
휴일 오전의 아야진은 차분하다. 조업을 나간 어선이 몇 척 되지 않는지 항구는 고만고만한 어선들로 복잡하고 어부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아직 조업철이 아닌지, 아니면 아침 일찍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아야진항은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포구에 들어서면 항구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도에서 평면으로 보면 하트모양인데 하트의 봉우리처럼 항구가 두 군데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아야진은 원래 ‘대야진’이라고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큰 대’ 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 아야진으로 바뀌었다는 유래가 있다. 바위에 파도가 부딪칠 때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아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항구 배후에는 활어 회센터가 있다. 여기 역시 아침은 지났고 점심때는 멀어서 그런지 손님 없이 한산하다.
아야진 해변으로 가는 길은 도로와 인도의 경계석을 무지개색으로 칠해 해변의 아름다움들 더해주고 해변 뒤쪽 구릉의 울창한 숲은 해변을 포근하게 감사 주고 있다.
아야진해수욕장은 경관이 수려하고, 크고 작은 바위와 맑은 바다, 깨끗한 백사장이 일품이다. 여기는 군사지역이 가까이 있어 매년 군부대와의 협의로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해수욕장이 끝이난 지점에는 넓은 암반지대가 있는데 조금은 울툴불퉁하지만 평평한 암반이 넓게 분포되어 있어 포토존으로 한몫한다. 최근에 설치한 듯, 커다란 거북이상이 지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세찬 비바람과 파도에 마모되고 이끼가 끼어 세월의 흔적이 쌓이면 이곳의 명물이 될 듯하다
아야진을 떠난 해파랑길은 천학정을 만나기 위해 잠시 해변을 벗어나 7번 국도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길은 7번 국도를 따라가지는 않고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 도보교를 건너 오른쪽 실개천을 따라간다.
실개천을 따라가던 길은 다시 해변을 걷는다. 해변 끝에는 천학정이 숨어있는 작은 산과 교암항이 보인다.
교암항은 부끄러운 듯 천학정 기암 뒤로 숨었고, 두 등대만이 빼꼼히 인사한다.
해변길을 걷던 길은 해변 끝에서 좌측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산길로 접어든다. 작은 동산을 넘으면 천학정이다.
천학정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지방유지 한치응, 최순문, 김성운 등이 뜻을 모아 건립했다.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위에 건립되어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며,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 바라보고 북쪽으로는 능파대가 가까이 있어 한층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일시에 사라지고 드넓은 동해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천학정에서 바라본 남쪽해안은 은빛 윤슬로 찬란하다.
천학정 정자 아래 해안 바위에 위치한 거대한 갯바위 속에는 네 가지 형상의 모양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들어 있다. 모자 쓴 불상, 코끼리 얼굴, 손, 고래, 기도하는 얼굴 등으로 인해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만들어져 전해지고 있다. 코끼리 얼굴 뒤 모자 쓴 불상은 마치 코끼리를 탄 것을 뜻하고, 갯바위 앞바닥의 큰손은 불상을 향해 간절히 기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 역시 불심 깊은 불자를 뜻한다고 한다. 갯바위 뒤로 고래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 또한 불교와 연관이 있다고 전해진다
교암항은 위판장도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항구다. 몇 척의 어선이 낚싯배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교암항과 문암항 사이에 있는 교암리해수욕장도 훌륭한 해변이다. 점점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개발이 잘 된 대형 해수욕장보다는 이런 중소규모의 아담한 해변들이 이어진다. 개발이 덜된 만큼 화장실이나 샤워실 등의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조용히 걷기에 좋은 해변이다.
문암항엔 아주 많은 다이버들이 물속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스쿠버다이빙의 천국이다.
문암해변을 지나면서 능파대를 놓치고 말았다. 표지판이 부실했는지 보질 못했는지... 아마 문암대교가 빨리오라고 손짓을 해서 마음이 급했나 보다.
문암대교를 통해서 문암천을 건넌다. 문암대교 명판 위에는 고성군의 상징새인 괭이갈매기를 새겨 놓았다. 문암천은 설악산 북쪽의 마산(1,052m) 동쪽에서 발원하여 도원 저수지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간다.
다리를 건너다 강 상류를 바라보자니 우뚝한 운봉산(284.9m)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문암대교를 건너 백도해변길을 따라 걷는데 규모가 제법 큰 시설 좋은 오토캠핑장이 있었다. 그렇지만 철이 지나서 그런지 외진 곳이라 그런지 캠핑객은 별로 없었다.
해변 입구에는 대형 하트와 함께 포옹하는 연인상을 철골로 만들어 놓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조형물도 있었다.
백도항 가는 길에 뒤 돌아본 백도해수욕장. 해변 송림 뒤로 설악산 울산바위가 가물가물하다.
백도항은 방파제와 등대가 마을을 감싸듯 아늑하게 항구를 품고 있는 모습이 백도항만의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눈앞에 있는 듯 가까운 등대 옆으로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어오고, 항구에 정박된 작은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드럽게 일렁이는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항구 인근에 갈매기 똥으로 뒤덮인 두 개의 하얀 바위섬이 있어 백도항이라 부른다.
길은 이제 백도항을 뒤로하고 문암 1리 마을길을 걷는다.
문암 1리 경로당을 지나 마을 끝으로 나오면 넓은 지역에 걸쳐 유적지로 지정된 '고성 문암리 유적지'가 있다. 초기 철기 시대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 사적지로 관리되고 있는 공간이다.
문암리 유적지를 지나 자작도해변으로 들어선다. 1991년 7월에 개장된 자작도해수욕장은 초승달 모양의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희고 고운 모래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변에서 바라보이는 두 개의 섬은 백도와 소백도인데 그 앞으로 자작자작 이어진 바위들을 자작도라고 하고 그 이름을 딴 해변이다. 해수욕장 좌우에 발달한 기암괴석의 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강한 파도에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암석들이 다양한 형태로 흩뿌려진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길은 이제 자작도해수욕장을 지나 해파랑길 46코스 종점이자 47코스의 시작점인 삼포해변으로 넘어간다. 삼포해변으로 가는 길은 황량한 벌판 같은 길이다. 겨울에 눈이 내렸을 때 걸으면 더욱 그럴 것 같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을 목청껏 부르면서 간다.
자작교를 건너 삼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변의 소나무는 심은지 오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계속 조림을 하고 10년 20년 30년을 지나면서 강릉해변 못지않은 솔밭으로 성장하길 기원하면서 해파랑길 46코스를 마무리한다.
해파랑길 47코스는 삼포해변에서 가진항까지 걷는 코스다. 삼포해변을 시작으로 봉수대가 있는 봉수대해변, 오호항과 송지호해변을 지나 송지호, 왕곡마을, 공현진항을 거쳐 가진항에 이르는 9.7km 구간이다. 짧은 코스이기 때문에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볼거리도 많고 체험할 것이 많은 구간이다. 바닷고기와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하며 고니를 비롯한 겨울철새 도래지인 송지호가 있고, 송지호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걷다 보면 강릉 함씨, 강릉 최씨, 용궁 김씨 집성촌으로 14세기부터 형성된 고성 왕곡마을이 있는데, 한옥의 조화로움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스뭇개바위(옵바위)로 유명한 공현진 해변은 마치 태평양의 유명 휴양지에 와 있는 듯한 물빛을 자랑한다.
삼포해변은 갈 때는 막연히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걸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대형 리조트(오션투리조트)만 덩그러니 있을 뿐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철 지난 해변은 관리되지 않은 시설이 어수선하고, 인적 없는 해변은 쓸쓸하다. 강은철의 노래 '삼포 가는 길'과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에서 암시하는 서정적인 느낌이나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인적 없이 드넓은 해변은 황량함만 더해준다. 물론 두 작품이 실제 이곳을 모티브로 해서 탄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삼포'라는 명칭이 주는 알 듯 모를 듯한 어감이 주는 느낌으로 인해서 작품명에 들어갔을 것이다. 주변에 영업을 하는 식당이 보이지 않아 준비해 간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인적이 드문 삼포해변길을 다시 걷는다.
바다에는 넘실대는 파도를 막아선 낮고 커다란 바위가 엎드려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큰 파도가 이는 날에는 바위를 때리고 넘어오는 파도가 장관일 것 같다.(바위의 이름이 있을 것이나, 검색을 해도 알 수 없다.)
섭바위 좌측으로 오호항의 포구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방파제를 연장하는 것인지 대규모의 해상공사 현장이 보인다.
삼포해수욕장과 봉수대해수욕장 사이에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이어서 낮은 동산도 하나 버티고 서있다. 삼포해변길은 다리를 건너고 산을 우회해서 봉수대 해수욕장으로 넘어간다.
7번 국도와 봉수대해수욕장 사이를 지나가는 봉수대길 우측에는 대규모의 봉수대오토갬핑장이 있었으나 이곳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봉수대해변이라 명명한 것은 해변의 서쪽 300여 미터 지점 구릉에 봉수단이 있어서이다.
봉수대길은 죽왕면보건지소 앞에서 심층수길로 바뀌어 이어진다. 그동안 수많은 해변을 지나왔기에 특별할 것 없는 봉수대해수욕장을 보러 해변으로는 나가지 않고 송지호해변이 있는 오호리로 바로 넘어간다. '오호리'라는 지명은 마을 주변에 송지호, 금지호, 번개, 버덩개, 황포 등 다섯 개의 호수가 붙어 있어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 서낭바위로 유명한 오호항이 나오는데 사전 지식이 부족하여 항구너머에 있는 서낭바위를 친견하지 못했다.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사진은 다음카페 '바람따라구름처럼'님 방에서 빌려왔다.)
서낭바위는 송지호해변 남쪽의 화강암지대에 발달한 암석해안으로 화강암의 풍화미지형과 파도의 침식작용이 어우러져 매우 독특한 지형경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화강암층 사이로 두터운 규장질 암맥이 파고든(관입한) 형태를 이루어 독특한 경관을 형성한다. 서낭바위는 오호리 마을의 서낭당(성황당)이 위치하는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서낭바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금강산 향로봉에 살고 있던 용신은 아름다운 베필을 찾기 위해 동해 바다의 용왕을 만났다. 용왕은 용신에게 그의 막내딸을 아내로 삼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용신은 용왕에게 금강산의 녹음이 짙어 풍요로운 자태를 뽐내는 7월 7일 용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찾아오겠다고 했다. 마침내 혼인날 용신은 동해 바다에 이르렀다. 용왕의 딸은 용신을 남편으로 맞이하기 위해 용궁에서 나와 바다 위로 올라왔다. 용신을 맞으려던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태풍이 일어나 용녀를 덮쳤다. 용신은 주검이 된 용녀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살아서 끝내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한 용신과 용녀는 바위로 변해 영원토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이 바로 용신 서낭바위와 용녀 여심바위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서낭바위와 여심바위 꼭대기에는 각각 한 그루씩 소나무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 있다.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저 해안가 작은 산 뒤쪽에 서낭바위가 숨어있다.
오호항을 지나면 바로 넓고 긴 백사장을 자랑하는 송지호해수욕장을 만난다. 길이 2㎞, 폭 100여 미터에 달하는 해변은 물이 맑고 수심은 얕다. 해수욕장 앞바다에는 죽도(竹島)라는 바위섬이 있어 죽도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린다.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대형 해상크레인이 있어 방파제 축조공사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좌측의 르네블루바이워커힐호텔 - 소죽도 - 죽도를 잇는 다리를 연결하고 죽도에는 데크 산책길을 만드는 공사이다. 죽도는 산림청과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생태자연도 1등급 섬이라고 하는데 이런 곳에 다리를 건설하여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 궁금증을 낳게 한다. 바닷새들의 보금자리인 예쁜 섬에 인간이 접근하게 되면 그 새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데크길 위에서 버려질 각종 쓰레기들이며, 소음공해로 새들은 섬을 떠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송지호해수욕장도 대규모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죽왕면소재지를 지나고 해변이 'ㄱ'자로 꺾이는 지점에 있는 대형 숙박시설(르네블루워커힐호텔)을 지나면 이 길이 왜 '심층수길'인지를 알게 해주는 시설이 있다. 대교그룹의 해양심층수 전문기업 강원심층수공장이 바로 그것이다. 수심 200미터 이하를 표층수 그 보다 깊은 바다에 존재하는 물을 해양 심층수라고 하는데 고성 앞바다 605미터 수심에서 끌어올린 물을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재 해서 생산한다고 한다. 마그네슘, 칼륨 등의 미네랄이 풍부한 물로 '천년 동안'이라는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심층수공장을 지난 해파랑길은 데크길로 직진하지 않고 좌측의 송지호교 아래를 지나 송지호와 만난다.
송지호는 경포호, 영랑호와 같은 석호다. 고성군 죽왕면의 오호리, 인정리, 오봉리에 걸쳐 있다. 호수둘레는 약 6.5㎞이며,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1,500여 년 전 송지호 자리는 어느 구두쇠 영감의 문전옥답이었는데, 어느 날 노승이 시주를 청했으나 응하지 않자 화가 난 노승이 토지 중앙부에 쇠로 된 절구를 던지고 사라졌으며, 이 절구에서 물이 솟아 송지호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해파랑길은 경포호와 영랑호는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았지만 송지호는 한 바퀴 돌지는 않고 동쪽과 북쪽 호숫길을 걷다가 왕곡마을로 넘어간다.
호수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을 지난 수변길 초입에는 끊긴 철길이 그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이곳은 옛 동해북부선의 교각이 있던 자리 인근으로,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가 다시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송지호를 가로지르던 송지호 철교는 1950년까지 동해북부선 철도가 강원도 남북(양양 - 원산)을 오갈 때 지났던 길이다. 철교는 이제 다릿발만 남아 끊어진 철도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다. 일제가 자원 수탈의 목적으로 1937년 개통한 동해북부선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 분단이 굳어지면서 운행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남북을 잇고 대륙으로 뻗어나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 길을 열어야 한다는 우리의 꿈은 중단되지 않았다. 남북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9월 19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동해북부선 연결에 합의함으로써 그 꿈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2024년 10월 15일 북한은 동해북부선 북측지역의 선로와 도로를 폭파하였다는 뉴스가 있었다. 영원한 단절을 위한 폭파인듯하여 씁쓸한 기분이다. 언젠가 철도가 이어지고 도로가 연결되는 꿈이 이루어지길 염원해 본다.
철새를 관찰하는 새 전망대가 있으나 철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호수는 조용하다.
산소가 뿜뿜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산책길을 천천히 걷는다.
송지호 무장애 나눔길. 무장애 나눔길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걷기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도 숲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길이라고 한다. 약 1.8km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철새관망타워 입구에는 통일을 염월하는 구조물이 세워져 있고 가을 국화가 화사하게 피었다.
고요한 호수와 아름드리 소나무는 인간에게는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새들에게는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7번 국도 옆을 걷는 길이지만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가 많이 거슬리지는 않는다. 나무들이 보호막을 쳐 소음을 흡수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호수의 동쪽을 걸어서 북쪽 끝까지 간 해파랑길은 이제 좌회전하여 북쪽길을 걷다가 왕곡마을로 넘어간다.
왕곡마을로 넘어가는 길 초입에서 송지호를 뒤돌아 본다. 멀리 철새관망타워와 르네블루바이워커힐호텔이 가물가물하게 눈에 들어온다.
왕곡마을로 넘어가는 길 좌우측에는 넓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옥수수 생산을 위한 품종은 아닌 듯싶었다. 옥수수가 열린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소에게 먹이기 위한 사료용이 아닐까 추측된다.
송지호를 뒤로하고 완만한 언덕길을 넘어서니 낮은 산줄기가 아늑하게 마을을 보듬고 있는 왕곡마을이 나타난다.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이 적당히 섞여있는 운치 있는 마을이다.
고성 왕곡마을
고려 말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분인 양근 함씨(楊根咸氏) 함부열(咸傅烈)이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인근 간성 지역에 낙향하였고,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마을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현재는 19세기 전후에 걸쳐 지어진 기와집 및 초가집 50여 채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주요 성씨로는 양근함씨 및 강릉김씨(江陵金氏)가 있으며 이밖에 다양한 성씨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2000년 1월 7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왕곡마을은 주소지가 오봉리인데, 다섯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계곡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음산(五音山)을 주산으로, 두백산(頭伯山), 공모산(拱帽山), 순방산(脣防山), 제공산(濟孔山), 호근산(湖近山)의 5개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안에는 방문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고, 공터에 설치된 그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다룬 영화 '동주'의 촬영지인 정미소도 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어릴 적 시골 정미소모습 그대로인 것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으로 이루어진 민속마을답게 마을 안에는 전봇대가 보이지 않았다. 골목의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발갛게 대봉감이 익어가는 감나무가 한 그루씩은 있는 가을 정취 가득한 평화로운 마을이다. 왕곡 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거주 있으며, 일부 빈 주택은 군청에서 매립하여 민박 시설로 대여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하룻밤 유하고 싶은 마을이다.
어느 집 마당 앞에는 빨간 산수유가 핏빛으로 익고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동쪽 동구로 나오면 마을을 지키는 왕곡마을대장군과 여장군이 우뚝하니 서 있다.
왕곡마을을 둘러보고 나온 해파랑길은 이제 '송지호'로를 따라 7번 국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마을 동구에서 약 300여 미터를 지나면 '왕곡마을저잣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초가집으로 구성된 옛날 마을의 저잣거리를 재현해 놓고 각종 체험을 비롯해 강원도의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인데 일요일은 휴일이다.
저잣거리를 지난 길은 7번 국도와 합류하는 지점까지 송지호로를 따라 걷는다.
길가 소나무 아래에는 예쁜 구절초가 한창이다.
7번 국도를 따라 잠시 북쪽으로 걷던 해파랑길은 이내 길을 건너고 해변으로 나간다. 공현진1리해수욕장이다. 이 해수욕장 역시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입지조건이 좋은 편이다. 해수욕장의 관리는 마을 운영위원회에서 맡고 있다고 한다.
1999년 1월 1일 자로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공현진항은 대진항, 거진항, 아야진항과 함께 고성군의 국가 어항이다. 깨끗하게 지어진 위판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항구이다.
공현진항을 기준으로 남쪽이 공현진1리해변이고 이고 북쪽은 공현진2리해변이다. 그렇게 유명한 해변은 아니지만, 가진항 인근까지 활처럼 휘어진 모래 해변은 맑은 물에 수심도 깊지 않아 해수욕장으로서는 최상의 조건이다. 항구 건너편에 있는 수뭇개바위(옵바위)는 바위와 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일품인 곳으로 일출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드넓은 공현진2리해수욕장엔 갈매기들이 않아 쉬고 있었고 산책하는 연인의 모습도 보인다. 해변 끄트머리에는 오늘의 목적지인 가진항이 보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공현진 해수욕장을 빠져나온 해파랑길은 '가진해변길'을 따라 가진항을 향해 걷는다. 그런데 이곳은 자전거길도 도보길도 따로 없이 차도를 따라 걷는 길이다. 도로변에 여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지나는 차량을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공현진리에서 가진리로 넘어가는 길목엔 무지개색 경계석이 동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옛 동해북부선 터널은 을씨년스러운 표정으로 슬픔을 달래고 있었다. 이 길은 언제 열릴 것인지...
백사장과 기암이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큰 규모는 아니나 모래 위 바위 군락은 수석처럼 멋진 자태를 뽐낸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가진항에 도착했다. 더 북쪽에 있는 거진항과 이름이 비슷해서 혼동될 수 있다. 예부터 다른 어항보다 수산물이 많이 나서 주민생활에 덕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약 100여 년 전부터 속칭 덕포라 불렀으며 후에 작은 나루가 하나 더 생겨나자 가포진이라고 불렸는데 1914년 리명 개편 시 가진리로 고쳤다고 한다.
휴일의 가진항은 많은 여행객들이 찾았다. 횟집마다 손님들로 가득했다.
종점에 다다라 버스시간을 검색하니 가진항으로 들어오는 버스는 언제일지 모르고 1.4km를 걸어 가진교차로까지 이동하라고 안내된다. 가장 힘이 빠지는 순간이다. 해파랑길 진행방향인 가진리 마을을 지나 한참을 걸어서 가진교차로에 닿으니 곧바로 속초 1번 버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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