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3.토
해파랑길 16코스(19.0km)
흥환보건소 ←5.3km→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2.7km→ 도구해변 ←6.0km→ 포스코역사박물관 ←5.0km→ 송도해변
걸은거리 19.90km
소요시간 : 4시간 58분
05.02.금 13:57~16:12 (2시간 10분)
05.03.토 06:53~09:41 (2시간 48분)


해파랑길 16코스는 포항 남구 동해면 흥환리에서 송도동을 잇는 구간으로 흥환보건소에서 시작해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과 도구해변, 형산강변을 지나 송도해변에 이르는 길이다. 숲길과 해변, 세계적 철강회사 포스코를 지나는 코스로 산업시설과 동해가 조화를 이루는 구간이다.

14, 15코스를 이어서 걷고 나니 발바닥 상태가 좋지 못하다. 오후 2시.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16코스를 추가로 완주하기엔 무리일 것 같아 숙소를 예약해 둔 동해면 도구리까지 약 8km만 더 걷는다.

16코스를 이어가기 위해 조금 전 건너온 인도교까지 다시 가서 좌회전하여 흥환해수욕장 해변도로를 걷는다.

흥환간이해수욕장은 모래와 몽돌이 섞인 깨끗한 해변이다. 제법 긴 해변이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갈매기들만 중간중간에 모여 앉아 쉬고 있었다.

햇살은 부드럽게 내려앉고, 살랑이는 바람처럼 마음도 가벼운데, 물집이 잡히는 발바닥은 돌처럼 무겁다.

흥환해수욕장을 지나 호미반도 둘레길의 일부인 선바우길로 들어섰다. 약 6.5km의 이 길은 자연이 해안 절벽에 만들어 놓은 각종 기암괴석을 감상하여 걷는 길이다.

미인바위라 불리는 곳도 있고

중간에 작은 어항(마산항)도 있고


먹바우(검둥바우)도 있다.


거친 암석지대 해변을 걷기 좋은 데크길로 만들어 놓으니 배를 타고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절경을 느긋이 감상하며 지나간다.

흰 언덕이란 의미의 힌디기를 지나

데크길의 절경은 이어지고

손바닥바위도 있다.

흥환리, 마산리, 입암리를 거치며 걸어온 선바우길의 주인공인 선바우다. 선바우를 한자로 쓰면 입암(立巖)이고, 이 동네가 바로 '입암리'인 것이다.

입암 2리에서 입암 1리로 가는 해안길은 커다란 자연석을 이용해 방파제 겸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테트라포트나 콘크리트 방파제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다.

바다 건너편에는 그 규모를 가늠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넓게 철강단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입암 1리를 지난 해파랑길은 지방도 929번 호미로를 따라 잠시 걷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으로 들어간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설을 토대로 포항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잘 만들어져 있었다. 위치도 좋고 바다가 넓게 보이는 곳이다.

연오랑세오녀 설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 동해변에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조(海藻)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바위가 연오를 싣고 일본 땅으로 건너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 연오가 돌아오지 않자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 둔 신을 보고 그 바위에 오르니 바위가 또 세오를 일본으로 실어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이 사실을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일월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려 괴변이 생겼다고 하였다. 이에 국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이들 부부를 찾게 되었다.
연오는 그들의 이동은 하늘의 시킴임을 말하고 세오가 짠 세초(細綃)로 하늘에 제사하면 다시 일월이 밝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사자가 가지고 돌아온 그 비단을 모셔 놓고 제사를 드렸더니 해와 달이 옛날같이 다시 밝아졌다. 비단을 창고에 모셔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하였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전시관 귀비고는 포항 지역의 특화된 스토리텔링 문화공간을 지향하며, 장소의 역사성과 미학적 특성을 반영한 특별기획전, 문화예술 체험프로그램, 지역특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전시실 및 영상관, 교육·체험프로그램을 위한 라운지 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애니메이션, VR체험, 미디어체험 등 다양한 기법으로 연오랑세오녀를 만나볼 수 있는 관람객 중심의 전시관이다.
해파랑길은 공원 내 해변 쪽 길을 통해 공원을 가로지른다.

귀비고 아래쪽에는 '일월대'라는 큰 누각이 있는데 영일만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길가의 황금사철나무와 해당화는 공원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잠시 누각에 올라 영일만의 경치도 감상하고, 주인을 잘 못 만나 고생하고 있는 발도 주물러 주며 휴식을 취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일월대에서의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나서는 길에 솟대들이 작별 인사를 한다.

공원을 지나 임곡항으로 가는 소나무 숲길이다. 솔향을 맡으며 기분 좋게 걸어야 할 길이지만 누렇게 말라죽어가고 있는 나무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해변으로 나와 임곡항을 만나고 임곡 2리와 임곡 1리를 차례로 지난 해파랑길은 도구해변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임곡 1리 마을 끝자락에서 시작하는 모래 해변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펼쳐져 있다.


임곡마을길 끝에서 인도교를 통해 작은 실개천을 건너고 동해안로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잠시 걷고 나서 오늘 갈길을 종료했다.

14, 15코스에 이어 16코스 일부까지 36km 넘게 걷고 나니 시간은 있는데 발바닥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부득이 걷기를 종료하고 어제 묵었던 동해면 도구리의 해모름모텔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피로가 조금 풀린다. 쉬다가 인근의 감자탕집에서 해장국에 막걸리 한잔을 하고 들어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6시 50분. 어제 걷기를 종료했던 곳에서 오늘 갈길을 시작한다. 16코스를 마무리하고 이어서 17코스를 걸을 생각인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예보상으로는 낮 한때 0.5mm 정도여서 큰 걱정은 없으나 비옷을 준비해 오지 않아서 염려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도구해변 주차장엔 어젯밤 야영을 한 캠핑차량들이 몇 대 보이고 인적은 없다. 잔잔한 바다는 밤새 묶은 해초를 모래밭에 토해내고는 모른 척 저만치 물러나 있다.


긴 해변 끝으로 삭막한 느낌의 철강단지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오늘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해변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해풍을 이겨내느라 애쓴 소나무는 비스듬히 누워 여행자를 응원한다.

길동무가 있다면 잠시 앉아 막걸리 한잔 하며 쉬어 가고 싶은 운치 있는 그늘막이다.

해변 모래 위 데크길을 걷다가 모래언덕 위에 조성된 산책길을 걷기를 반복한다. 산책길에는 야자수 매트를 깔아놓아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무슨 나무인지 모를 나무는 무수히 많은 하얀 꽃을 토해내고, 그 꽃은 진한 향기를 토해내어 벌들을 유혹한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염려했던 일이 닥친 것이다. 우산도 우의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주 적은 양의 이슬비라는 것이다. 이 정도의 강우량이면 비를 맞으며 걸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길었던 해변이 끝나는 부분에 시인 이육사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있었다. 대표작 '청포도'가 이 지역의 청포도 농장에서 잉태되었다고 한다.
조우(遭遇) - 박성찬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가 휴양차 포항에 머물 당시(1936년) 현 위치 인근의 청포도 농장을 바라보며 역작 '청포도'의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시인은 시 '청포도'를 준비해 청포 입은 손님을 기다리는 조국광복의 염원을 시에 담았다. 시인이 준비한 청포도는 오늘날 조국광복의 의미를 넘어 비상하는 한민족의 미래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작품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시인과 미래세대와의 조우를 통한 새로운 비상을 염원하고 있다


길고 긴 해변을 벗어난 해파랑길은 이제 청림동 도로변을 걷는다. 아치 구조물을 길게 설치하여 넝쿨장미를 심은 이 길은 몇 년 후 포항시민들과 해파랑길을 걷는 보도여행자들에게 이 지역의 명품거리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해군항공사령부 항공역사관이 보이는 곳까지 온 해파랑길은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청포도와 칭찬의 고장 청림동'이라는 안내판을 보며 걷는 거리에는 포도넝쿨을 가로수로 심어 놓았다.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가 포항에 머물 때 이곳 이 주변의 포도 농장을 보고 시 '청포도'의 시상을 떠올렸고 그것을 기념하여 포도넝쿨 가로수 거리를 조성한 모양이다.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포도넝쿨 가로수길을 지나온 길은 이제 길은 냉천을 건너 제철동으로 들어간다. 냉천은 오천읍 진전 저수지에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영일만으로 흘러 나가는 하천이다.
제철동 유래
제철동은 본래 연일현 동면의 지역으로 소나무 정자가 많다고 하여 ‘소정이’, ‘송정’이라고 불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정동’이라 해서 대송면에 편입되었다. 1968년 포항제철이 건설됨으로 폐동되었으며, 문덕 및 인덕 등으로 이주하였다. 1973년에 포항시로 편입, 행정동인 제철동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형산강은 본래 송정 쪽으로 굽이쳐 흘렀으나 포항제철소 공사로 인해 물줄기를 송도 쪽으로 400m 밖으로 유로를 변경했으며, 해안선이 완만하게 200m 폭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1973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용광로에서 쇳물을
처음 쏟아낸 포스코는 한국 철강 산업을
이끌어온 주역이다. 그 무게감이 그대로 전해
지는 듯, 산업시설과 동해의 대비가 묘한 조화
를 이루며 한 장의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플라타너스가 심어진 거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포스코 담장을 만났다. 담장을 따라 일직선으로 걷는 길은 울산의 현대중공업 담장을 떠올리게 한다. 우측에는 담장이고 좌측에는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이다. 포스코 담장은 시멘트 담장이 아니라 울타리나무 담장이어서 더 좋았다.


담장을 따라서 한 시간 정도 걸으니까 형산강
하구가 나왔다. 형산강을 건너는 다리도 끝이
가물거릴 정도로 길다.


형산강 다리를 건넌 후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다시 걷는다. 이제는 형산강을 따라서 난 길을 건넌다. 우측에는 형산강과 수변공원, 그리고 강 건너 코스코의 거대한 굴뚝들이 서 있고, 좌측은 차가 다니는 도로이다. 이 형산강 길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길이 일직선이라서 해파랑길 표시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포항운하관을 지나 좌측으로 돌면 송도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진다. 비가 오는 거리와 해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 적막한 분위기다.


이 길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일직선이다. 처음 안개비 같았던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굵어진다. 16코스를 종료하고 이어서 17코스를 가려고 했는데 이상태론 무리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 있는 16코스 종점에서 QR코드를 인증하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을 종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