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해파랑길

해파랑길 18코스

나는... 누구인가? 2025. 5. 17. 22:32

2025.05.17.토

해파랑길 18코스(18.9km)
칠포해변 ←3.3km→ 오도리해변 ←7.6km→ 월포해변 ←8.3km→ 화진해변

걸은거리 20.67km
소요시간 07:17~12:45, 5시간 22분

아침부터 날씨가 찌뿌듯하다. 예보에 비소식은 없는데, 꼭 비가 올 것 같은 기운이라 걱정이다. 어제는 17코스를 마친 후 차를 회수하게 위해 칠포해변에서 송도해변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환승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저녁을 먹고 숙소를 구하느라 늦은 시간에 숙소로 갈 수 있었다. 미리 숙소를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내차를 18코스 시점에 둘지, 종점에 둘 지를 농촌 시내버스 코스를 검색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포항시와 영덕군 간의 시내버스 연계가 원활하지 않아 어디에 차를 두든지 두 번을 환승해야 하는 것으로 검색되었다. 그래서 출발시간을 빨리하기 위해 칠포해변 주변의 모텔을 검색하니 이 지역은 모텔은 없고 전부 펜션뿐인데 하루 숙박비가 너무  비 샀다. 그래서 거리를 넓혀가며 검색을 해서 월포해변 인근의 바다펜션에서 유숙을 했다.
빵과 우유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20여 분 걸려 칠포해변에 도착하니 인적은 전혀 없고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해파랑길 17코스는 칠포해변에서 시작해 화진해변까지 걷는 구간이다. 물이 맑고 수심이 얕은 여러 해변을 걷는 코스로 백사장이 길게 늘어져 있는 크고 작은 해변을 걷는다.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동물이 그려진 방석리 방파제 그림들, 그리고 곳곳의 마을 벽화를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칠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4km, 너비 200~300m의 아주 넓은 해수욕장이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드넓은 해변에 인적은 없고, 덩그러니 물가에 놓인 의자 하나가 외로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바닷가 농지에 모래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방풍막 뒤로는 갯메꽃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몇 년 후 메꽃으로 뒤덮여 있을 이곳을 상상하며 지나간다.

찌뿌듯하던 날씨는 어느새 구름이 밀려나고 햇볕이 쏟아진다. 동해바다의 아침 윤슬은 언제 보아도 가슴을 벅차게 한다.

칠포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넓은 모래밭을 뒤로하고 해변 언덕을 넘어야 한다. 험한 언덕이지만 데크길을 잘 조성해 놓아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해변 벼랑옆으로 좁은 산책로가 나 있다. 수평선이 가물거리는 시원한 동해바다를 감상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뒤돌아본 칠포해수욕장

도로나 농로를 걷기도 하고, 마을길도 걷지만 도보여행의 참맛은 오솔길이 제일인 것 같다. 특히 이렇게 탁 트인 바닷가 오솔길을 걷고 있자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향긋한 솔향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 심호흡을 하며 느긋하게 걸어가는 길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감에 젖어들게 한다.

언덕을 넘어서자 나타난 작은 해변엔 많은 캠핑카가 도열해 있고, 모래밭 한가운데는 커다란 바위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먼바다는 잔잔해 보이는데 해변으로는 연신 파도가 밀려와 하연 포말을 만들어 내고, 그 너머로 칠포항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담한 칠포항은 조업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어선이 많이 정박해 있었고 항구 주변엔 인적도 드물었다.

한적한 해변을 걷다가 모퉁이를 돌아서니 바닷가 바위언덕 위에 범선을 본떠 만든 해오름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데크길로 잘 조성해 놓았다.

전망대를 지나 오도리 마을로 가는 길도 차도와 구분하여 잘 만들어 놓았고, 산길은 난간을 설치해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아담한 어항을 가진 오도리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앞 암초가 까마귀처럼 검다고 해서 오도(烏島)라 부르는 오도리는 해안선이 아름답고 풍광이 좋아서 그런지 다양한 숙박시설과 카페들이 많았다.

해안을 따라가는 방파벽에는 다양한 해양생물 벽화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오도항에 도착했다. 긴 방파제를 따라 멋진 형상의 그늘막 벤치를 설치해 이용객들의 휴식처를 제공해 주고, 방파제 끝에는 전망대를 설치해 두어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선을 구경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오도항을 떠난 길은 청진리로 들어간다. 이곳 청진리부터는 포항시 흥해읍에서 포항시 청하면으로 바뀐다. 오도항에서 불과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청진항이 있었고, 청진리에도 오도리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조망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펜션과 카페즐이 즐비했다.

칠포해수욕장에서 5.8km 왔다는 이정표가 마을 안길 입구에 서 있다. 오늘 걸을 길이 18.9km이니 3분의 1 조금 못 온 것이다. 오늘은 해파랑길 50코스 중 마지막으로 걷는 길이다. 이제 13.1km만 더 가면 해파랑길 750km를 완보하게 된다. 남파랑길을 60코스까지 걷고 나서  갑자기 동해로 인사발령이 나는 바람에 걷기 시작한 해파랑길을 13개월 만에 완보를 하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종점을 향해 가면서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종점인 화진해변에 도착하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코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걸어간다.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많은 아쉬움과 후회로 점철된다. 나태하고 게으른 삶으로 허망하게 세월을 보냈다고 생각면 괴로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괴로움을 견디기 위한 것은 몸을 수고로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도보여행이었고 남파랑길을 걷다가 이제 해파랑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몸을 수고로이 하니 마음은 조금 편해졌는데,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야 할 길이 어디 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다시 괴로움이 생겨났다. 길을 걸으며 많은 사색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는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500여 미터의 짧은 거리를 두고 작은 어항이 연이어 나타난다. 청진항을 지난 다음에 있는 이곳은 청진 1리 어항이다. 휴일 오전의 항구는 인적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청진리를 지나 이가리항으로 가는 길은 정비되지 않은 몽돌밭과 굵은 모래밭을 걷는 길이다. 이런 길을 걸을 땐 발이 아프고 힘들기도 하지만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써걱써걱 소리를 내며 걸으면 동심이 살아나기도 한다.

써걱써걱 자갈길을 걸어 이가리항에 도착했다. 이가리(二加里)는 옛날 도 씨와 김 씨 두 가문이 길을 사이에 두고 각각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번성하면서 합하여 한 마을이 되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이가리항을 떠난 해파랑길은 용두리 간이해변까지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멀리 이가리 해변과 닻 전망대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는데 해안 자갈밭에서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무슨 돌을 찾는지 자갈을 해집고 있었다. 무엇을 찾느냐고 물어보려다 벌찍이 떨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간다. 아마 작은 수석을 수집하는 것이겠거니...

"이가리닻전망대"에 도착했다. 닻 전망대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보면 닻 모양으로 만든 전망대라고 이름 붙였다. 물고기가 힘차게 꼬리 치며 바다로 나가는 모습으로 닻을 형상화한 이 전망대는 바다 수면으로부터 10m 높이에 길이 102m 정도의 규모다.

닻전망대를 떠난 길은 기암괴석과 송림이 차지하고 있는 해변길로 이어진다.

바다에 뿌리를 박고 있는 바위 위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자리를 잡고 있다. 바위 위에 어떤 영양분이 있고 또 물은 어떻게 공급받는지, 저 척박한 환경에서 꿋꿋이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보고 있자니 나약한 마음으로 길 위에서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조경대
원래는 '물이 맑아 거울 같다'는 뜻의 조경대(照鏡臺)였는데, 조선 인조 때 청하에 귀양살이를 했던
유숙이 이곳에서 놀고 있을 때 마침 바다에서 고래잡이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고는 '고래를 낚는다'는 뜻의 조경대(釣鯨臺)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선조 화단의 대표 화가 중 한 분인 겸재 정선이 청하 현감으로 2년간 이 지역에 머무를 때 주변 풍광에 빠져 자주 그림을 그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안가를 걷던 길은 이제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걷는다. 언덕을 올라 지나가는 지역은 양지고개라 이름 붙은 고개다.

고개 위에 오르면 소나무 사이로 길게 뻗은 용두리 해변과 멀리 월포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나무가 울창한 고개를 지난 길은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포스코 월포 수련관 옆길을 통해서 20번 지방도를 만난다.

20번 지방도를 따라서 용두리 마을길을 가로질러온 해파랑길은 서정천을 건너는 용두교를 지나 우회전하여 월포해수욕장으로 들어간다.

월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포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수욕장이라는 월포 해수욕장은 아주 가까운 위치에 월포역이 있어서 포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 정거장이면 올 수 있다고 한다. 해변 송림은 캠핑카와 텐트로 빼곡하고 사람들은 늦은 아침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조형물에서는 월포를 '달이 비치는 맑은 바다'로 표현하고 있지만, 월포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월아구라는 동네와 개포라는 동네 이름을 합쳐서 월포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변 길거리에는 서핑 강습과 장비를 대여해 주는 가게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철이 아니라 그런지 서퍼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제철이면 구름 같은 인파로 북적일 것 같다.

넓은 모래사장의 월포해수욕장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방어리 방파제 방향으로 가려면 갈매기를 형상화한 이색적인 조형물이 있는 청하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야 한다. 다리 입구에서 드디어 오늘의 종점인 화진해수욕장 이정표를 발견했다. 아직 절반을 조금 더 온 거리지만 얼마 남지 않은 것 마냥 힘이 난다.

월포 다리를 지나면 방어리다. 해안로를 따라가는 길에 스킨스쿠버 동호인들이 바다로 나갈 준비로 바쁘다. 이 부근이 스쿠버 성지인지 장비를 대여하고 강습을 하는 곳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방어가 잘 잡힌다고 해서 방어리라 불렸다고 하는데, 이 방파제는 월포리가 아닌 방어리에 있는데 이름이 월포방파제다. 방파제에 그려진 다양한 색상의 돌고래 그림이 이채롭다. 방파제 전체가 다양한 고래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월포방파제에서 100여 미터 지나는 곳에 있는 방어리방파제다. 방파제를 지나면 고급스러운 풀빌라들이 연이어 나오고, 국립수산과학원 사료연구센터를 지난다. 이곳을 지나면 청하면 방어리에서 송라면 조사리로 넘어간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좋은 위치에 자리한 풀빌라 펜션들은 지나가면서 보니 이용객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만, 거금을 투자해서 지은 시설이 얼마나 수익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계속해서 해변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은 작은 조사리어항에 도착했다. 고만고만한 소규모 어항들이 연이어 형성되어 있다.

조사리어항을 지나서 해안길을 따라 조사리 해변으로 간다. 조사리는 고려말 원각 조사라는 고승이 태어난 곳이라 해서 조사리라 불렸다고 한다.

해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잠시 길을 우회해서 광천이라는 하천을 건너야 한다.

하천의 수량이 적을 때는 수중보를 통해 건너면 되고, 수량이 많을 때는 조금 더 우회해서 조사교라는 다리를 건넌다. 지금은 비교적 수량이 적은 시기 이기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 들고 수중보를 건넌다. 광천은 태백산맥 줄기의 내연산, 향로봉, 천령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하천이다.

조사리해변에서는 아주 작은 알갱이의 몽돌 해변을 만날 수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며 밀려왔다 나가가를 반복하는 파도가 싸르르 싸르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맑은 음향을 들려주는 정말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몽돌해변 건너편으로 방석항의 방파제와 빨간 등대가 보인다. 방파제에는 여러 종류의 고래와 상어, 펭귄 등 다양한 해양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조사리 해변 끝자락에서 방석리로 가는 길은 파도가 덜해서 그런지 굵직한 자갈들이 제법 있다. 큰 자갈길을 지나서 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발이 불편하다.

방석항으로 넘어왔다. 방석리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당시 방화 마을과 독석 마을의 이름을 합쳐 만든 것이라 한다.

방석항을 지나 방석리 마을에서 부터 화진리로 가는 길에는 동심을 불러 일으키는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어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였고

양철지붕의 작은 집안과 대문 밖에 주인장의 정성이 돋보이는 화분이 가득하여 잠시 머무르며 감상하다 지나갔다.

마을길 곳곳에는 손질된 가자미들이 질서 있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가던 길은 갑자기 내륙으로 도로를 따라간다. 아마도 해안쪽은 사유지 이거나 군사시설이 있어서 그런것 일것 같다는 생각이다.

도로를 따라가던 길은 화진 1교를 통해 대전천을 건너 우회전하여 화진해수욕장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해수욕장 이름은 화진이지만 행정구역 상으로는 다리를 건너면 송라면 화진리에서 송라면 지경리로 넘어간다. 포항과 영덕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화진해수욕장은 오늘 지나온 여러곳의 해변과 달리 넓은 송림이 조성되어 있고, 수많은 텐트와 캠핑카로 빼곡했다. 마을 번영회에서 7월부터 11월까지 소나무 숲에 텐트와 캠핑카를 허용하는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벌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화진해수욕장은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있는 해수욕장인데, 백사장의 길이 400m, 폭은 약 100m로 평균 수심은 1.5m인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주변에 나무가 많고 바닷물이 깨끗하다. 또한 냇물이 두 군데에서 흘러내려 담수욕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해파랑길을 처음시작한 곳이 화진해변이고 마친곳이 화진해변이다. 여기서부터 통일전망대 까지 걸었고, 또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부터 여기까지 걸었다. 13개월 만에 만난 화진해변은 조금 더 정비를 하여 깔끔해진 보습을 보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 순간 살아온 날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후회스러움에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길이 남파랑길을 거쳐 해파랑길로 이어졌다. 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안정은 어느정도 찾았으나, 나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은 풀지를 못하고 있다. 걷다보니 길이 있었고 길이 있기에 걸어왔지만 아직도 헛헛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여행,등산 > 해파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 17코스  (3) 2025.05.17
해파랑길 16코스  (3) 2025.05.04
해파랑길 14, 15코스  (4) 2025.05.02
해파랑길 13코스  (1) 2025.05.01
해파랑길 11, 12코스  (4)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