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남파랑길

길 위에서 길을 묻다.

나는... 누구인가? 2023. 4. 19. 20:57

2023.03.24
마산해양신도시 인공섬이 보이는 남파랑길 10코스 시작점에 섰다. 오래전에 계획했던 제주 올레길 종주는 시간과 비용 문제로 포기하고 한해 전부터 고민해 오던 남파랑길을 시작하려고 한다. 1코스부터 9코스까지는 나중을 기약하며 일단 건너뛰고 큰아이가 자취하고 있는 월영동에서 시작되는 10코스 출발점에 섰다.

20대 초반에 발현한 역마살로 하염없이, 정처 없이 걸어가는 병이 생겨 울진에서 강구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딱히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아득히 걷고 싶었다. 걷다 보면 힘이 생기고 그냥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방황하던  시절, 경주 감포에서 출발하여 군산까지 걸었다. 배낭에다 코펠과 버너, 침낭만 달랑 넣어서... 걷다 어두워지면 노숙하고 또 일어나 걸었다.

길을 걷다 보면 희망과 좌절, 슬픔과 기쁨도 사라지고 마음에 평온을 얻는다.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고 살아갈 날을 그려보게 된다.



길 위에서 길을 묻다. / 해원 정건철

하루 건너기가 무섭게 찾아드는
나른한 권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정체성의 그늘 아래
신기루처럼 현몽하는 착각 같아서
흐느적인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이상향에의 낙태
햇살 뉘엿거리는 늦은 오후였다

차차 어둠은 내릴 것이고
야위어 가는 오후의 안간힘 마저
시간 속에 낚여 점점이 소멸돼 간다
끌려가는 건 내가 아니라
시간이라도 줄잡아 내 몸 안에 파이는
꽃주름들, 하 슬퍼 눈시울 갸웃거리는
그림자들이 운다
차차 어둠은 더 짙게 깔릴 것이다

걷는다 무작정 걸어도
걸어서도 끝나지 않는 길을
가는 듯하다.
길이 취해 드러눕는다
넋을 놓는다
아득한 길 위에서, 그
길 위에 서서 나의 길을 내가 묻는다

아마도 내 생각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들의 목숨들을 상기시키며
고갤 끄덕이게 하고 있을 것이다
오래 걸을수록
마음의 정답과 멀어지는
그 느낌들만이 새로운 공허의
움막을 짓고 있는 양 하다

그것이 늘 내가 헛도는 길의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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