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노자와 장자

빈 배

나는... 누구인가? 2023. 7. 8. 22:09

장자 외편 중 산목山木편에 실린 "빈 배" 이야기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와서 그의 배에 부딪혔다. 그가 성격이 어떨지라도 화를 내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배에 단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물러가라고 소리칠 것이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두 번이라도 소리칠 것이고 그것도 듣지 못하면 세 번째 큰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욕성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앞서는 성내지 않다가 지금 성내는 것은 앞의 배는 빈 배였지만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텅 비우고 세상을 산다면 도대체 그 무엇이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어 난시에 노안까지 덮쳐 가까운 곳도 보기가 힘들어 졌다. 계단을 오를 때면 무릎이 편치 않고 염색하는 주기도 짧아져 갔다.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오십견이라는 진단까지 내려 주었다.
몸만 고장이 난 줄 알았는데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살아 보고자 했던 다짐이 근심과 걱정을 만들고 이것이 마음에 쌓여 갔다. 시나브로 생긴 우울감과 불안함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막막하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은 처지고 수면도 편치가 않아 매일 밤 악전고투를 한다. 닳고 닳은 영혼이 이제는 한계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인생은 나와 다른 타인과 함께해야 함에도 내가 타인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면서 일상은 조급해졌고 평화와 멀어졌다. 소유가 인생에 있어 최우선 순위가 되니 집착이 심해졌다. 이 집착 때문에 내 영혼을 스스로 통제하기가 힘들어 졌다.
장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던 나에게 세상을 빈 배처럼 바라보라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이 먼저 빈 배가 되어 보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불필요한 일에 고통받지 말라면서.
인간이 성숙을 완성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정작 소중한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무엇에든 얽매이기 바빴고, 때로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와 싸우느라 몸과 마음을 소진하고 말았다. 세상이 빈 배 처럼 보이지 않으면 나 자신이 빈 배가 되면 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서 돌아오는 해악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었었다.
이제 남은 인생의 소중한 시간은 무언가에 얽매이거나 초조해하며 살고 싶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바라며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고 싶다.
규율, 논리, 부와 명예를 강요하는 가르침보다는 만물의 순리를 생각하며 자연에서 소요하기를 권하는 장자의 가르침을 따라 근심과 걱정에 얽매이지 않고 홀로 서기 위해서.
젊은 시절 어리석게도 치열하게 사느라 정작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는 중독되지 못하고 인생을 방관해 온 모습과 결별하고 싶어서 장자를 읽는다. 수많은 시간 동안 나보다 내가 아닌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느라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마음을 위해 장자가 전해주는 여유와 기쁨을 누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