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선방일기

선방일기 / 선방의 생태

나는... 누구인가? 2024. 6. 10. 17:12

1973년 10월 29일

이번 선방의 구성원은 극히 복합적이다. 이질성과 다양성이 매우 뚜렷하다. 먼저 연령을 살펴보면 16세의 홍안(紅顔)으로부터 고희(古稀)의 노안(老顔)에까지 이른다. 세대적으로 격(隔)이 3대에 이른다. 물론 세수(世壽)와 법랍(法臘)과는 동일하지 않지만. 다음에 출신 고장을 살펴보면 팔도 출신들이 제각기 제고장의 독특한 방언을 잊지 않고 수구초심(首丘初心)에 가끔 젖는다. 북방 출신들은 대부분 노장년층이다.
학력별로 살퍼보면 사회적인 학력에서는 교문을 밟아보지 못했는가 하면, 대학원 출신까지 있다. 불교적인 학력(講院學習)에서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도 이수치 않았는가 하면 대교(大敎)를 마치고 경장(經藏)에 통달한 대가(大家)도 있다.
다음으로 출신 문벌로 보면 재상가(宰相家)의 자제가 있는가 하면 비복(婢僕)의 자제도 있다
물론 선방에서는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도 문제될 바 아니지만 그래도 견성하지 못한 중생들인지라 유유상종은 어쩔 수 없어 휴게시간에는 끼리끼리 자리를 같이 함을 볼 수 있다. 내분이나 갈등이 우려되지만 출가인들이어서 그 점은 오히려 기우 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출신 성분이 다른 모임이긴 하지만 전체가 무시되고 개인이 위주가 된다는 점이다. 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처음도 자아요, 마지막도 자아다. 수단도 자아요, 목적도 자아다. 견성하지 못하고서 대아를 말함은 미망이요, 위선일 뿐이다. 철저한 자기 본위의 생활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극히 비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비정한 자기 본위의 생활에 틈이 생기거나 흡결이 생기면 수도란 끝장을 알리면서 선객은 태타(怠惰)에 사로잡힌 무위도식배가 되고 만다. 자기 자신에게 칠저하게 비정할수록 견성의 길은 열려지는 것이다. 전후좌우 상고하찰 해보아도 견성은 끝내 혼돈된 자아로부터 출발하여, 조화된 자아에서 멈춰질 수밖에 없다. 견성은 끝내 자아의 분방한 연역(演繹)에서 적료(寂廖)한 자아로 귀납(歸納)되어야 한다.
비정 속에서, 비정을 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는 몸부림, 생명을 걸고 생명을 찾으려는 비정한 영혼의 편력(모험)이 바로 선객들의 상태다.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다.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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