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선방일기

선방일기 / 결제

나는... 누구인가? 2024. 6. 4. 08:01

1973년 10월 14일

결제(結制)를 하루 앞둔 날이다. 결제란 불가용어로서 안거(安居)가 시작되는 날을 말하고, 안거가 끝나는 날을 해제(解制)라고 한다.
안거란 일 년 네 철 중에서 여름과 겨울철에 산문출입을 금하고 수도에 전력함을 말한다. 하안거는 4월 15일~7월 15일이고 동안거는 10월 15일~1월 15일이다. 흔히 여름과 겨울은 공부철이라 하고, 봄과 가을은 산철이라 하는데 공부철에는 출입이 엄금되고, 산철에는 출입이 자유롭다. 그래서 결 제를 위한 준비는 산철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선방생활과 병영생활은 피상적인 면에서 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출진을 앞둔 임전태세의 점검이 무인(武人)의 소치라면 결제에 임하기 위한 제반 준비는 선객이 할 일이다. 선방에 입방하면 침식은 제공받지만 의류나 그 밖의 필수품은 자담(自擔)이다. 월동을 위한 개인장비의 점검이 행해진다. 개인 장비라야 의류와 세면도구 및 몇 권의 불서(佛書) 등일 뿐이다. 바랑을 열고 내의와 양말 등속을 꺼내어 보수하면 끝난다. 삭발을 하고 목욕을 마치면 물적인 것은 점검이 완료된다.
오후에 바람이 일더니 해 질 녘부터는 눈발이 날렸다. 첫눈이어서 정감이 다사롭다.
오늘도 선객이 여러 분 당도했다. 어둠이 짙어 갔다. 결제를 앞두고 좌선에 든 스님들은 동안거에 임할 마음의 준비를 마지막 점검해 본다. 밖은 초설(初雪)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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