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무상

나는... 누구인가? 2024. 9. 26. 10:54

대자연 속을 걷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산맥, 광활한 바다와 하늘, 지나가는 구름 등이 영원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날씨와 빛의 변화를 체감하고,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는 대기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영원의 대척점에 있는 유한이나 무상을 떠 올리기도 한다. 탄생과 죽음, 살아 있음과 죽어감, 덧없음과 변화는 사물을 만들고 자라게 하고 사라지게도 한다. 이것이 자연의 본질이다. 주의 깊에 주변을 살피며 걸을 때마다 이런 자연의 본질을 체감할 수 있다. 덧없는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끼고 경험한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덧없음과 죽음, 그리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 "우리는 매일 죽는다."라는 의미에서의 죽음에 이르는 길을 의식하는 데까지는 정말 지척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인도의 자이나교를 믿고 있던 선한 왕 아라빈다는 성전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는데, 그 구름이 마치 천천히 움직이는 장엄한 성전처럼 보였다. 아리빈다왕은 넋을 읽고 구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성전을 저런 모습으로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빨리 그 형태를 그려 두려고 붓과 물감을 가져왔다. 그림을 그리려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미 구름의 모습은 바뀌어 있었다. 그때 그에게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은 저렇게 일시적으로 흘러가버리는 상태가 그저 연속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무언가를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계속 왕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곧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는, 수도승이 되어 정처 없이 황야를 떠돌았다.

이렇듯 우리는 도처에 편재하는 무상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내면화하면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덧없음이 바로 인간 실존의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억누르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 우리의 생각, 느낌, 가치관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나 덧없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린다. 그런 생각을 억누르고 싶어 하거나, 애초에 그런 생각이 올라오지 않도록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미리 내면의 장벽을 세우기도 한다. 죽음을 떠올리고 의식하며 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득한 마음이 들면서 공허함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이 실존적 주제를 피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도보 여행을 하며 겪는 진한 자연경험은 삶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