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1일
나는 오대산의 품에 안겨 상원사 선방을 향해 걸어 나아갔다. 지나간 전쟁 중 초토작전으로 회진(灰塵)되어 황량하고 처연하기 그지없는 월정사에 잠깐 발을 멈추었다. 1천3백여 년의 풍우에 시달린 구층석탑의 탑신에 매달린 풍경소리에 감회가 수수롭다.
탑전에 비스듬히 자리 잡은 반가사유보살상이 후학납자를 반기는 듯 미소를 지우질 않는다.
수복 후에 세워진 건물이 눈에 띈다. 무쇠처럼 단단하여 쨍그렁거리던 선와(鮮瓦)는 어디로 가고 목어 기둥이 웬일이며, 열두 폭 문살문은 어디로 가고 영창에 유리문이 웬일인가. 당대의 거찰이 이다지도 초라해지다니. 그러나 불에 그을린 섬돌을 다시 찾아 어루만지면서 복원의 역사를 면면히 계속하고 있는 원력 스님들을 대하니 고개가 숙여지면서 선방을 향한 걸음이 가벼워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삼십 리 길이다.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화전민의 독가촌을 지나기를 몇 차례 거듭하니 해발 1천 미터에 위치한 상원사에 다다른다.
상원사는 지금부터 1,360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초창한 사찰로서 오늘날까지 선방으로서 꾸준히 이어 내려온 선(禪)도량이다. 고금을 통해 대덕스님들의 족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중대(中臺)에 자리 잡은 적멸보궁 때문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도량을 말함인데, 이런 도량에서는 불상을 모시지 않으며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궁이 있으니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중대이다.
기독교의 예루살렘이나 회교의 메카처럼 납자(衲子)나 불교도들이 평생순례를 염원하는 성지로 꼽힌다. 근세에는 이 도량에서 희대의 도인이신 방한암 대선사가 상주 교화했기 때문에 강원도 특유의 감자밥을 먹으면서도 선객이라면 다투어 즐거이 앉기를 원한다. 지나간 도인들의 정다운 체취가 도량의 곳곳에서 다사롭고, 청태 낀 기왓장과 때 묻은 기둥에는 도인들의 흔적이 역연(歷然)하다.
종각에는 국보로 지정된 청동제 신라대종이 매달려 있어 1천 수백 년 동안 불음을 끊임없이 천봉만학(千峯萬壑)을 굽이쳐 사바세계에 메아리로 전해 주었노라고 알리고 있다.
종문(鐘紋)의 비천상(飛天像)이 불심을 계시하면서, 초겨울의 서산에 비켜섰다. 큰방 앞에서 객이 왔음을 알리자 지객스님(손님담당)이 친절히 객실로 안내한다.
객실은 따뜻하다. 감자밥이 꿀맛이다. 무척이나 시장했던 탓이리라. 진부 버스정류소에서부터 줄곧 걸었으니 피곤이 온몸에 눅진눅진하다. 원주스님과 입승스님께 방부를 알리니 즉석에서 허락되었으나 큰방에 참석지 않고 객실에서 노독을 달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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