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5일
원주스님의 지휘로 메주 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중생활이고 보니 언제나 분업은 철저히 시행된다. 콩을 씻어 삶는 것으로부터 방앗간을 거쳐 메주가 되어 천장에 매달릴 때까지의 작업과정에서 대중 전체의 손이 분업 형식으로 거치게 마련이다.
입이 많으니 메주의 양도 많지만 손도 많으니 메주도 쉽게 천장에 매달렸다. 스무 말들이 장독에는 수년을 묵었다는 간장이 새까맣다 못해 파랗고 흰빛까지 드러내 보이면서 꽉 차 있지만 어느 때 어떤 종류의 손님이 얼마나 많이 모여 와서 간장을 먹게 될지 모르니까 언제나 풍부히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원주스님의 지론이다.
동안거를 작정한 선방에서 겨울을 지내자면 김장과 메주 작업을 거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선객들의 불문율로 되어 있는 관습이다. 김장과 메주 울력이 끝난 다음에 온 스님들은 송구스럽다면서 낮 시간에 좌선을 포기하고 땔나무 하기에 열중했다.
그러자 전체 대중(스님)이 땔나무를 하기에 힘을 모았다. 상원사는 동짓달부터 눈 속에 파묻히면 다음 해 삼월 초까지는 나뭇길이 막혀버린다. 눈 속에서는 나무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땔나무는 많을수록 좋았다.
상원사를 기점으로 반경 2킬로미터 이내의 고목 넘어지는 굉음이 며칠 동안 요란하더니 20여 평의 장작이 13일 날 오후에 나뭇간에 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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