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 著, 북루덴스 刊
나는 고등학교 들어가서 1학년 때까지는 멀쩡했다. 그런데 2학년 올라가면서부터 공부를 안 하게 되었다.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나는 공부를 하는 대신에 공부하는 내 모습을 관찰하였다. 공부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왜 공부를 할까?' '나는 왜 공부를 하지?' 그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은 왕왕 질문한 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나는 공부에 대해서 궁금해하다가 공부를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이 갈 곳은 철학과밖에 없었다. 공부를 못하게 된 이유를 좀 과하게 미화한 느낌도 든다. 사실은 그냥 게으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플라톤, 노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면서 그들을 공부하는 나는 누구이며,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인간은 왜 철학을 하는지가 그런 철학자들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궁금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공부를 못하고,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할 때는 '왜 철학인가', '철학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하다가 성적이 좋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런 문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학교의 정식 커리큘럼을 잘 따라가지도 못하면서 왜 우리는 철학을 하는가, 철학을 해서 인간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점들이 궁금했고, 이런 점들은 '왜 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섞여서 집요하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다가 베이징대학교 철학과로 유학을 갔다. 이런 류의 궁금증들이 계속 떠나지 않던 어느 날 새벽, 잠이 들었다고 하기도 안 들었다고 하기도 모호한 순간, 한 번도 경힘해본 적이 없던 어떤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혀서는 마치 꽉 막혀 있던 기혈이 뚫리면서 몸과 정신이 질서를 찾고 순통(順通) 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많은 것들이 내게 마구 알려졌다.
철학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지식은 무엇인가?
문명은 어떻게 하다가 최종적으로 문자, 숫자, 음표로 구성되는가?
철학은 어디에 있으며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경제학, 정치학, 법학은 어디에 있는가?
문명의 구성과 학문의 위계질서가 알려졌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굉장히 짜릿했다. 학문의 위계질서, 왜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는지, 왜 인간은 배우는지를 알게 된 그날 새벽, 지적인 환희라 할까, 그런 느낌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깡충깡충 뛰었다.
나는 영감(靈感)이란 단어가 의식의 변두리에 닿기만 해도, 그날 새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날 새벽의 그것이 내게는 영감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영감은 신령스러운 느낌이다. 신령스러운 느낌은 무엇일까? 첫째, 해석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다. 경험한 것은 신령스럽지 않다. 마지막으로는 자기가 세계를 해석할 때 사용하는 기존의 틀로는 해석이 안 되는 '어떤' 느낌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에 해석할 수 없고,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어서 설명 할 수도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영감이다. 그날 새벽의 영감으로 나는 일어나서 정신없이 뛸 정도로 큰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때 유일하게 얻은 영감으로 나는 아직까지 살고 있다.
그와 반대로 해석되는 것은 경험한 느낌이다. 해석됐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과거의 일이다. '이해된다'는 것은 과거이고 `설명된다'는 것도 과거이다. 하지만 영감은 과거적인 것은 아니다. 미래적인 것이며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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