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노자와 장자

지치지 않는 인간

나는... 누구인가? 2024. 9. 9. 11:38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 著, 북루덴스 刊

심리학자 자이가르닉(Zeigarnik)은 단골 식당에서 식사할 때면 종업원이 여러 사람에게서 주문을 받는데도, 서빙을 할 때 거의 착오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종업원에게 어떤 능력이 있기에 주문을 잊지 않고 정확하게 서빙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나온 종업원에게 물어봤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나요?" 그런데 종업원은 기억하지 못했다. 다른 종업원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완결된 것에는 더 이상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완결되지 않은 것에만 호기심을 가진다. 식당 종업원은 자신의 임무가 완결되기 전까지는 자신이 기억해야 할 주문을 전부기억한다. 하지만 완결된 후에는 잊어버린다. 이 같은 관찰 결과를 자이가르닉은 하나의 이론으로 제시했다. 사람은 끝마치지 못했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잊지 않고 머릿속에 간직하게 되는데 이것을 '자이가르닉 효과' '미완성의 효과'라 부른다. 이것을 가장 잘 이용한 예가 연속극이다. 연속극은 자이가르닉 효과를 가장 모범적으로 응용한 사례이다. 연속극은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한 회를 끝낸다. 그래야 완성되지 않은 것에 집착하는 시청자를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은 인간이라면 아직 완결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은 일에 더 관심이 간다. 창의적 활동, 완결되지 않은 것, 대오이탈, 가던 방향의 전환...... 이런 것들을 우리는 궁금해한다. 그런데 우리로 사는 데 집중하는 사람은 영감을 맞이할 기회가 없다. 이것이 영감의 비극이고 인생의 비극이다. 우리 또는 대오로부터 이탈해서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궁극의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에 집요하게 집중해야만 영감이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내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있다. 그들이 그림을 열심히 안 그릴 때 내가 가끔 묻는다. "그림을 왜 안 그리지?" 그러면 화가들이 대답한다. "영감이 떠올라야 그릴 수 있다"고. 무작정 영감을 기다리는 화가를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영감을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죽어라 그리는 화가를 믿는다. 아직 보이지 않는 결과를 기대하며, 죽어라 그려야 영감이 생산된다. 영감은 해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신령스러운 느낌이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곳에서 선물처럼 온다. 그리고 영감은 다른 어느 곳에 갈 것이 나에게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내가 영감을 만들고 생산하는 것이다.

영감을 기다리는 존재로 살다가는 영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냥 죽을 수도 있다! 영감을 기대하고, 영감을 경험하고 싶으면 부단히 미련스럽게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그 부단함과 미련함에 감복해서 영감이 온다. 영감은 열심히 산 나한테 온 선물이다. 우리는 영감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영감을 생산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영감을 생산하고 맞이할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이 매우 분명하면 된다. 영감은 부단히 노력한 사람에게 오지만, 노력한다고 다 오지는 않는다. 강력하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영감은 없다. 성공도 없고 행복도 없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매우 적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보다는 더 놀랍고 슬픈 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신에게 문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하지 않
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우리 삶은 철지히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본능적이고 감각적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감각과 본능을 이겨내는 인위적인 활동으로 인간은 완성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에만 자연적 존재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인위적인 활동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무엇인가 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감각과 본능을 이겨낸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이란 눕고 싶을 때 눈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동물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눕고 싶어도 눈지 않고 먹고 싶어도 먹지 않으며, 자고 싶더라도 자지 않을 수 있는 데에서 인간성이 드러난다. 눕고 싶거나, 자고 싶거나, 먹고 싶은 감각적 본능을 이겨내는 게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을 노력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무언가를 강력하게 원해야 한다. 그래서 "너는 누구인가?"라는 말을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로 바꿔도 괜찮다.

왜 사는것이 따분한가?
왜 의욕이 안생기는가?
왜 쉽게 지치는가?
왜 공부가 손에 안 잡히는가?
왜 우울해지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한테 물어봐야 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인간이 지치지 않고 마음껏 펼쳐 나갈 힘을 주는 것이 영감이다. 영감은 무엇인가를 강하게 원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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