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55

선방일기 / 화두

1973년 11월 25일달포가 지나니 선객의 우열이 드러났다. 선객은 화두(話頭)와 함께 살아간다. 화두란 참선할 때 정신적 통일을 기하기 위해 붙드는 하나의 공안인데 철학의 명제(命題), 논리학의 제재(題材)라고 말할 수 있다. 화두는 처음 선방에 입방할 때 조실스님으로부터 받게 되는데 그 종류가 무한량이다. 흔히들 세상에 화두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많은 화두 가운데서 자기에게 필요한 화두는 단 하나이다. 단 하나일 때 비로소 화두라는 결론이다대부분의 선객들이 붙드는 화두는 시심마(是甚麽 : 이게 무엇이냐.)이다. 예로부터 경상도 출신의 스님들이 가장 많아서 강원도 절간에서도 경상도 사투리가 판을 친다. 그래서 시심마가 불교에서는 '이 뭐꼬'로 통한다화두는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창의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 著, 북루덴스 刊 창의는 익숙함이 부과하는 무게를 이겨내고 모르는 곳으로 과감하게 넘어가는 일이다.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는 일에 '과감'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있다.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는 일은 일종의 모험이자 탐험이기 때문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모르는 곳'은 명료하게 해석될 수 없는 까닭에 항상 이상하고 불안한 곳이다.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위험한 곳으로 넘어가는 탐험과 모험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모든 창의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님어가는 일이리면, 그것은 철저한 탐험의 결과다. 장자의 '박 배'도 장자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아니라, 그의 탐험 정신이 만들어냈다. 그 탐험 정신은 장자를 여기서 저기로 성큼 건너가게 ..

선방일기 / 식욕의 배리(背理)

1973년 11월 23일겨울철에 구워먹는 상원사의 감자맛은 일미(逸味)다. 선객의 위 사정이 가난한 탓도 있겠지만 장안 갑부라도 싫어할 리 없는 맛이 있다. 요 며칠 전부터의 일이다. 군불을 지핀 아궁이에 꽃불이 죽고 알불만 남으면 고방에서 감자를 몇 됫박 훔쳐다가 아궁이에 넣고 재로 덮어 버린다. 저녁에 방선(放禪)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감자구이 담당스님이 아궁이로 감자를 꺼내러 간다. 뒷방에서는 공모자들이 군침을 흘리면서 기다린다. 감자는 아궁이에서 몇 시간 동안 잿불에 뜨뜻하게 잘 구워졌다. 새까만 껍질을 벗기면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맛은 틀림없이 삶은 밤 맛이다. 서너 개 먹으면 허기가 쫓겨 간다. 잘 벗겨 먹지만 그래도 입언저리가 새까맣다. 서로를 보며 웃는다. 스릴도 있고 위의 사정도..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첫째, 끊임없이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안이 생긴다. 내가 손해보지 않을까? 나만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자비심을 키울 때, 진정한 다가갈 수 있다. 둘째, 자기 자신에게서 답을 찾지 않기 때문에 불안이 찾아온다. 사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기 깨문에 계속해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현재를 살지 않기 때문에 불안이 생긴다. 과거와 마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현재를 놓치는 것은 마치 '허공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진정한 향복과 평화는 오직 현재 순간에 존재하며 현재에 집중할 때 불안..

인문학 2024.09.30

무상

대자연 속을 걷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산맥, 광활한 바다와 하늘, 지나가는 구름 등이 영원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날씨와 빛의 변화를 체감하고,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는 대기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영원의 대척점에 있는 유한이나 무상을 떠 올리기도 한다. 탄생과 죽음, 살아 있음과 죽어감, 덧없음과 변화는 사물을 만들고 자라게 하고 사라지게도 한다. 이것이 자연의 본질이다. 주의 깊에 주변을 살피며 걸을 때마다 이런 자연의 본질을 체감할 수 있다. 덧없는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끼고 경험한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덧없음과 죽음, 그리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 "우리는 매일 죽는다."라는 의미에서의 죽음에 이르는 길을 의식하는 데까지는 정말 지척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인도의 자이나교를..

인문학 2024.09.26

시선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 著, 북루덴스 刊 의식은 들쑥날쑥하고 들락날락한다. 무엇을 만들거나 개척하려면, 그 들쑥날쑥하고 들락날락하는 것이 일정한 높이에서 초점을 맞춰 작동해야 한다. 높이와 초점을 맞춘 의식을 생각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왜 생각이 중요한가? 사람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높이 이상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일정한 높이에서 작동할 때 그것을 또 시선이라고 부른다. 어떤 기관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시선은 삶과 사회의 전체 수준을 결정한다.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그래서 보통 일컫는 발전이나 진보라는 것도 사실은 시선의 상승이다. 여기 있던 이 시선이 한 단계 더 높이 저 시선으로 상승하는 것이 바로 발전이다. 그런데, 이 발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를 지배하는 정해..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면서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 著, 북루덴스 刊 인간이 삶을 꾸리는 세계는 '문명'과 '자연'이라는 두 개의 무대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장된 스스로의 법칙을 따르는 저절로(自) 그러한(然) 세계고, 문명은 인간이 그려 넣은(文) 세계다. 인간이 그린 세계를 문명이라고 할 때, 그것을 존 더 구체격으로 말하면 인간이 의도를 개입시켜 제조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을 제조하는 의도를 의지나 의욕, 욕망 혹은 영혼 등등으로 다양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통괄하여 일단 '생각'이라고 하자. 그래서 각자 누리는 문명의 수준이나 내용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에 좌우된다. 이라는 책에서는 이것을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당연히 앞선 문명은 앞선 생각이 만..

도보 여행

트레킹이나 하이킹과 같은 도보 여행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바로 단순함이다. 도보 여행을 떠날 때는 단출한 차림이 중요하다. 적절한 옷, 신발, 배낭이면 족하고 경우에 따라서 등산스틱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의 장비는 자칫 여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소박한 음식, 목을 축일 물 한 모금, 여기에 팔을 구부려 팔베개로 삼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으리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 또한 공자의 말에 화답하듯 우리가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추위에 얼어붙지만 않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피쿠로스는 자기보다 200여 년 앞서 살았던 공자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해 두 현자 모두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

인문학 2024.09.23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 앵거스 디턴 著, 안현실, 정성철 譯, 한국경제신문 刊 너무나 한국적인 '불평등의 땅' 미국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소득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한 나라. 자살률이 지구 역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는 나라. 불평등이 소득의 차이를 넘어 건강 격차, 세대 간 격차로 번지는 나라. 주류 경제학자들이 부유세는 악덕을 조장하는 '나쁜 세금'이라며 반대하는 나라. 경제 침체기에도 정부 지출을 줄이는 나라. 그리고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와 경제 지도자들은 이 모든 격차를 실패한 사람들의 게으름 탓으로 여기는 나라. 어느 나라 이야기일까? 1945년에 태어난 79세 경제학자가 40여 년 동안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겪고 대학교수로서 연구한 바다...

인문학 2024.09.21

선방일기 / 올깨끼와 늦깨끼

1973년 11월 29일조실스님 시자는 열여섯 살이요, 주지스님 시자는 열아홉 살이다. 스무 살 미만의 스님은 이들 두 사람뿐이다. 나이도 어리지만 나이에 비해 체구도 작은 편이어서 꼬마 스님들로 통한다. 조실스님 시자가 작은 꼬마요, 주지스님 시자가 큰 꼬마다. 작은ㅜ꼬마스님은 다섯 살 때 날품팔이 양친이 죽자 이웃 불교 신도가 절에 데려다주어서 절밥을 먹게 되었고, 큰 꼬마스님은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동해안의 낙산보육원 출신이다. 낙산보육원에서 간신히 중학을 마치고 곧장 절밥을 먹었다고 한다. 모두가 고아다. 작은 꼬마는 절밥을 12년 먹었고, 큰 꼬마는 4년째 먹는다. 꼬마스님들은 대중들의 귀여움을 받는다. 측은해서도 그렇고 가상해서도 그렇다.그런데 꼬마스님들의 사이는 여름 날씨 같은 것이어서 변..